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 동물
신격화된 존재로 또 악한 존재로 가장 많이 한국 민간설화에 등장하는 동물이 호랑이다. 호랑이와 관련된 설화가 많은데, 한국인들이 호랑이에 다양한 감정을 담아냈다. 신비한 존재, 공포, 원망이 호랑이라는 이미지에 담겨있다. 호랑이가 선조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문헌을 찾아봤다.
『호랑이 수염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를 모르겠습니다만, 시위로서 융복(戎服 : 광의의 군복)한 자는 입(笠, 삿갓)에 반드시 꽂았고 또 객사(客使)가 왔을 때 일찍이 모두 이러한 장식을 한 것을 보았는데, 지금 갑자기 제거한다면 혹 그전의 의절보다 생략한 것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이로 보나 저로 보나 존속시키는 것이 옳습니다. 순조 34년』 호환(虎患)
순조 34년에 심상규가 이병영의 복식 개혁에 반대하여 전례에 따르기를 건의하는 상소문에 따르면 의복에서도 호랑이의 수염을 용맹의 상징과 주술적인 용도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서는 무천이라는 제천행사와 별도로 호랑이에 대한 제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숭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호랑이를 퇴치한 사람에게는 나라에서 포상을 내리기도 했다. 인조 11년에는 어린아이가 호랑이로부터 어미를 구했다 해서 인조가 직접 포상을 하라는 기록이 있다.
『홍산현에 10세 된 논금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어미가 호랑이에게 물려가자 한 손으로는 어미를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호랑이를 쳐서 어미를 살려냈다. 감사가 그 사실을 조정에 알리니 포상하라 명하였다.』
이렇듯 호랑이는 숭배의 대상이자 퇴치의 대상으로 실록의 기록으로도 전해진다. 설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호랑이는 산신(山神), 산령(山靈), 산군(山君), 산군자(山君子)로 불리며 숭배의 대상이었다. 국토 대부분이 산악지역이라 호랑이가 서식하기에 좋은 지리적 조건이며 사람의 영역과 겹치면서 인간과 호랑이는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인간의 포식자로서의 지위를 가졌던 만큼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그 두려움만큼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이중적인 감정이 호랑이 설화의 특징이다.
포식자인 호랑이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와 도구가 만들어지면서 호랑이는 신령스러운 존재의 지위를 상실해가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조선 최고의 무인들을 모아 착호갑사捉虎甲士라는 호랑이 토벌 군대를 창설하기도 했다. 가죽이 상품이 되어 호랑이를 사냥하는 포수가 등장한다. 호랑이에 대응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호랑이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존재다. 인간화가 되지 못한 호랑이의 이야기는 장자못의 용처럼 인격화의 시도가 이루어진다.
『아버지와 함께 불공을 드리러 절에 갔는데 절의 중이 소녀의 미모에 불심을 잃고 소녀를 뒤주에 가두고 납치하려 했다. 소녀의 아버지가 딸의 납치 사실을 알기 전에 멀리 외딴곳에 소녀를 가져다 놓기 위해 뒤주를 옮기는 중이었다. 수령(임금)이 군사를 이끌고 오는 것을 알아차린 중은 군사를 피해 뒤주를 길에 남겨 놓고 몸을 피했다.
마을 수령은 그때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는다는 호랑이를 생포해 가던 중이었다. 수령은 길가의 뒤주를 보고는 병사들을 시켜 열어보니 처녀가 묶인 채 있는 것을 보고 처녀를 뒤주에서 꺼내고 생포한 호랑이를 뒤주에 대신 넣어 굶겨 죽게 하려 했다.
한참이 지나서 중은 군사들이 물러갔다 싶어 뒤주가 놓인 곳으로 돌아왔다. 중은 생각해 둔 곳으로 뒤주를 가져가 뒤주를 열었는데 호랑이가 뛰쳐나와 중을 잡아먹었다. 처녀의 미모에 반한 수령은 처녀와 결혼하게 됐다.』
인간의 선한 의지에 호응해 사악한 마음을 가진 중을 처단한다. 또 황해도 구룡산 설화가 그렇다. 세종실록 지에는 황해도 연안 도호부 우봉현에 구룡산(九龍山)을 신라 승려 의상이 머물렀다 하여 성거산(聖居山)이라 불리었는데 훗날 구룡산이라 이름 짓게 된 것은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 때문이라 전해진다.
