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빠가
안녕하십니까.
신부 아버지 허용수입니다.
저희 사돈께서 한국말을 전혀 못하시는 관계로 신부 아버지인 제가 오늘 성혼선언문 낭독과 주례사까지 북 치고 장구치고 다합니다.
이렇게 좋은 계절 귀한 시간에 저희 아이들의 결혼을 축하해 주시기 위하여 참석해 주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꾸벅)
축하 화환을 보내주신 각계의 인사들, 그리고 이집트에 있는 제 동생 가족들, 호주에 있는 처남 가족들, 미국에 있는 처이모님과 조카 등 세계 각국의 해외 동포 여러분 모두 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 저의 딸과 결혼을 허락해 주신 사돈 내외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사돈, 땡큐(꾸벅)
오늘 눈부신 신부도 아름답지만, 평생을 제 곁에서 사랑하며 아이들을 낳아 훌륭하게 키워준 내 각시 신 수정 여사가 제게는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여보, 감사합니다.(꾸벅)
사위가 외국인이라니 많이들 궁금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저희 사돈 내외는 미국에서 부동산사업으로 자수성가하여 정착하신 중국분들이시고, 사위 스턴은 2남 1녀의 다복한 가정의 막내로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입니다.
한국을 동경하고 한국의 문화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K-pop 댄스 동아리에서 처음 둘이 눈이 맞아 마침내 한국 색시까지 맞이한 찐 한국 팬입니다.
지금은 한국말도 곧잘 하지만 우리 집에 처음 인사 왔을 때 떠듬떠듬 간신히 외어서 무릎 꿇고 했던 말
"어머님, 아버님,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했을 때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하늘에서 엄마, 아빠 품에 가장 먼저 내려온 사랑스러운 천사 나의 딸 희진아,
머나먼 미국 땅에 홀로 유학하여 그 외롭고 힘든 학업을 무사히 마치고 미국의 유수 기업에 당당히 취업까지 하더니 마침내 이렇게 멋진 청년과 결혼까지 알아서 척척하니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스러운지 모르겠다.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을 맞이하고 보니 돌아가신 너의 할아버지가 생각나는구나.
옛날 아빠가 엄마랑 결혼하기 전 할아버지께 처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였다.
잔뜩 긴장한 네 엄마에게 할아버지께서 하신 첫마디가
"결혼의 정의가 무엇인지 말해보라."고 하셔서 황당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유사 이래로 참으로 어려운 명제이기에 아직도 정답은 모르겠지만 결혼 생활을 먼저 해 온 인생 선배로서 이젠 너희에게 몇 마디 해줄 수 있을 것 같구나.
결혼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 사랑할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하더라.
너와 스턴이 설레는 마음으로 연애를 시작하였겠지만, 결혼을 결심한 지금은 서로의 단점마저 마침내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겠니.
`아름다운 장미'는 그에 달린 가시까지도 아름답다는 뜻이듯, `아름다운 결혼`이란 그에 딸린 고통마저 아름답게 받아들여야 한단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인내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꼰대 같은 말은 하지 않을게.
대신,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하며 부부간에는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심하거라.
거짓을 말하는 순간 상대 배우자는 비참하고 외로운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단다.
선인장은 수분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잎이 변해 가시가 되었다지.
너희는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가 되지는 말아라.
원래 해부학적으로 사람의 몸이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 있단다.
이는 사람이 사람을 아무리 막 껴안아도 찔려서 아프거나 상처가 나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러니 자주자주 서로를 꼭 안아주어라.
부러질 만큼 약하거나 안아주지도 못할 만큼 너무 살찌지 말고, 건강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유지하기를 게을리하지 말거라.
희진아, 스턴아,
사랑하는 나의 딸. 나의 사위야
살다가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 그만 모든 걸 놓고 싶을 때가 오더라도 너희가 맞잡은 두 손만큼은 절대 놓지 말아라.
서로가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아라.
너희 뒤에는 항상 너희를 지지하고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 사랑하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