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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Oct 30. 2021

미국인은 '실'없다 (아니 'silly'하다)

미국인에 의한, 미국인을 위한 코미디 <The Interview>


소니 픽쳐스에서 제작한 영화 <디 인터뷰(The Interview)>는 데이비드 스카이라크(제임스 프랭코 분)라는 미국의 유명 TV 쇼 호스트가 북한의 김정은을 인터뷰하러 평양에 들어가서 벌어지는 일을 드라마화한 코미디이다. 2014년 크리스마스 개봉을 앞두고 테러리스트의 9/11식 공격이 상영극장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공개 협박 덕분에 대형 극장들이 이 영화 상영 계획을 연달아 취소했고, 급기야 크리스마스 직전 소니는 이 영화의 개봉 취소를 전격적으로 결정하였다. 하지만 발표와는 달리, 소규모 극장과 유튜브를 통해 크리스마스이브에 릴리스 됐고, 나 역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그 영화를 관람하였다.


<디 인터뷰>는 미국인에 의한, 미국인을 위한, 미국인의 코미디이기 때문에 사실 관계 확인이나, 고증을 무시하고 만든 영화다. 다시 말하면 김정은이라는 독재자와 북한이라는 지구 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았을 뿐, 검은 머리 북한인은 사실 미국인이며, 그들이 하는 짓도 미국스럽다. 김정은이 케이티 페리 노래를 좋아하는 걸 숨기려다 들켜서 쑥스러워하고, 김일성이 스탈린한테 선물 받은 탱크를 김정은이 타고 람보 흉내를 내는 설정 자체가 정말 미국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스토리'에 열광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유명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나누는 토크쇼가 하루 종일 전파를 탄다. 한 방송국의 편성을 보더라도 아침에 하나, 오후에 두세 개, 그리고 늦은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보통 세 개 정도의 토크쇼가 라인업 돼 있다. 특히 밤 11, 12시에 방송되는 프라임타임 토크쇼 호스트의 연봉은 유명 배우 개런티와 맞먹는다. 이들은 소위 '이빨이 센' 사람들로 토크쇼 게스트를 앞에 앉혀놓고 그들이 대답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데이비드 스카이라크는 성공한 쇼 호스트이긴 한데, 미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joke'이다. 웃겨서 '조크'가 아니라, 삶의 진지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가벼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과 부를 거머쥔 데이브 스카이라크가 사람들한테 무시를 당한다. 이런 '조크'가 정치부 기자도 하기 힘든 독재자 김정은을 인터뷰하겠다고 하니, 이미 그 자체가 코미디인 셈이다. 


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느 배우가 누구와 데이트하는지, 배우의 자녀들이 무슨 옷을 입는지, 그들이 어디로 휴가를 떠나는지, 어떤 행사에 참여하는지 관심을 갖고, 삶의 비본질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정치적 긴급 현안과 비교하여 볼 때 가십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열등감이나 자괴감이 들 수도 있겠다. 영화 <디 인터뷰>에서 프로듀서 역할을 맡은 애런 래파포트가 그랬다. 그래서 그는 정통 저널리스트 앞에선 기를 못 폈다.

 

이 영화는 철저히 헐리우드의 공식을 따른다.


1.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엄친아 하고는 거리가 아주 먼 데이브 스카이라크가 주인공이다. 파티하기 좋아하고, 술 마시고, 여자랑 놀고, 마약 하고, 할 건 다한다. 데이브 스카이라크의 친구이자 토크쇼 프로듀서인 애런 래파포트 역시 대동소이하다. 이들은 조신과 반듯함과는 담을 쌓은 날라리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거 같다.  


2. 이런 사람에게 김정은과 인터뷰하는 행운이 찾아온다. 그런데, 이 행운은 그냥 우연히 찾아온 게 아니라 데이브 스카이라크가 그 인터뷰를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착하고 조신하게 살면 저절로 복이 굴러 들어온다는 논리는 헐리우드 종사자들이 믿는 바가 아니다. 이들은 소위 'go-getter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이다.


3. 쇼 엔터테인먼트계 종사자인 주인공들이 CIA로부터 김정은 암살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 대목에선 CIA가 사람 봐가며 일을 맡겨야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대부분 애국적이다. 그들은 미국이란 나라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믿기 때문이다.


4. 이 어리버리들(데이브 스카이라크와 애런 래파포트)은 임무 수행 도중 언쟁을 자주 벌인다. 미국인들 특징 중 하나가 논쟁을 엄청 좋아한다는 거다. 뭘 하나 해도 의견이 맞서는데, 기나긴 논쟁을 통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 낸다. 영화를 보면, 데이브 스카이라크랑 애런 래파포트는 김정은 암살을 놓고 엄청 싸운다.


5.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두 가지 임무(방송 인터뷰와 CIA 미션)를 완수하여 방송계와 국민의 영웅이 된다. 루저의 인생역전, 헐리우드가 좋아하는 주제이다. 


<디 인터뷰>는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영화가 아닌 세스 로겐이 만든 미국인 취향의 실없는 코미디 (silly comedy)에 불과하다. 정치적 블랙 코미디는 더더욱 아니다. 이 세스 로겐이란 남자, 자기 영화에서 헛소리란 헛소리는 다하는 실없는 배우 겸 코미디언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R 등급 영화는 언어, 폭력, 선정적 묘사 등의 이유로 성인만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등급 역시 'R'인 만큼 선정적 언어 사용, 약물과 성에 대한 직접적 묘사 등이 난무하였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는 멀리하는데, <디 인터뷰>는 소재의 기발함 때문에 보긴 봤지만 선정적 언어는 역시 소화하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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