『사냥꾼 열 명이 성거산에서 사냥을 하던 중에 호랑이가 나타나기에 바위굴로 숨었다. 호랑이가 좀 채 굴 밖에서 떠나지 않고 있으니 어느 사냥꾼이 제안 하기를 누구 한 사람의 희생이 있어야 호랑이를 피할 수 있으니 각자 자신들의 물건을 호랑이 앞에 던져 호랑이가 선택한 물건 주인이 희생하고자 했다. 호경(虎景)이라는 사람의 물건에 호랑이가 반응하자 그가 선택되어 밖에 나가 호랑이와 대적하려 밖에 나오니 굴이 무너지고 남아있던 사람들은 목숨을 잃게 되었다. 호랑이는 온 데 간데 없어져 호경만이 살아남았다 전해진다. 한 명을 희생해 아홉 명이 살아남으려 했다가 반대로 아홉 명이 죽었다 해서 구룡산이라 불려진다.』
이런 시도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호랑이는 수많은 인명을 해친 동물이다. 착호갑사나 포수들처럼 무기로 호랑이를 퇴치하기도 하지만 지혜로 호랑이를 곤경에 빠뜨린다.
앞서 강감찬은 여우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인간의 선한 의지를 지닌 존대다. 강감찬의 설화에서 밤마다 사람으로 변신한 호랑이가 사람들과 내기 바둑을 두어진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소문이 강감찬에게 까지 들려 강감찬이 호랑이를 찾아가 바둑을 두어 이겨 호랑이를 죽였다는 이야기에서도 동물이 인간으로 변하기는 했지만 맹수의 본성이 그대로인 호랑이를 죽였다.
신령스러운 존재와의 연결 자지만 신령스러움을 빼내면 맹수로서의 본능만이 남는다. 본능만 남게 된 호랑이는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퇴치의 대상인 맹수일 뿐입니다. 인간이라 할지라도 포악하면 사나운 맹수와 다를 바 없어 퇴치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거의 연산군과 광해군의 기록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왕조에서 호환과 관련된 기록이 많다. 조선 태조 때에는 성안에 들어온 호랑이를 죽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태종 8년 제주도 안무사 조원이 국마(國馬)를 호랑이 없는 제주도에서 번식시킬 것을 제안하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했다.
영조 9년에는 부수찬(副修撰) 유최기(兪最基)가 호환으로 인명피해가 커 호환(虎患)이 치국의 문제에까지 이르렀다는 상소(上訴)를 올렸으며 영조 10년에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팔도에 걸쳐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이 140여 명에 달했다는 상소문을 올리기도 한다. 또 숙종 27년에는 강원도에서 6-7년 사이에 3백여 명의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호환이 사회문제였다.
호랑이 퇴치를 위해 영조 30년에는 좌의정 김상로가 큰 호랑이는 쌀 4석 중간 호랑이는 3석, 작은 호랑이는 2석을 보상으로 주어 양민들까지 호랑이 잡기를 권하게 하는 상소를 왕세자(정조)에게 간하자 승낙하였다. 호랑이 퇴치를 담당하던 군사인 착호갑사(捉虎甲士) 만으로는 호랑이를 퇴치할 수 없을 정도로 당시 호랑이가 상당히 많이 숫자의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랑이 사냥꾼의 이야기를 통해서 당시에 얼마나 많은 호랑이가 서식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호랑이 사냥꾼이 해가 지자 인가를 찾아 들어가니 한 할머니가 마루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 옆에 앉으니 할머니는 사냥꾼에게 담뱃불을 붙여 달라했다. 불을 붙여주다 잘못해 총을 할머니에게 쏘게 됐는데 알고 보니 호랑이였고 그 산의 모든 노인들은 사실은 호랑이가 변신한 것을 알고 사냥꾼이 그 산의 호랑이를 모두 퇴치했다는 이야기는 호랑이가 더 이상 호랑이가 신령스러운 존재가 아니며 선과 악의 구별이 필요치 않은 퇴치의 대상이라는 옛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이야기도 전해진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무기가 필요하지만 용기도 필요하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의지가 필요했다. 그래서 호랑이가 신성한 존재가 아니어야 한다. 두려움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더 이상 신성하지도 않은 존재이고 인간이 충분히 극복할 수 있고 깔볼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것이 호랑이 설화다.
