일반적으로 '치과'하면 어떤 느낌이 떠 오를까?
몸이 움츠려드는 날카로운 기계음, 무시무시한 주삿바늘의 공포, 통증의 고통 그리고 비싼 치료비...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들 때문에 치과는 웬만해서는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아닐까.
하지만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나 보다.
30년을 치과의사로 많은 환자들을 대하다 보니 이처럼 무서운 치과를 마치 제집 안방 드나들 듯이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여성 환자 한 분이 기억난다.
의사 선생님의 사모님이셨는데 말씀을 차분하게 하시는 다소곳하고 고우신 분이셨다.
그런데 진료 의자를 눕혀서 치료를 하려고만 하면 깊은 잠에 빠져 들어버린다.
피곤하셨나 싶어 일부러 깨우지 않고 잠시 다른 환자를 보고 있노라니 아주 코를 드르릉 골고 푸푸 불어가며 요란하게 주무신다.
아! 고상하고 우아하신 분인데...
남들은 앉는 순간부터 가슴이 뛰고 긴장이 된다는 치과 의자가 이분에게는 세상 편안한 침대가 되나 보다.
오실 때마다 예외 없이 곤히 주무시기에 본의 아니게 수면 치료를 하게 되었고 치료를 마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개운한 모습으로 생끗 웃으며 일어난다.
기억나는 남성 환자도 있다.
키가 구척 장신에 시커먼 얼굴을 한 '소도둑'처럼 생긴 청년인데 말수도 없이 무뚝뚝한 게 어쩌다 묻는 말에 억센 서부 경남 사투리가 수줍게 나온다.
며칠에 걸려 스케일링을 비롯한 전반적인 치료를 다 끝냈는데도 계속 치과에 오길래 뭔가 치료가 미진한 게 있나 싶어 꼼꼼히 살폈지만 특별한 이상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디가 불편하셔서 또 오셨냐고 물었다.
"어데예. 그냥 스께링이나 한 번 할라꼬예."
불과 한 달 전에 했는데 너무 자주 할 필요가 없으니 6개월 후 정기 검진 때 보자고 딱 잘라 보내 버렸다.
그 후로 다시 오지는 않지만 이제 치과로 꽃바구니랑 케잌 같은걸 수시로 보내온다.
알고 보니 이 총각은 처음 온 날 우리 치과에 근무하던 치위생사 선생님 한 분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고, 수줍어 말도 못 하면서 그저 얼굴이나마 보려고 그렇게 자주 치과에 다녔던 거였다.
오지 말라니 치과엔 들어오지 못하고 매일같이 입구에서 스토커처럼 그 직원이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였다.
그 직원은 기겁을 하고 도망을 다니는가 싶더니 얼마 후 둘이 결혼을 했고 그 총각은 지금 우리 치과 실장님의 남편이 되었다.
우리 치과는 동네 변두리 치과이다 보니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도 톡톡히 한다.
연령상 치과 신세를 자주 지게 되시는 동네 할머니 어르신들이 치과 대기실에서 자주 마주치신다.
"아이구 성님. 여는 우짠일인교."
"아이고 동상.반갑네"
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우신다.
이분들을 위해서 원두를 직접 갈아 우려내는 커피포트를 비치해 커피 향이 은은한 카페 분위기를 조성해 놓았다.
대기실에 시끄러운 TV를 치워 버리고 자그마한 서가를 꾸려 놓으니 젊은 사람들의 호응이 좋아 진료 차례를 잊을 정도로 책에 몰두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섭고 살벌한 치과라도 누군가에게는 힐링과 휴식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며 때로는 사랑이 꽃피는 인생의 장소가 되기도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