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는 안 됩니다.
나의 큰딸이 마침내 아들을 낳았다.
드디어 내가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입덧과 임신중독증으로 고생을 했기에 예정일보다 일찍 유도분만을 하게 되었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내는 산후조리를 해주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당초 두 달 정도 체류할 예정이었는데 보름 일찍 출국하게 되어 두 달이 훨씬 넘게 이별하게 생겼다.
여태껏 한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오랜 기간 떨어져 있게 된 것이다.
아들과 나, 남은 두 남자들끼리 살림을 해야 한다.
평소에도 제 엄마를 도와 집안일을 척척해오던 아들이라 능히 혼자서도 빨래와 청소, 설거지와 분리수거까지 모든 살림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업무 분담 차원에서 식사 준비만큼은 내가 하기로 했다.
음식은 마트에 가면 반찬과 국이 종류별로 편리하게 반조리 상태로 판매되고 있고 장모님과 처제가 따로 또 챙겨주기에 라면으로 대충 때우는 법 없이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있다.
처음 한 동안은 아내의 잔소리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좋았다.
친구들은 이 같은 자유를 누리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한다는 둥 전생에 거북선 노를 저어야 한다는 둥 하면서 축하를 해준다.
하지만 3주 차가 접어드니 모든 게 시들해졌다.
아내가 보고 싶고 홀아비 생활이 적적해서 견디기 힘들다.
아내를 따라 즐겨 다녔던 마트 가는 일도 혼자서는 재미가 없다.
집안일을 하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 문제는 종일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점이다.
아침을 먹으면 아들의 점심 도시락을 준비해야 하고 저녁거리를 고민해야 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식재료를 미리 냉동실에서 덜어내 냉장실로 옮겨 놓아야 하고, 아침에는 쌀을 씻어 저녁에 먹을 밥을 안쳐야 한다.
마트에 가서 장을 봐 오면 묶음판매로 대용량인 식품은 해체해서 소분하고 냉장할 것과 냉동할 것을 구분해 저장해야 한다.
과일이나 채소 등의 신선식품은 미리 할 수도 없어 아침 일찍 일어나 서툰 도마질을 해야 한다.
게다가 이걸 매일매일 해야만 하는 것이다.
당연히 아침 운동은 포기해야 했다.
주말이면 영화관에도 가고 책방이나 도서관에 갈 수 있는 여유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마트 갔다 와서 정리 수납하고 화장실 청소, 어항 청소를 하고나면 화분 케어를 해야했다.
거실에 앉아 TV드라마 보며 빨래를 개다 보면 영락없는 주부가 되어 하루가 다 간다.
평소 아내에게 자기계발을 하지 않고 너무 살림하는데만 시간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핀잔을 주었던 사실이 후회된다.
아내는 문학을 전공하고 소설도 썼던 문학소녀였다.
똑똑하고 예쁜 아내가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건 능력이 부족해서도 못 나서도 아니다.
자기만의 시간을 오롯이 가족을 위해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아이 하나만 낳아도 자기의 시간이 없다.
그런데 그렇게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게다가 막내는 장애인이다.
육아며 살림이며 간간이 집안일을 도와주긴 했었지만 나는 내 시간의 극히 일부만 쓴 것이다.
내가 치과의사로서, 병원의 원장으로서, 박사로서, 교수로서, 치협의 회장으로서, 밴드 단장으로서, 작가로서 자기계발과 자아실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헌신적인 시간 덕분이었다.
고작 두 달도 안 되는 아내의 빈자리에 이러한 사실을 이제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내 친구 중엔 벌써 수 년째 딸과 부인을 호주에 보내놓고 홀로 기러기 생활을 하는 친구가 있다.
지금은 딸이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는데도 부인이 딸과 살고 있단다.
그런가 하면 사업을 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는 있지만 너무나 바빠서 남편으로서 경제적인 부양만 하면 사생활에 대해 일절 서로 관여하지 않는 쿨한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 친구도 있다.
진작부터 이미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친구들은 고작 두 달여간의 자유만 허락된 나를 동정한다.
그러면서 벌써 아내를 그리워하는 나를 이해할 수가 없단다.
내가 좀 유별난가?
친구들을 부러워해야 하나?
공허한 허세 속에 비치는 그들의 외로움이 오히려 딱해 보인다.
부부란 고슴도치처럼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프고 멀리 떨어지면 춥고 외롭다.
그러니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 나가야 하는 것이 부부다.
가정을 떠 받치고 있는 두 기둥이 너무 붙어 있거나 너무 멀어져 기둥 하나가 빠져나가도 지붕이 무너질 것이다.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숨 막힐 듯 상대를 옥죄거나 소유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적당한 자유와 거리를 사랑과 신뢰로써 유지해 나가야 한다.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귀가할 때까지 한나절의 이별이 있기에 하루 동안에도 그립고 반갑게 맞이할 수가 있다.
그래서 주위의 부부치과를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각자의 치과를 운영하는 경우는 이른바 '쌍끌이'니까 맞벌이가 되겠지만, '부부치과'라는 간판을 달고 하나의 치과를 부부가 공동으로 운영을 할 경우는 좀 안 돼 보인다.
서로 죽고 못 사는 신혼 때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평생 동안 하루 종일 얼굴 맞대고 붙어 산다면 과연 좋기만 할까.
같은 직업으로 생리를 뻔히 다 아는데 모임이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핑계를 댈 수 있을까.
부부싸움을 했는데도 종일 같이 있어야 한다면 끔찍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의 부부치과는 대개 부부가 동시간대에 진료하기보다는 요일별로 진료일을 달리하거나 부인이 임신, 출산을 겪으면서 육아에 전념하느라 전업주부로 들어앉는 경우가 많다.
어렵게 치과의사가 되었을 텐데 아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말부부도 괜찮아 보인다.
직장 관계상 여타 여건상 주중엔 서로가 떨어져 지내야 하니까 불편하고 안타깝겠지만 각자의 시간과 여유를 가지며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주말에 견우와 직녀처럼 만나니 얼마나 애틋하고 반가울 것인가.
매일 붙어살면서 서로 지지고 볶고 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기러기'는 내 기준에선 절대 안 된다.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국내 기러기는 주말부부에 해당되니까 문제없지만, 해외 기러기는 문제가 다르다.
일 년에 한두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하다가 점점 뜸해지고 종내는 자녀가 학업을 마쳐도 돌아오지 않는 이른바 '갈매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기둥 하나가 나가도 너무 나가버린 거다.
이러면 가정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처음 한 두해야 그립고 외로움에 몸부림치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결국 참을만하고 적응이 되어 버리는 거다.
나는 이별에 적응되어 버리는 것이 두렵다.
나의 한계는 현재로선 한 달인 듯하다.
앞으로 남은 한 달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난감하지만, 마음껏 그리워하고 실컷 외로워야겠다.
더 이상의 이별에 적응되어 버리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