그중에서 오누이에게는 튼튼한 동아줄을 내려주고 호랑이에게는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는 “해님과 달님” 혹은 “오누이와 호랑이”라는 이야기는 신령함이 호랑이에서 인간으로 이동했다는 의식의 전환을 시도한 이야기다. 신령함은 인간으로 향하고 호랑이는 어리석은 존재라는 이야기도 만들어진다.
『호랑이가 마을에 내려와 어느 집에서 아이의 우는 소리가 들려 아이를 헤치기 위해 그 집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때 도둑도 소를 훔치기 위해 지붕 위에서 때를 기다리던 중이었으나 호랑이가 들어온 것을 보고는 꼼짝 않고 지붕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호랑이가 방에 들어가려던 순간 방 안에서 할머니가 아이를 달래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쿠 큰일 났네. 호랑이가 왔구나.” 하지만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아이에게 “곶감이다!”라고 하자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호랑이는 자신이 왔다는 말에는 계속 울던 아이가 곶감이라는 말에 울음을 그치니 곶감이 자신보다 더 무서운 것인 줄로 생각했다.
그때 지붕 위에 있던 도둑이 그만 지붕에서 떨어져 호랑이의 등에 떨어졌다. 호랑이는 도둑이 곶감인 줄 알고 놀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참을 호랑이 털을 쥐고 등위에 타고 있던 도둑이 떨어지자 호랑이는 하마터면 곶감에게 당할 뻔했다며 그 뒤로는 마을에 내려오지 않았다. 도둑도 그 집이 호랑이가 찾아가는 집인 줄 알고 소 훔치기를 포기했다.』
어리석은 호랑이 이야기입니다. 곶감은 감을 오랫동안 보관해 먹을 수 있게 가공한 사람들의 지적 소산물입니다. 호랑이가 두려워 도망가게 한 것은 곶감이라는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이 이야기의 주제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지적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사람이 통제 가능한 가축보다 어리석은 호랑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동물이 토끼다. 호랑이를 단죄하는 토끼의 재판이 잘 알려진 이야기다. 신령스러움을 빼내면 흉폭한 맹수의 본능이 남지만 그곳에 어리석음을 넣은 “토끼와 호랑이”이야기다.
『어느 산 중에 토끼와 호랑이가 살고 있었다. 다른 짐승들은 호랑이가 다 잡아먹어 보았지만 이 토끼만이 요리조리 피해 다녀 호랑이가 벼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다 어느 곳에서 호랑이와 토끼가 마주치고 말았다. 호랑이는 토끼고기를 먹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토끼는 호랑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호랑이가 마을에 갔다 온 적 있느냐며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한 호랑이에게 얼마나 맛이 있으면 사람들도 절을 한 뒤에야 먹는 떡을 구해주겠다고 한다. 호랑이는 토끼의 제안을 수락하고 떡을 가져 올 동안 토끼를 잡아먹지 않겠다며 기다린다. 토끼는 떡과 같이 생긴 돌을 주워와 떡은 익혀 먹어야 한다며 호랑이 앞에서 불을 피웠다. 잘 달궈진 돌을 호랑이가 먹게 했다. 호랑이가 침을 흘리며 단숨에 삼키자 배속이 뜨거워지자 부리나케 물을 찾아간다. 그 사이 토끼는 호랑이를 피해 도망갈 수 있었다.
또다시 토끼는 호랑이와 마주치게 된다. 이번에도 토끼는 자신보다 더 맛있는 새를 먼저 먹게 해 주겠다고 한다. 토끼는 호랑이를 갈대밭으로 데려가 기다리고 있으면 자신이 새를 몰아 잡아먹을 수 있다고 호랑이를 설득했다. 토끼는 호랑이 멀리서 갈대에 불을 붙였다. 갈대에서 쉬고 있던 새들이 불을 피해 호랑이 쪽으로 날아갔지만 호랑이는 그저 허공에 날아가는 새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불길이 다가온 줄도 모르고 바로 앞에서 불길이 보이자 도망가기에 바빴다. 이번에도 토끼는 호랑이로부터 도망갈 수 있었다.
