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왕

아줌마가 무서워.

by 허용수

퍽. 퍼벅. 탁. 깡!

'아야야. 에이 확 씨~.'

너무 아파서 욕이 절로 나올 뻔했다.

호면과 호구를 착용했는데도 이 아줌마가 내려치는 죽도에 맞으면 맞는 곳마다 엄청 아프다.

'검도 삼배단'

즉 검도의 1단은 맨몸 무술의 3단과 맞먹는 위력이 있다는 뜻이다.

검도인은 비 오는 날 우산 하나만 있으면 겁날 것이 없다고도 한다.

그래서 운동 겸 호신용으로 시작한 검도였다.

기본 동작을 수백 개씩하고 상호 '연격'을 하고 나면 충분한 유산소 운동이 되어 몸이 데워진다.

그러면 10분간 자유대련 시간을 갖는데, 이때 이 아주머니를 만나는 게 공포의 순간이다.

나보다 뒤에 들어 온 생초보인데도 무섭다.

검도는 머리, 손목, 목, 허리 등 일정 부위만 타격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분은 그냥 아무데나 마구 사람을 장작 패듯 한다.

키도 작고 덩치도 쪼그만 여자는 쩔쩔매는 내가 재미있어 죽겠는지 신난 표정이다.

그냥 확 몸 받음 해서 튕겨내버리고 싶지만 여자라 차마 그러지도 못한다.

동작이 커서 뻔히 보이지만 나 역시 초보인지라 막무가내식 반칙 공격엔 속수무책이다.

가끔 관장님과 대련을 하기도 하는데 관장님은 오로지 방어만 하는데도 오히려 때리는 내가 헉헉대며 지칠 뿐이다.

그럴 때면 관장님이 한 번씩 머리를 가격해 환기를 시키기도 하는데 '팅'하는 금속성 소리와 함께 정신이 번쩍 든다.

군더더기 없는 빠르고 간결한 손목 스냅만의 동작이라 순식간에 번쩍하고 번개가 보이지만 전혀 아프진 않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의 죽도에는 온몸의 체중이 다 실려 있어 맞으면 무지근하게 아프다.

일 합에 볏짚단을 베는 예리한 사무라이 칼날에 비해, 중세 유럽 기사들의 무거운 칼은 맞으면 몽둥이처럼 멍들어서 죽 것 같다.

내가 딱 그짝이다.

견디다 못해 등을 보이고 달아나면 쏜살같이 달려들어 등이고 어깨고 마구 때리는데 여기는 보호구도 없는 부위여서 더 아프다.

이분의 죽도에는 힘 뿐만 아니라 감정도 실렸는지 대체 내게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러는지 모르겠다.

집에서 받는 분풀이를 내게 하는 게 분명하다.

야간반에서 새벽반으로 옮겨 피해 다녔지만 귀신같이 알고 따라온다.

어여쁜 아가씨도 아니고 남의 집 아줌마한테 오뉴월에 개맞듯하는 서러움이 마침내 검도를 그만두게 된 백만 가지 이유 중 하나였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병약했던 내가 친구들에게 치일까 봐 부모님은 나를 태권도장에 보내셨다.

일 년이 넘도록 착실히 다닌 끝에 검은띠의 유단자가 되었지만, 동화책 속의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어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나는 호신술을 쓸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의 큰 딸인 희진이는 태권도의 덕을 보았다.

고1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보냈었는데, 동양인이라고는 처음 보는 일리노이 시골 깡촌의 백인 촌놈들이 원숭이 대하듯 단체로 희진이를 괴롭혔단다.

견디다 못해 선생님께 하소연했더니 수업시간에 희진이를 앞으로 불러내더란다.

한국인이니까 태권도를 할 줄 아냐고 물으시길래 품띠까지 딴 유단자라고 하니까 시범을 한 번 보여 달라고 하셨단다.

절도 있고 박력 있게 품새 동작을 멋지게 시연했더니 아이들의 입이 떡 벌어진다.

선생님께서 희진이는 태권도 유단자라 붕붕 날아다니는 실력자인데 미국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일부러 힘을 숨기고 있는 거니까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씀하셨단다.

그 후론 아무도 희진이를 괴롭히는 친구는 없었다고 한다.


내가 치과대학 다닐 때는 중국 무술인 '우슈' 도장에 다니던 동기가 있어 한 번 따라간 적이 있었다.

중국 전통 복장의 도복과 마치 중국 무술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멋진 동작에 빠져 바로 등록을 다.

하지만 이런 무술 동작이 실전에서는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었다.

중국 무술 고수가 격투기 선수에게 폼만 잡다가 개망신 당하는 유튜브 영상들을 많이 봤다.

검도든 태권도든 우슈든 이들은 엄연한 경기규칙이 있어 반칙하면 페널티를 받는 정식 스포츠이지, 흉기를 쓰고 규칙도 반칙도 없는 력배들의 비열한 길거리 싸움과는 엄연히 다르다.

어줍잖은 실력으로 나댔다가는 큰일 날 수 있다.

각박하고 살벌한 도시에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살인과 폭력을 행사하는, 상식적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 사고방식의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들이 돌아다닌다.

어디 이들뿐이랴.

우리 학교가, 사회가, 정치권이 모두 질서를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지 않고 온갖 편법과 비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반칙을 일삼는다.

신 냉전 시대라 일컫는 국제사회에서도 국가 간 협약이나 국제 질서를 손바닥 뒤집듯 깡그리 무시하고 제 입맛대로 번복하며 여차하면 전쟁도 불사하는 강대국들의 횡포를 보고 있다.

자기 나라에 투자할 공장의 설비 전문가들을 쇠고랑 채워 잡아 가두고 협박을 하는 깡패짓을 한다.

언제까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도 지켜보기만 해야 할까.

반칙을 쓰는 양아치들이 무서워서 마냥 도망만 다니고 피하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막무가내식 반칙 공격을 하던 검도 초보 아줌마를 어설픈 실력을 가진 나는 상대가 안 되었지만 관장님이 상대했더라면 과연 어땠을까.

아마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바로 제압당했을 것이다.

어디 배터리 공장뿐이겠는가.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 미국 내 공장 설비를 하려면 한국의 기술자들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

한국인을 만만히 본 미국 촌놈들에게 숨겨논 우리의 실력으로 본 때를 보여줘야 한다.

상대가 아무리 반칙을 하고 깡패짓을 해도 그들을 단숨에 제압하려면 어쭙잖은 실력이 아니라 막강한 실력을 지닌 진정한 강자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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