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져야 움직인다.

타협도 좀 하고 삽시다.

by 허용수

치과의사라면 구나 당연히 이를 잘 빼는 줄 알고 있겠지만 이게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치주염으로 잇몸뼈가 녹아내려 덜렁거리는 이야 쉽게 뺄 수 있지만 뼈속에 단단히 박혀 꿈쩍도 안 하는 이를 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가 다 나오지 않고 일부만 보이고 경사져 있는 매복된 사랑니를 뽑는 건 무척 어렵다.

잇몸을 절개해서 치아를 절단하고 뼈를 깎아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

이를 뽑을 때 힘을 전혀 안 쓰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힘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힘만 쓴다면 여자 치과의사 선생님들은 이를 어찌 뽑겠나.

발치 겸자라고 부르는 집게로 이를 뽑기 전에 우선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이와 뼈 사이로 단단하고 뾰족한 금속 기구를 넣고 이를 밀어서 흔들어 놓는 일이다.

뼈 속에 단단히 박힌 이가 밀 밀린다는 것은 이보다 뼈가 약하다는 뜻이다.

치아와 뼈는 둘 다 우리 인체에서 무기질로 된 단단한 조직이긴 하지만, 뼈는 스펀지처럼 내부에 다공성의 구멍들이 있고 치아보다 유기질 성분이 많아 밀면 짓이겨지고 짜부라진다.

그렇게 뼈가 짜부러져야 이가 흔들릴 수 있는 공간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센 힘을 순간적으로 가해서 밀면 오히려 이가 부러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치아는 뼈보다 단단하긴 해도 암석처럼 결정 구조로 되어 있어서 대나무가 결 따라 갈라지듯이 순간적 타력에 맥없이 쪼개지거나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련한 차력사나 무술인이 맨손으로 돌을 격파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구나 충치 먹은 이는 퍼석퍼석하고 흐물흐물하기까지 해서 뼈보다 더 약하므로 뼈가 밀리기 전에 이가 먼저 부러진다.

그러므로 이를 뺄 때 시간이 많이 걸리고 치과의사가 끙끙댈 때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를 부러뜨리지 않고자 조심조심하는 것이다.

만일 이를 뽑다가 똑 부러져서 뿌리만 뼈속에 박혀 있게 되면 겸자로 잡을 수가 없 참으로 난감해지는데, 이럴 땐 어쩔 수없이 뼈를 갈아내고 이 뿌리를 까내야 하는 등 일이 커진다.




삐뚤삐뚤하거나 돌출된 이들을 예쁘게 배열하는 치아 교정이 가능한 이유도 치아보다 뼈가 약하기 때문이다.

교정은 뼈속에 단단히 박혀있는 치아에 교정용 철사(형상기억합금을 쓴다)나 고무줄 또는 스프링 등으로 약한 힘을 가해 원하는 위치로 천천히 이동시키는, 시간이 많이드는 치료이다.

강한 힘을 줘서 치아 이동을 빨리 시키면 교정 치료가 일찍 끝날 것 같지만, 이렇게 무리한 힘을 가하면 아프도 하거니와 치아 뿌리가 녹아버리거나 심하면 이가 빠질 수도 있다.

속에 박혀있는 치아가 자리 이동을 하고 이동된 자리에서 다시 뼈로 둘러싸여 꽉 잡혀 있으려면, 이동하려는 방향으로는 뼈가 녹아서 공간이 생겨야 하고 반대쪽에 원래 있던 자리에는 다시 뼈가 만들어져 이동된 공간을 메워야 한다.

그런데 너무 센 힘으로 빨리 이동시켜 버리면 원래 자리에 있던 공간에 뼈가 다시 채워질 시간이 부족해 턱뼈 내에 공간만 넓어지고 치아가 뼈로 꽉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면 이가 흔들리고 심하면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골격 성장이 완료되어 뼈가 단단한 성인 교정에서는 뼈가 녹고 다시 채워지는 과정이 성장이 왕성한 청소년기에 비해 더디므로 더욱 약한 힘으로 더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교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교정 후 고정도 거의 영구적으로 한다.




이번엔 보철 치료 얘기다.

이를 덮어 씌우는 보철물의 종류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금니와 도자기이(요즘은 도자기 대신 지르코늄이란 재료를 많이 쓴다. 도자기와는 물성이 많이 다르다)이다.

심미적인 이유로 앞니는 도자기이로 하고 기능적인 면이 중요한 어금니는 금니로 주로 씌우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금니도 도자기이로 많이 하는 추세다.

금니는 금의 연성 때문에 설사 처음에 높이가 조금 안 맞아도 쓸수록 편안해지는 융통성이 있는 반면, 도자기이는 오래 쓴다고 해서 저절로 맞아 들어가지 않는다.

도자기는 닳지 않기 때문이다.

도자기이는 맞물림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타협하지 않고 깨지든지 맞물리는 상대 치아를 오히려 닳게 만든다.

오랜 세월 땅 속에 묻혀있던 유물들도 금속 제품은 녹슬고 부식되어 출토되지만 도자기류는 깨져 있을망정 부식되거나 녹아 없어지지 않다.

그러므로 도자기이를 어금니에 쓸 때는 처음부터 맞물리는 높이(교합)를 신경 써서 정밀하게 맞추어야만 한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다는 소신도 중요하지만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가치가 상존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발 빠르게 수용하고 적응할 수 있는 융통성도 필요한 시대이다.

나 자신은 스스로 의지가 굳은 거라 주장하지만 남의 눈에는 고집불통, 독선과 아집으로 보일 수 있다.

나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하며 틀렸다면 자기주장을 굽힐 줄도 알아야 한다.

신념에 너무 매몰되면 자살 폭탄 테러도 나오고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도 생기는 거다.

특히 정치인들은 자기가 속한 정치 단체와 신념에 매몰되어 맹목적이다 보니 분명 아닌 것은 아닌 줄 알면서도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는다.

이러니 타협할 줄 모르고 상생과 협치의 정치를 못하는 거다.


어디 영원 불변한 진리란 게 있겠는가.

플라스틱처럼 영원히 썩지 않 건 공해다.

갈대는 흔들려야 살아있는 것이랬다.

구강 건강을 위해 썩은 이를 뽑거나 정을 위해 치아를 움직이려면 뼈가 녹고 구부러져야 하듯 건강한 사회를 위해 양보할 줄 알고 희생할 줄 아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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