어느 추운 겨울에 토끼는 호랑이와 다시 마주쳤다.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이번에는 무슨 말에도 넘어가지 않고 반드시 토끼를 잡아먹겠다 말한다. 이번에도 토끼가 꾀를 내어 인간들만 먹을 수 있는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한다. 토끼야 세 번이나 마주쳐 언젠가는 잡아먹을 수 있지만 토끼가 죽으면 인간만 먹는다는 물고기는 먹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토끼에 그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토끼는 호랑이를 얼음 언 강가에 데려가 사람들이 낚시하려 뚫어 놓은 구멍에 호랑이의 꼬리를 넣도록 한다. 호랑이는 토끼의 말대로 꼬리를 물속 깊이 넣고 한 참을 기다리니 얼음이 얼어 꼬리가 얼어붙어 호랑이는 앉은 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토끼는 이번에도 호랑이로부터 도망갈 수 있었고 호랑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죽었다.』
토끼를 통해서 인간의 의지를 실현하고 호랑이라는 재해와 같은 존재를 퇴치한다. 인간의 지혜로 호랑이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토끼가 제시한 떡과 물고기는 인간의 음식이다. 새 또한 하늘과 연결된 존재다. 그 하늘이 인간과 연결되어 호랑이를 퇴치한 것이다. 더 이상 호랑이가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하위 존재가 된 것이다.
또한 갈대와 겨울이라는 계절은 실제 호랑이 포획과 관련 있다. 풀을 엮어 호랑이를 포획하는 도구를 만들었었고 겨울 번식기에 울부짖는 호랑이를 추격해 퇴치하거나 먹이를 찾아 마을로 내려와 붙잡힌 당시의 실제적인 사건이 반영된 것이다. 현실적인 자연환경과 의식이 결합된 이야기라 당시 사람들은 “토끼와 호랑이”이야기를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또 다수의 참여로 설화가 완성된 것이기에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 있어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한 호랑이 이야기도 있다. 호랑이가 나온다 해서 인간이 호랑이보다 상위의 존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마을에 홀로 팥 밭을 일구며 살아가는 할머니 한 분이 살았는데, 어느 날 호랑이가 찾아와 할머니를 해치려 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호랑이에게 팥을 수확하고 죽을 만들어 먹을 때 찾아오라고 부탁하자 호랑이는 그때 찾아오겠다며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팥을 수확하고 죽을 끓이며 아궁이 앞에서 이제 곧 호랑이가 찾아올 것을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다. 혼자서 힘겹게 살아온 것도 서글픈데 죽을 때마저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왔다. 아궁이에서 슬프게 우는 할머니에게 밤송이가 굴러와 왜 우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오늘 호랑이에게 잡혀 먹힐 거라고 말해 준다. 그러자 밤송이는 팥죽 한 그릇 먹여주면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러자 쇠똥, 바늘, 자라, 절구, 지게, 멍석이 차례로 찾아와 자신들에게도 죽 한 그릇씩 먹여주면 돕겠다고 말한다. 밤송이는 아궁이에 들어가고 자라는 독에, 바늘은 부엌 문턱에, 절구와 멍석은 부엌문 앞에, 지게는 감나무 밑에 숨어 호랑이를 기다렸다.
해가 지자 호랑이가 찾아왔다. 날이 추워 덜덜 떠는 호랑이에게 할머니는 아궁이에 몸을 녹이라고 말한다. 호랑이가 아궁이 앞에 앉자 밤송이가 튀어나와 호랑이 눈을 찔렀다. 불씨가 튀었다 생각한 호랑이는 불씨를 끄려고 옆 물독에 얼굴을 넣으니 자라가 호랑이의 코를 물었다.
호랑이는 너무 아픈 나머지 이리저리 부엌 안을 돌아다니다 부엌에서 나가려는데 문턱에 있던 바늘에 찔려 넘어지면서 문을 열고 부엌에서 나갔다. 그러자 문 앞에 숨어있던 절구가 호랑이를 냅다 치는 거였다. 호랑이가 멍석에 호랑이를 둘둘 말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자 지게가 와서는 호랑이를 싣고 연못에 던져 빠트려 죽였다.』
추수와 함께 호랑이가 찾아온다는 점에서 수탈을 당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관리들의 수탈이 호환과 같다는 마음이 담긴 설화다.
