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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Oct 31. 2021

빌런과 퀴어(queer) 사이에서

주인공에 대한 개념을 바꾼 영화 <Cruella> 

내가 여자라서 그런가 좋아하는 여자 배우보다 남자 배우가 쉽게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 활동하고 있는 여자 배우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엠마 스톤이다. 일단 그녀는 시나리오를 고르는 안목이 있다. 그래서 출연하는 영화마다 재밌거나, 감동적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볼거리라도 있다. 엠마 스톤의 출연작 중 <어매이징 스파이더맨 2> 빼고 다 재밌게 봤던 것 같다. 


두 편의 스파이더맨 영화를 찍으면서 엠마 스톤은 앤드류 가필드와 연인관계로 발전했고, 결혼설도 나돌았지만, 2015년 둘은 결별했다. 2017년 그녀는 SNL을 호스트 했고, 거기서 현재의 남편인 데이비드 맥캐리와 만나게 된다. SNL 세그먼트 감독인 맥캐리는 엠마 스톤에 비해 네임밸류뿐만 아니라,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의 위상도 그녀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엠마 스톤은 배우임과 동시에 프로듀서로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맥캐리는 혼전 계약서(prenup)에 서명한 걸로 알려졌고, 둘은 2020년 결혼해 올해 딸을 낳았다. 


전 남친 앤드류 가필드가 키 크고 마른 체형인데, 현재 남편 역시 키 크고 마른 걸로 봐선 그런 스타일의 남자를 선호하는 듯하다. 엠마 스톤은 셀렙이지만, 로우 프로파일(low profile) 라이프 스타일을 고수하기로 유명하고 사생활 공개를 극도로 꺼린다 (누구처럼 자신의 결혼식 사진이나, 갓 태어난 자식 사진을 거금을 받고 잡지에 팔지 않는다).


올해 초 개봉된 영화 <크루엘라(Cruella)>에 엠마 스톤이 나온다는 걸 광고를 통해 접했을 때, 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당시 난 아직 극장에 가긴 싫었고, 디즈니 플러스도 없었다. 팬데믹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가 극장 개봉하는 영화를 HBO Max 혹은 디즈니 플러스와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동시에 집에서도 관람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레이버 데이 주말 연휴 드디어 <크루엘라>를 시청했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게 봤다. 우선 엠마 스톤의 영국식 발음 듣는 재미가 있었다. 영국 배우들이 미국 영화에 나오는 경우, 미국식 영어를 하기 위해 코치를 받고 영국식 액센트를 지우는 훈련을 한다. 대표적인 예로, 에밀리 블런트, 텔레비젼 시리즈 <워킹 데드>에 나오는 앤드류 링컨 등이 있다. 그래서 이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들을 때와는 아주 딴판으로 말하는 걸 볼 수 있다. 엠마 스톤은 이와 반대로 코칭을 통해 영국식 액센트를 익혔을 것이다. 


<크루엘라>는 패션이라는 소재를 소화하기 위해 다수의 의상이 등장하는데, 미술을 전공한 나로선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이 영화 의상을 맡은 사람이 이미 두 차례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엠마 스톤은 <크루엘라>에서 무려 46벌의 의상을 소화했다고 한다. 남작부인의 의상은 크리스챤 디올의 '뉴 룩'을 연상케 하는 다소 클래식한 느낌이라면, 크루엘라의 경우 아트 뉴보와 아방가르드를 믹스한 후 현대적 감각을 첨가한 듯한 의상을 선보였다.


아마 극도의 '와우 효과'를 본 의상이라면 아래 사진에서도 보이는 '쓰레기차 드레스'일 거라 생각된다. 나 역시 그 brilliance (이 단어를 천재성이라고 번역하긴 힘들다)에 감동받아 한동안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기 길게 늘어진 드레스 치맛자락이 처음엔 쓰레기차에 실린 쓰레기 더미였다. 너무 아방가르드한 컨셉의 의상이다. 

  


<크루엘라>는 의상 외에 무대 장식 역시 매우 돋보였다. 보색 위주의 색깔 사용과 아트 데코 스타일의 실내 장식은 미술적 감각이 뛰어나 눈으로 보고 즐기는 '눈사탕 효과'를 최대로 냈다. 솔직히 영화 재미없었어도 눈으로 보고 즐길 거리가 충분한 영화였다. 중간에 에스텔라(크루엘라)가 남작부인이 친엄마인 것을 알고 난 후 좀 늘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 외에 영화의 빠른 템포를 쫓아가면서 볼 거 놓치지 않고 자세히 다 보려면 좀 바쁜 영화다.


원래 크루엘라는 디즈니 만화영화 <101마리 달마시안>에 등장하는 심술 맞고 고약한 여자다. <크루엘라>의 수석 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참여한 엠마 스톤이 그려낸 크루엘라와 달마시안 모피로 코트를 만들려는 디즈니 악역 캐릭터인 크루엘라가 다른 점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복잡한 존재로, 한마디로 '착하다' 아니면 '나쁘다' 이렇게 정의 내리기 힘들다는 거다. 완벽하게 이분화된 그녀의 까맣고 하얀 머리카락은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투페이스처럼 선과 악이 공존하는 그런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크루엘라는 투페이스와 달리, 선과 악 어느 한쪽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좀 더 복잡한 캐릭터다.


어려서부터 착하고, 말 잘 듣는 순정파 여주인공이 아니라, 다소 거칠더라도 자신을 괴롭히는 부잣집 도령들에 맞서 싸우는 다소 전사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건 <겨울왕국> 엘사 캐릭터 이후 디즈니 트렌드인 거 같다. 교장으로부터 수많은 퇴학 경고를 받고, 야단을 맞아도 주눅 드는 법도 없이 끊임없이 싸워나간다. 생존하기 위해 소매치기가 되지만, 패션을 향한 열정은 한 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평범하지 않은 외모로 인해 에스텔라는 '퀴어'로 분류돼 사람들과 다른 취급을 받고, 놀림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에스텔라는 튀지 않고, 사람들 틈에 섞이기 위해 흰 머리카락을 염색하거나 가발을 써서 숨겼다. 영화 마지막 부분 에스텔라의 장례식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까만 머리와 흰머리가 함께 공존하는 크루엘라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보여준다. 


역시 디즈니 영화다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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