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 vs 아름다움
요즘 공원이나 광장에 가면 저녁마다 무료로 줌바댄스 강습을 하는 곳이 많다.
문수체육공원을 산책하는데 호반광장에서도 댄스 강습을 하고 있다.
아내는 우리도 참여하자고 하지만 죄다 여자들 뿐이라 매번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용감한 청일점을 발견하고는 용기를 얻었다.
그 아저씨도 부인을 따라오셨다는데 부인이 강사의 도우미를 할 만큼 춤을 아주 잘 췄다.
처음엔 동작을 몰라 맨 뒷줄에 서서 버벅거려야 했다.
하지만 어지간한 술 약속은 취소하고 두 달 가량 열심히 다녔더니 웬만큼 동작을 익힐 수 있게 됐다.
마침내 청일점이었던 아저씨 부부와 나란한 줄로 진급을 해서 내 뒤로 초보들이 날 보고 따라 하는 위치에 까지 왔다.
이제 두 남자는 고정 멤버가 되어 여자들의 틈바구니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끝까지 버티자고 악수를 했다.
지금은 어느새 남자들이 8명이나 된다.
나는 젊었을 때 꼭짓점 댄스의 톱에 설만큼 춤에 일가견이 있었다.
댄스에 대한 갈증이 늘 있었지만 주변에다 아무리 쉘위댄스를 외쳐봐도 호응이 없었는데 이렇게라도 댄스를 배울 수 있으니 좋았다.
한 시간 내내 빠른 비트의 노래에 따라 쉴 새 없이 춤을 추다 보면 숨도 차고 땀이 비 오듯 해서 운동량이 상당했다.
나는 운동도 좋지만 춤 자체를 배우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강사의 동작을 디테일하게 흉내 내려고 신경을 썼다.
일부러 귀엽고 여성스럽게 엉덩이도 돌리고 동작 하나하나를 크고 우아하게 했다.
이렇게 정확한 동작을 할수록 운동강도는 더 컸다.
강사는 기합까지 붙이면서도 호흡 한 번 흔들림 없이 그 숨찬 동작들을 미소를 띠며 해내는 여유가 과연 프로다웠다.
나는 동작뿐만 아니라 웃는 표정까지 따라 해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숨이 차서 헉헉거리며 미소를 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잔 빼느라 무표정한 얼굴로 살다가 안 쓰던 안면 근육을 쓰려니 미스코리아의 억지 미소처럼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고강도 운동이 되고 만다.
젊었을 때는 나도 환자들에게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표정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었다.
치과는 아프고 무서운 곳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신경이 날카롭고 예민한 분들을 상대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진료 중에 오해나 불만으로 인한 분쟁이 자주 생긴다.
언젠가 혼자 온 아이의 충치를 마취하고 치료를 해서 보낸 적이 있다.
그런데 조금 후에 흥분한 아이 엄마가 찾아와서는 도대체 치료를 어떻게 했길래 멀쩡하던 애 얼굴이 이렇게 퉁퉁 부었냐고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살펴봐도 전혀 부은 기색이 없는데 대체 어디가 부었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마취주사를 처음 맞아 본 아이가 감각이 둔해진 느낌을 얼굴이 부었다고 엄마에게 말했던 거였다.
아이는 자기는 마취주사를 맞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데, 이게 다 나의 마취 필살기 때문이다.
마취 연고를 발라 잇몸 표면마취를 먼저 한 다음 주사기를 보이지 않게 몰래 감춰서 살짝 마취를 하면 아프지도 않으면서 깜쪽같이 마취를 할 수 있다.
아이가 겁먹지 않도록 신경을 써서 배려해 준 것이 되려 오해를 사게 되니 환장할 노릇이다.
억울하고 황당하긴 했지만 아이의 말만 믿고 흥분한 엄마를 달래느라 애써 미소를 잔뜩 머금은 얼굴로 차분히 설명을 드렸다.
