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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Oct 29. 2021

미국 가정의 전통적 아버지상

영화 <Labor Day>의 프랭크


레이버 데이(Labor Day)는 미국 연방정부 지정 공휴일로 9월 첫째 주 월요일이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노동절과 비슷한 날이다. 미국 연방 정부의 공휴일은 대개 몇 월 몇째 주 월요일이나 금요일로 주말 이틀과 이어 삼일을 쉬는 롱 위크엔드(long weekend)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독립 기념일이나, 크리스마스는 제외). 5월 말인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현충일과 유사)와 9월 초의 레이버 데이(Labor Day)의 연관성을 찾으라면 첫째, 바베큐를 많이 해 먹는 공휴일이라는 공통점과 둘째, 학기의 종료와 시작과 맞물려 있는 공휴일이란 점일 것이다.


영화를 보더라도 레이버 데이를 맞아 가족도 아닌 객인 프랭크가 바베큐를 하자고 한다. 미국은 보통 메모리얼 데이를 기점으로 바베큐 시즌이 시작되어 여름 파티는 주로 바베큐 파티이다. 그러다가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8월 말, 9월 초 레이버 데이 위크엔드에 마지막 바베큐 파티를 마치고 나면, 날씨도 추워지기도 해서 그 후 바베큐는 점차 뜸해지게 된다. 또한 5월 말 여름방학에 돌입한 대부분의 학교는 9월 첫째 주 월요일인 레이버 데이 다음날 새로운 학기가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아델과 헨리(아델의 아들)가 레이버 데이 다음날 은행에 가서 예금 전체를 인출하는 장면에서 그 인출 과정을 도와주던 직원이 헨리에게 왜 개학 첫날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냐고 물어보는 게 그런 맥락에서다.


영화 <레이버 데이(Labor Day)> 조이스 메이나드(Joyce Maynard)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 제목처럼 어느 레이버 데이 주말에 일어난 사건을 성년이  헨리의 나레이션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젊은 아내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복역 중이던 프랭크는 맹장수술을 받은  병원에서 탈출해 도주 중이었다. 영화의 다른  축인 아델은 남편이 비서와  가정을 꾸린   년이 지나도록 남편의 빈자리에 공허함을 느끼며, 그녀의 삶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었다. 아델에겐 남편이지만, 헨리에겐 아버지가 없는 그들의 집은 언제나 적막하고, 생기가 부족했다.


프랭크와 아델은 탈출범과 인질의 관계로 우연히 만나 레이버 데이 주말을 함께 보내면서 사랑에 빠지게 되고, 함께 미래를 꿈꾸게 된다는 어찌 보면 통속적인 러브 스토리일 수 있다. 극 중 프랭크는 범죄를 저지르고 복역 중인 죄수이긴 하지만, 남자다운 남자이면서도 요리에 능하고, 아델과 춤을 추고, 십 년 가까이 방치되었던 집안 곳곳을 수리하고, 아델의 아들에게 야구와 타이어 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다정다감한 남자이다.


가족을 위해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어머니와 같은 한국 부모의 역할에 대한 통념이 존재한다. 근래엔 한국 여성의 사회기여도가 높아지면서 가정 내에서의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관념이 깨지고 있긴 하다. 미국 사회 역시 전체 노동인력의 50%가 여성인 현실 하에 미국 남자들의 가정 내의 성역할은 기존의 그것에서 많이 후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1987년을 배경으로 그려지고 있는 영화 <레이버 데이>는 미국 가정에서의 전통적인 아버지상이 아이러니하게도 탈옥수를 통해 묘사되고 있다.


헨리의 친아버지는 후처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둘과 함께 딴 집에 살고 있는 관계로 아버지와는 가끔 만나 대화 없는 식사를 할 뿐이었다. 따라서 헨리는 그의 일상 가운데 부재중인 아버지상을 야구도 함께 하고, 집안의 삐걱거리는 곳을 수리해 주는 생판 남인 프랭크를 통해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또한 아델의 자동차를 손봐주고, 아델과 정답게 춤을 추는 프랭크를 보면서 후일 한 여자의 남편이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된다. 심지어 아버지가 아들의 진로 찾는 것을 도와주듯이 프랭크에게 배운 복숭아 파이 레시피 덕분에 성년이 된 헨리는 베이커리까지 열게 되었다.


스파이더 맨, 캡틴 아메리카와 같은 슈퍼히어로 블럭버스터 영화나 코미디 영화의 홍수 속에 인간의 미묘한 감정과 삶의 복잡함을 다룬 최근 영화를 찾기란 쉽지 않다. <레이버 데이>는 그런 나의 영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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