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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ys Nov 26. 2021

개인주의(Individualism)에 대한 변

난 원래 남의 일에 별로 신경 안 쓰고, 참견도 안 하는 편이다. 나는 나고,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란 생각이 기본적으로 나한테 깔려 있는 태도다. 대신 나한테 뻗친 도움 요청의 손길을 모른 척할 만큼 모진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도와주는 편이다. 길 가다가 무거운 짐 들고 지하철 계단 올라가는 꼬부랑 할머니를 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한 번은 휠체어를 탄 장애우가 문 앞에서 한참 동안 있길래 문을 열지 못하나 싶어서 일부러 그쪽까지 가서 문을 열어줬다. 요약해 보자면, 내 성격 자체가 오지랖이 넓지 않고,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는 성향인 데다, 워낙 프라이빗한 성격이어서 다른 사람도 그럴 거라는 전제 하에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캐고 파고들지 않을 뿐, 인간미는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나의 성격은 21세기를 사는 요즘 별 문제가 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삼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사회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 대학 입학하자마자 과모임, 엠티, 그리고 계절별로 다녀오는 답사(난 사학과 출신이다)까지 난 단체로 움직이는 그런 생활 패턴에 익숙하지 않았다. 또한 내가 대학을 다니던 당시 신촌은 집회 및 시위가 반복되는 일상사였다. 전공 특성상 과방엔 삼삼오오 모여 대자보를 작성 중이거나, 사회과학 스터디를 하며 토론을 벌이고 있는 학우들을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가운데 나처럼 남의 일 신경 안 쓰는 사람은 충분히 이기적이고, 무개념 하게 보일 수 있었다.


아무튼 요즘은 한국 사회도 점차 개인주의로 흘러가는 추세라고 하고, 난 15년 전 미국으로 와서 내 경험 속에 존재하던 집단주의적 사회 분위기를 잊고 살았다. 그런데 사람이 거꾸로 가는지 (아니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나이에 사회 정의라는 거창한 개념까진 아니더라도 내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법 지키기, 투표하기, 안전 운전하기, 다른 사람 기분 나쁘게 하지 않기, (자랑할 게 많지 않아서 그럴진 모르지만) 내 자랑하지 않기,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잘 듣기, 직장에서 내가 가진 지식(SOP) 나눠주기, 교양 있는 사람 되기 등등.


또한 예전에 없던 오지랖까지 생기는지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삶과 문화에 대한 관심도 요즘엔 더욱 커졌고, 그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더 많이 읽게 되었다. 인터넷의 발달과 개인 플랫폼의 등장은 컨텐츠의 다양화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디터나 프로듀서)에 의해 선정된 컨텐츠가 아닌 내가 보고 읽고 싶은 컨텐츠를 선택하는 결정권까지 생기게 되었다. 소셜 미디어의 경우 '이미지'나 '컨셉'을 전달하기 때문에 '실체(substance)'가 궁금한 나는 주로 읽기를 선호하는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생활에 여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생활에 여유가 있다는 말은 '돈이 많다'라는 말과는 좀 다른 의미다. 이들은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지만, 먹고사는 문제 외 다른 일에 신경 쓸 여지가 많이 있다는 뜻이다. ('럭셔리'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가 필요 이상으로 갖추어진 호화로움을 일컫는 것이어서, 그거 없어도 사람 사는데 큰 지장은 없다) 그 가운데 내가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며 삶에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나는 나, 너는 너'라는 사고방식에 힘입은 바가 아주 없지 않을 거 같다. 오히려 난 긍정적인 의미에서 그들에게 있는 삶의 여유로움을 배우게 되었다.


인생은 누릴 가치가 충분히 있고, 돈이 많건 적건 삶을 즐길  있는 길은 여럿 있다고 믿는다. 행복해질  있는 방법이, 인생을 즐길  있는 길이, 누구나 동의하는 그것 하나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두가 원하는 하나를 쟁취하기 위해 삶이 고달퍼질  같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주의는  나쁜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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