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수'같은 자녀와 전쟁 중이신가요?
요즘은 확실히 줄었지만 내가 젊었을 때는 꼬마 환자들을 많이 보았다.
소아 환자는 성인보다 입이 작고 행동조절도 안되므로 고속의 절삭기계를 사용하는 치과 치료가 힘들고 위험하다.
하지만 부모의 신뢰를 얻어 온 가족의 주치의가 되려면 소아 환자의 진료에 정성을 다해야만 했다.
아이가 귀한 요즘 금쪽이들에겐 부모가 쩔쩔맨다.
이런 아이들은 공포감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발작과 욕설을 하며 침을 뱉기도 하는 등 온몸으로 극도의 분노를 나타낸다.
이럴 땐 소아치과 전문병원으로 의뢰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이에게 전신마취하기를 꺼려하고 치료비도 비싸니까 대개의 부모들은 강제로라도 동네치과에서 치료해 주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고집 센 꼬마 환자가 오면 온 치과가 전쟁터가 된다.
의료진은 흥분한 아이에게 절대로 야단을 치거나 감정적 대응을 하면 안 되므로 아이를 붙잡는 등의 행동조절에는 부모가 철저히 동참하게 한다.
흔히들 미운 6살이라고 하지 않나.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던 아기에게 자아가 형성되면서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는 나이가 대개 여섯 살 전후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머리가 굵어지는 사춘기가 되면 부모의 간섭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세상으로 들어가 버린다.
인간의 성장과정에 있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 시기를 현명하게 넘기지 못하면 부모자식 간에 '웬수'가 되는 것이다.
자식 키우면서 어디 이런 경험 한 두 번 안 해본 적이 있으랴.
속 썩이지 않고 말 잘 듣는 천사 같은 자식을 바라는 게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천사 같은 자식이 있기는 하는 걸까?
있다. 분명히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우리 막내가 그런 아들이다.
팔불출이 되더라도 아들 자랑을 안 할 수 없다.
우리 아들은 어릴 때부터 한 번도 부모 말을 거역하거나 속을 썩인 적이 없다.
심부름을 시키면 싫은 내색 한번 없이 즉시하고 예의는 또 얼마나 바른지 매일 아침이면 항상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린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사람들을 마주치면 큰소리로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 칭찬이 자자하다.
음식물 쓰레기와 분리수거 등 궂은일은 도맡아 하며 엄마를 도와 설거지, 세탁기 돌리기, 집안 청소를 척척해내는 살림꾼이다.
어느새 청년으로 훌쩍 자랐지만 매일 밤 제 엄마 다리를 주물러 주면서 항상 친구처럼 다정하게 말 상대도 해준다.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못 하고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늘 손해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착한 심성을 지녔다.
반항 한번 없이 사춘기를 지냈느냐고?
우리 아들은 자폐성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 말이 늦고 남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무의미한 단순 행동을 무한히 반복하는 등 자폐아 특유의 반응을 보였다.
주차된 차들의 차량번호나 지인들의 전화번호 등 한번 본 숫자들을 비상하게 기억해 내는 달갑지 않은 서번트 증후군도 나타났다.
우리 부부는 크게 절망하였고 특히 제 엄마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애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특수 교육기관들에 데리고 다니며 일반화 교육을 시켰다.
학교도 장애인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 넣어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였다.
자폐아 특성과 행동치료에 관한 갖가지 정보들을 조사하고 연구하여 거의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렀다.
행동조절이 안될 때면 아이를 끌어안고서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이러한 눈물겨운 인내와 노력으로 지금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일반화가 많이 되었다.
남들보다 뛰어난 것이 아니라 남들처럼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대학 진학 대신 행복학교에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여 사회적 기업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취업도 했다.
얼마 되지 않은 월급을 쪼개 적금을 붓고 주식 투자를 하면서도 제 용돈을 아껴 기념일이면 부모님께 용돈도 주는 세상 착한 아들이다.
이런 천사 같은 아들을 둔 나는 행복한 아빠임에 틀림없어야 한다.
오랜 시간 장애인 치과 진료 봉사를 다니며 그들의 커뮤니티를 관찰해 보니 장애인들이야말로 모두 천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떠한 위선과 가식도 없는 순수하고 해맑은 천사의 모습을 이들에게서 본다.
혹시 오늘도 '웬수'같은 자녀와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셨나요?
정녕 천사 같기만 한 자식을 바라시나요?
비장애인으로 건강하게 자라주는 자식들이 곧 축복임을 아시고 속 썩이는 자녀들에게 감사하며 사랑으로 다정하게 한번 꼭 안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