하지만 그 엄마는 어디 새파랗게 젊은 놈이 실실 쪼개면서 약을 올리냐며 더 날뛰는 게 아닌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해도 장소와 분위기에 맞지 않게 자연스럽지 못한 미소는 상대에게 진정성이 전해지지 않아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도 한다.
아마도 그 엄마는 하도 어이가 없어 실소를 지은 내 모습을 간파했으리라.
그때 이후로 환자에게 미소 짓는 일이 확연히 줄었다.
예전엔 '자연스러움'이 '아름다움'보다는 더 상위의 개념이었다.
성형미인보다는 자연미인을 더 쳐 주듯이 말이다.
우리 치과에서는 노인들의 이를 만들 때는 일부러 좀 누렇게 색을 넣고 배열도 약간 삐뚤게 해서 가능한 자연치아처럼 보이게 하려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의 이가 너무 밝거나 배열이 고르면 틀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 드신 분들도 무조건 밝고 예쁘게만 만들어 달라고 한다.
백세시대인 만큼 제2의 인생이 생긴 노인들에게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구가 높다.
밝은 치아색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어 치아 미백을 하면 충분히 밝아졌는데도 만족을 모른다.
치아 색이 지나치게 밝으면 오히려 유령처럼 기괴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도 미백이 아예 되지 않았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조차 있다.
그래서 미백치료는 위. 아래 치아를 동시에 시작하지 않는다.
윗니부터 미백을 시작해서 2 주쯤 지났을 때 위. 아래 치아색이 대조되어 확연히 달라졌음을 본인이 확인을 하고 나서야 아랫니도 시작한다.
뭐든 지나치면 자연스럽지 못하다.
우리 딸들은 예쁜 제 엄마를 닮지 않고 아빠를 닮았다.
그래도 내 눈엔 귀엽기만 한데 책임을 지라고 어찌나 극성을 하는지 내가 교정 치료를 해주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사람 꼴이 보이는데 지들 눈에는 되게 예뻐진 줄 아나보다.
급기야 작은 딸은 연예인을 하겠다며 나서더니 걸그룹 활동도 하고 가끔 TV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나오기도 한다.
조금만 더 예뻐지면 주인공으로 뜰 수 있다며 성형을 하고 싶어 하지만 끝도 없는 성형 중독에 빠질게 뻔하다.
김태희가 밭을 갈고 전지현이 소를 몬다는 우즈벡도 아니고 도대체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우리네 이웃을 연기하는 게 과연 현실적이라 할 수 있나.
울산 출신의 연예인들도 많지만 외모만 보고 처음부터 주연을 맡았다가 연기력 논란이 있는 배우도 있지 않은가.
요즘은 오히려 개성 있는 외모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대세인 시대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 된다면 민생 경제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배우 김태희 씨도 좋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예쁜 선생님으로도 괜찮지 않았을까.
호떡집주인이 한소희 씨라면 아마도 호떡집에 불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치과에서는 미모의 직원을 채용해 봤더니 길 건너 군부대에서 군인들만 잔뜩 왔을 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남편과 아이의 치료비 결제권은 안주인에게 있는 경우가 많아 미인계는 오히려 역효과였다.
오히려 수다스럽고 잘 웃는 직원이 인기가 많았다.
성형강국인 우리나라에는 인형처럼 표정이 없는 미인들이 많다.
이마와 눈가 주름을 없애고자 보톡스를 주사하면 안면 근육이 마비되어 웃을 때 입꼬리는 올라가는데 눈은 웃지 않는 이른바 썩소가 된다.
예뻐지고 젊게 보이는 치료가 자연스러운 미소를 앗아가는 것이다.
웃는 것도 연습을 많이 해야 안면 근육이 단련된다.
그러니 자주 웃는 사람이 미소도 아름답다.
주름진다고 웃지도 않는 성형미인보다는 해맑게 웃는 미소 천사가 훨씬 더 매력적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