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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Nov 01. 2021

결혼은 사랑의 무덤?
20년 러브 스토리의 종착점

에단 호크와 비포 삼부작 (The Before Trilogy)

내가 좋아하는 헐리우드 남자 배우 중에 에단 호크(Ethan Hawke)가 있다. 그리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브래드 피트만큼 유명하지도 않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배우로서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한 사람이다. 에단 호크가 출연한 영화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영화가 아마도 독립 영화인 비포 삼부작(The Before Trilogy) 일 것이다. 


1995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프리미어 된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는 한국에서도 개봉되었고, 극장에서 관람했던 기억이 난다. 차기작인 <비포 선셋(Before Sunset)>은 9년이 지난 2004년에 개봉되었고, 역시 한국 극장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삼부작의 결론 격인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은 또다시 9년이 지난 2013년에 개봉되어 <비포 삼부작>은 장장 18년 만에 완성되었다. 전작 두 편은 한국에서, 세 번째 영화는 미국에서 관람하였다. 거진 20년에 걸쳐 완성된 프로젝인 만큼 주인공인 두 배우, 에단 호크와 쥴리 델피의 모습에서도 세월의 흔적이 배어난다. 



부다페스트를 출발한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시작하게 된 젊은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쥴리 델피). 미국인인 제시는 비엔나에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고, 대학에 재학 중인 셀린은 할머니를 방문하고 파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제시를 따라 비엔나 기차역에 내린 셀린은 다음날 동트기 전까지(before sunrise) 밤새 그와 함께 비엔나를 돌아다니게 되고,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는 것이 첫째 편 줄거리다. 제시는 파리행 기차를 타고 떠나는 셀린을 향해 6개월 후 비엔나 역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받아내면서 <비포 선라이즈>는 끝맺는다.


어느덧 9년이란 세월이 흘러 제시는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둔 작가로, 셀린 역시 남자 친구가 있는 환경운동가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제시는 9년 전 셀린과의 이야기를 책으로 발간하여 유럽 북투어 중이다. 9년 전 제시는 셀린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6개월 후 비엔나 역을 찾았지만, 셀린은 나타나지 않았다. 9년이 지난 후, 북투어 종착지인 파리의 서점에 제시를 만나기 위해 나타난 셀린과 재회한 제시는 비행기 탑승 시간인 해지기 전까지(before sunset) 또다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서로 9년 전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지키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던 오해가 풀리고, 둘은 아직도 깊은 감정을 서로에게 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9년 전과 달리 제시는 탑승 예정인 비행기에 오르지 않고, 셀린과 함께 파리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에 머문다. 제시와 셀린의 결합을 암시하며 두 번째 영화 <비포 선셋>은 끝난다.


3부작의 마지막 영화 <비포 미드나잇>은 아련한 느낌의 전작 두 편과 달리, 결혼 생활의 현실적인 면을 부각하고 있다. 이제 제시와 셀린은 결혼하여 쌍둥이 딸 둘을 둔 부부로 유럽에 거주하고 있다. 유명한 작가가 된 제시는 전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미국에 있기 때문에 자주 보지 못하고,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고 힘들어한다. 셀린은 셀린대로 육아에 지쳐있고, 프랑스 정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선뜻 수락하지 못하는 주부이자 엄마로 살아가고 있다. 작가로서 성공한 남편인 제시와 달리 가정과 육아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커리어는 뒷전이 돼버려서 행복하지 않다. 그래서 둘은 언쟁을 벌이지만, 자정이 되기 전에(before midnight) 다시 화해한다.  


<비포 미드나잇>을 보면서 느낀 점은 아무래도 결혼은 여자를 현실주의자로 변하게 만드는 거 같다. 제시는 결혼 후에도 자신이 하던 일인 글을 계속 쓰면서 결혼생활을 했기에 큰 변화가 없었지만, 셀린은 아이와 가정을 돌보느라 자신의 일도 접는 등 피부로 느낄만한 변화가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제시는 여전히 꿈을 꿀 수 있고, 셀린은 생활이라는 불완전한 현실과 환상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거 같다.


<비포 선라이즈>와 <비포 선셋>에서 시작된 아련한 사랑이 <비포 미드나잇>에 이르러 우리 삶의 모습에 가깝게 다가와 사실 편안하기도 하면서 또한 뭔가 섭섭하게 느껴졌다. 동화와 같이 "live happily ever after"를 기대했던 건 아니었지만, 이건 너무 적나라하지 않나? 환상인 줄 알면서 환상을 믿고 싶은 심리가 바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포 미드나잇> 엔딩, 제시의 사랑고백을 듣는 셀린의 표정은 9년 전처럼 마냥 꿈을 꾸는 게 아니다. 생활에 지친 실망의 기색이 비치지만, 그래도 웃으며 둘은 화해를 한다. 동화가 아닌 현실에서의 해피엔딩이 이런 모습일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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