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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Oct 23. 2021

비 내리던 날

님가주에 살다보면 비를 보는 날이 많지 않다. 겨울철이 우기인데, 비오는 날이 일주일에 한번도 될까 말까다. 게다가 주로 밤이나 새벽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아침이 되면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햇빛이 쨍쨍 나는 경우가 많아 비내리는 걸 직접 볼 기회가 적다. 유독 비가 많이 내렸던 해가 있긴 있었는데, 낮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남가주의 비는 한국의 빗줄기처럼 굵지 않고, 매우 가늘게 보슬비처럼 내린다. 2006년 미국에 온 첫 해, 비오는 날 우산없이 후드 뒤집어쓰고 돌아 다니는 애들이 많아 놀랬었다. 그런데 살다보니, 우리 아들들도 비오는 날에 우산없이 후드티(여기선 후디라고 한다) 입고 나가게 됐다. 미국 초, 중, 고등학교는 부모가 차로 아이들 통학을 시켜주거나, 스쿨버스가 애들을 실어 나르는데, 학생들이 차를 기다리는 구역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시설이 돼 있어 굳이 우산이 필요없다. 게다가 빗줄기가 워낙 가늘어 잠시 비를 맞는다 해도 금세 마른다.


한국에 나가있다 보면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다니느라 바쁜데, 간혹 비오는 날엔 꼼찍없이 실내에 갖혀 창 밖 비 구경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대학 시절 비오던 날 자주 가던 학교 후문에 있던 까페를 떠올려 본다. 그땐 참 비를 좋아했고, 비오는 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던 그 까페에 가는 걸 좋아했었다. 어두침침한 카페에 자욱한 담배 연기는 아마도 팔십년도 후반 학번인 나이기에 가능한 기억인 거 같다. 


난 이제 너무 실용적으로 변해서 예전처럼 비오는 날을 그리 낭만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런데, 비 내리던 날 찍은 이 사진을 보며 마음 한켠 예전의 감수성이 살아나는지 조금은 멜랑콜리해지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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