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과 글쓰기

코비드 19 팬데믹의 시작

by Crys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ronavirus)로 인해 마스크 착용 및 사회적 거리두기 등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해간 지 거진 두 해가 다 되어간다. 기존 SARS보다 전염성이 강하다고 알려진 이 변종 바이러스는 중국 우한에서 전 지구촌으로 퍼져 나가는데 불과 몇 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도로 발달한 항공산업으로 인해 세계는 이미 일일생활권이 되어버린 데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 처음 미디어를 통해 중국 우한의 뉴스를 접했을 때, 영화에서 나올법한 일이 벌어지고 있던 그곳의 현실이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수 만 명에 달하는 확진자 때문에 모자란 병동을 초스피드로 건설하는 영상을 보면서도 남의 나라 일이라고 여겼었다. 몇 해 전에도 SARS나 MERS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이 바이러스가 태평양 너머 미국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될 가능성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런데 3월 초부터 미국 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하더니, 3월 중순에 이르러서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캘리포니아주 내 몇몇 도시 행정부가 학교 휴교령을 내리는 것을 필두로, 남가주 대규모 쇼핑몰과 백화점, 디즈니랜드와 같은 놀이 공원, 박물관 등이 3월 말까지 영업정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급기야 3월 19일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썸 (Gavin Newsom)은 모든 캘리포니아 주민에게 한 달 동안 Stay at Home Order를 내렸다. 말 그대로 출근도 하지 말고, 4월 19일까지 집에만 있으란 이야기다. 백신도 없는 상태에서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사람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 영업이 허락된 사업은 슈퍼마켓, 레스토랑 (테이크아웃만 가능), 의료기관, 약국, 은행, 우체국과 같은 필수 산업 (essential business)뿐이었다. 이 업종 외에 영업을 강행하는 사업체 (non-essential business)는 시 정부로부터 오백 달러 벌금형과 함께 시 검찰을 통해 기소될 수도 있었다. 이로써 캘리포니아주 내 사업체의 매상이 큰 타격을 입게 되었지만, 아마존과 같은 비대면 온라인 판매업체는 크나큰 호황을 맞게 되었다. 다른 사업체들은 문을 닫고 직원들을 내보내는 상황에서 아마존은 인력이 모자라 물류창고 운영 요원, 배달 운전기사 등을 대거 모집하였다. 배송업체들 역시 배송물량이 늘어 오히려 일이 더 바빠졌다.


당시 일주일에 한두 번 장 보러 외출하면 길에 다니는 차 하나 보기 힘들었고, 쇼핑센터 주차장도 텅 비어있었다. 대신 동네에는 출근하지 못하고, 집에 있는 사람들의 차량이 줄지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피했기 때문에 동네 산보를 나가도 사람을 만나면 서로 멀리 돌아갔다.


나 역시 매니저로부터 연락을 받고, 3월 16일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2006년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미국 생활을 시작한 이래, 미국 정착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갔다.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하고 싶던 미술공부를 시작해서 금속공예가가 되었다. 그리고 2017년, 10년 가까이하던 작품 활동을 중단하고, 지금 직장인 럭셔리 브랜드 회사에 입사했다. 항상 바쁘게 돌아갔던 지난 14년과 달리, Stay at Home Order가 발효된 후의 아침 일상은 특별히 할 일 없이 한가하게 모닝커피 마시는 것으로 시작했다.


봉쇄령이 내려진 첫 주는 그동안 시청하지 못했던 쇼(미국에선 드라마를 쇼라고 부른다)를 넷플릭스에서 따라잡았고, 그동안 등한시하던 집안 청소를 부엌을 필두로 시작하였다. 또한 마지막 백업이 2018년이었던 랩탑 하드 드라이브도 정리해서, 새로 백업을 해뒀다. 아이패드 iOS도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했고 (하도 오래된 버전을 사용해서 랩탑에 연결해서 업뎃했음), 구글 드라이브 및 원 드라이브도 정리하고, 필요한 파일을 다운로드하였다. 마지막으로 아이클라우드를 정리해서 공간을 마련한 후, 지난 석 달 동안 백업하지 못했던 셀폰도 백업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처음 의도했던 바와 달리, Stay at Home Order는 한 달 더 연장돼서 5월 중순까지 거진 두 달을 집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 매일 바쁘게 돌아가던 일상사가 집에서만 보내니까 시간이 더디 가고, 매우 답답했다. 하지만 당시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았던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이 적지 않아 바깥에 나가는 것 또한 꺼려졌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뉴스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 및 정직 처분을 받아 실업수당 신청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보면서, 혹시 나도 그들과 같은 처지가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고민이 됐었다.


여러모로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난 한동안 잊고 지내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바쁘게만 달려오던 생활이 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셈이지만,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하지 않았나? 강제적으로 생겨난 여유를 글 쓰는데 할애하기 시작하니 행복해졌고, 이 년 가까이 지난 이 시점에도 글쓰기는 여전히 나의 생활의 일부분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면에서 팬데믹은 나에게 글 쓰는 즐거움을 되돌려 준 행운의 계기가 된 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