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미스터 트롯

홍자도 내 환자였어예

by 허용수

올 여름은 유난히도 덥고 길다.

추석을 코앞에 둔 지금도 여전히 여름 날씨다.

벌써부터 성탄 캐롤과 눈 내리는 겨울이 그립다.

서해안이나 강원도처럼 폭설이 내리는 곳은 눈이라면 아마도 지긋지긋할 거다.

하지만 겨울이 다 가도록 눈 구경 한 번 하기 어려운 경상도에 사는 나 같은 사람은 일부러 눈 보러 설경을 찾아 여행을 가기도 한다.

지난 겨울엔 아내랑 수안보 온천과 천주교 배론성지 등 충청도 지역을 다녀왔다.

포근한 이불처럼 얗게 뒤덮인 세상에서 난 강아지들처럼 뒹굴며 겨울 낭만을 즐겼다.




돌아오는 길에 제천 부근을 지나니 박달재 고개 이정표가 나타난다.


"천둥산 바악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니임아.~"


나는 자연스레 '울고 넘는 박달재'란 노래를 흥얼거렸다.

아내도 옛날 사람인지라 들어는 봤겠지만 가사를 끝까지 외어서 부르는 내가 좀 신기한가 보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도 모르고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노래인데 어째서 가사를 기억하는지 나도 모를 일이다.

비단 이 노래뿐만 아니라 나는 '황성옛터'부터 웬만한 트로트 가요들은 거의 꿰고 있.

아내는 신기한지 자기도 좀 배우겠다며 내게 트로트를 불러 달라고 자주 조른다.

이렇게 많은 노래들이 내게 각인된 이유는 아마도 나의 어린 시절 환경 탓인 싶다.


내 동생의 백일사진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공장이었다.

부모님은 일본말로 '요꼬'라고 부르는 편물업을 가내공업으로 하셨다.

손뜨개로 만드는 니트류를 기계를 이용해 한꺼번에 대량 생산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옛날에는 애기들 백일사진을 찍을 때 남자 애기는 고추를 자랑한다고 발가벗겨서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을 동네 사진관에서는 쇼윈도에 떡 하니 걸어두기도 했다.

그렇다면 여자 애기들은 어떻게 백일 사진을 찍었을까.

당시 우리 집 공장에서 소위 '백일복'이란 제품을 만들어 대히트를 쳤다.

하얀 니트 옷감으로 상하의를 만들고 양말과 앙증맞은 방울이 달린 비니 같은 모자까지가 한 세트인데 아기들에게 입혀 놓으면 마치 귀여운 토끼처럼 예뻤다.

'요꼬'는 그렇게 어려운 기술이 아니어서 동네 총각들과 처녀들에겐 좋은 일자리였다.

남자 직공들이(나는 삼촌들이라 불렀다) 옷의 앞판, 등판, 소매 부분들을 짜내면 여자 직공들이(이모들이라 불렀다) '미싱'과 '오바로크'라는 공업용 재봉틀로 이어 붙여 옷을 만드는 식이다.

이런 기계들은 다 전기모터를 사용하므로 엄청난 소음이 발생한다.

부모님의 안방을 제외하고는 우리 집 모든 방들이 죄다 작업장이고 창고였다.

나는 미싱들이 요란하게 돌아가는 방 한구석에다 밥상을 놓고 숙제를 하곤 했다.

소곤대는 잡소리는 귀에 거슬려도 엄청난 공장 소음은 이런 잡음들을 다 묻어버리므로 백색소음이 되어 오히려 집중이 잘 다.

백색소음은 비단 공장 소음만이 아니었다.

당시 피 끓던 청춘들이 단순노동을 하다 보니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듣거나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는데 이 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삼촌들은 거의 '나훈아'파였고 이모들은 죄다 '남진'파였다.

그러니 남진과 나훈아의 노래들은 내 귀에 딱지가 앉아 있다.

빗자루를 기타 삼아 남진의 '저 푸른 초원위에'를 러 리사이틀을 하면 이모들 귀여움을 독차지 하곤 했다.


내 귀에 각인된 노래들은 이뿐만 아니다.

할머니께서 매일 밤 챙겨보시던 연속극(여로, 아씨 등) 주제곡들과 어린이들이 즐겨보던 만화영화 주제가들은 지금도 다 외운다.

요괴인간, 우주소년 아톰, 황금박쥐, 요술공주 세리, 마린보이, 프란다스의 개, 엄마 찾아 삼만리, 부리부리박사 등등등.

많은 창작 동요들도 TV에서 배웠다.

이렇게 어릴 때 각인된 노래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냥 머릿속에 남아있다.


반면 성인이 되어 듣는 노래는 가사를 보지 않고 부를 수 있는 곡이 별로 없다.

그러니 노래방에 가서 꼰대 취급받지 않려면 요즘 노래도 연습해야 한다.

하나의 애창곡을 완성하기 위해선 출퇴근하는 차 안에서 적어도 50번 이상은 들어 각인을 시켜야 한다.

가사는 물론이고 원곡 가수의 디테일한 흉내까지 낼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자기만의 색깔을 띤 노래로 바꿔 부를 준비가 된다.

박자도 쪼개고 자신의 음역대에 맞게 조옮김도 할 수 있다.

이 정도 경지면 화면의 가사를 볼 필요도 없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감정 잡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 애창곡을 만들어 놓으면 그땐 이미 유행 지난 노래가 되어버리고 만다.




트로트도 한물간 노래로 전락했나 싶었는데 요즘 모 방송국에서 미스/미스터 트롯 경연대회를 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

임영웅 씨처럼 오랜 무명 생활을 하던 많은 실력 있는 가수들을 스타로 발굴해 냈다.

가수 홍자도 무명 때 내가 치료했던 환자였데 지금은 스타가 됐다.

발라드나 팝, 심지어 록을 부르던 타 장르의 기존 가수들조차 트로트 경연대회에 참가하는 게 신기하기도 한데 이들이 썩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걸 보면 트로트가 결코 만만한 장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오디션에 참가하는 일반인들 중에는 정말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유소년부의 꼬마 참가자들은 실력이 어른 뺨친다.

타고난 끼도 있겠지만 어디서 돈 주고 레슨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아직 뜻도 모를 가사를 세상 다 산 애늙은이처럼 꼬마들이 감정 잡고 부르는 모습은 좀 징그럽기도 하다.

변성기 이전의 아이들은 남녀 구분이 안 될 만큼 음색이 맑고 음역대도 한 옥타브 정도로 좁다.

그러니 아이들의 음역대가 감당할 수 있는 편안한 동요 불러야 할텐데 어른들의 노래를 흉내 내다가 목소리를 다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꼬마들이 어른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니 원숭이 재주 보듯 신기하고 재미있나 본데 어른들의 흥미만을 위해 아이들을 혹사시키는 건 안 될 일이다.

적어도 변성기는 지난 청소년기부터 오디션에 참가하도록 나이 제한을 두었으면 좋겠다.


나도 노래라면 제법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특히 트로트는 내 머리 속에 이미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있어 어떤 노래든 구성지고 맛깔나게 부를 자신이 있다.

그래서 미스터 트롯에 한 번 나가볼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해 보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 접고 말았다.

맨 정신에는 노래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술이 한잔 들어가야지 비로소 실력이 나니 어쩌겠나.

외국인도 우리의 트로트를 기막히게 부르고 술 게임할 때나 부르던 후렴구인 '아파트'란 노래가 세계적인 노래가 되는 세상이다.

한국의 정서를 담은 트로트가 빌보드 차트에 진입할 날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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