설화의 창작자들이 다양하고, 주제의식이 처음부터 정해지지 않았으며, 참여자들의 성향과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져 왔기에 어떤 주제의식이 창작의 근원이었는지 분명히 밝히지는 못한다. 하지만 고대사회에서는 민간신앙의 영향이 컸으며 조선시대에 후기에 이르러 권력에 대한 저항의 식이 담겼을 것이라 생각된다.
호랑이의 신령스러움, 공포, 원망의 대상이었던 호랑이에게 신성함을 제거하고 인격화를 시도했지만 본능인 포악성은 인간의 선한 의지로 대체할 수 없었다. 신성함을 뺀 곳에 어리석음을 넣어 호랑이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의식의 전환을 설화를 통해서 실현하려 했다. 호랑이만큼 우리 설화에 많이 등장하는 동물이 여우다.
여우의 인간 변신으로 인간에게 위해(危害)를 가하는 것도 호랑이 설화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호랑이 설화와는 다른 양상이 보인다. 호랑이가 외부의 위협이라면 여우는 내부의 위협이다.
『아들만 셋 둔 노부부가 딸을 낳아 애지중지 키웠다. 세월이 흘러 딸이 시집갈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 집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키우던 소가 밤마다 한 마리씩 죽었던 것이다.
노부부는 큰 아들을 시켜 밤에 소들을 지키게 했다. 밤새 지켜보던 큰아들이 잠시 여동생의 안부가 걱정되어 여동생 방에 가보니 여우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여동생의 뒤를 따라가니 여동생이 소를 죽이고 간을 빼먹었다.
다음 날 노부부가 큰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니 여동생의 일을 차마 말할 수 없어 졸다 지켜보지 못했다 말한다. 노부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장남이 책임감이 없어 그리 된 것 이라며 집에서 쫓아낸다.
이번에는 둘째 아들에게 소들을 지키게 했는데, 둘째 아들도 소를 지키다 여동생이 걱정되어 여동생 방을 찾았다. 그러자 이번에도 여동생은 여우로 변신하여 소를 죽이고 소의 간을 빼먹는 것을 목격한다.
날이 밝자 노부부가 둘째 아들에게 물으니 여동생이 여우로 변신하여 그리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노부부는 여동생을 질투해 그런다며 불같이 화를 내며 둘째 아들도 집에서 내쫓았다.
이번에는 막내아들에게 소들을 지켜보게 했다. 막내아들도 그게 무엇이든 소를 죽일 정도면 여자도 쉬이 죽일 것 같아 여동생의 방을 찾았다. 여동생이 여우로 변신하여 소를 죽이고 간을 먹는 것을 보게 된다.
막내아들은 노부부에게 지난밤의 일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막내아들도 둘째 아들처럼 지난밤에 본 일을 부모에게 말해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딸이 흐느껴 울며 오빠가 자신을 범하려 했다며 노부부에게 말한다.) 이번에도 노부부는 막내아들을 쫓아낸다.
세월이 흘러 이곳저곳을 떠돌던 막내아들이 우연히 어느 사찰의 노승(도사, 처녀)을 만나 지난 일을 이야기 하자 노승은 갖고 있던 주머니 세 개를 주며 집에 돌아가 부모를 찾으라 하면서 위험에 처했을 때 사용하라 말해준다.
막내아들이 집에 돌아와 보니 부모는 이미 돌아 가신지 오래고 집에서 일하던 하인들 마저 떠나고 없었다. 여동생만 혼자 남아 오빠를 반갑게 맞이하며 밥을 차려 주었다. 안심한 막내아들은 배불리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눈을 떠 기척이 없길래 여동생 방에 찾아가니 이번에도 여동생이 여우로 변신했다. 지켜보던 오빠를 발견하고는 이제 마지막 한 개의 간을 먹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며 막내아들을 해하려 하자 막내아들은 도망간다.
노승이 알려 준 대로 차례로 주머니를 던지니 처음에는 큰 불이 일어나 여동생을 태웠다. 그래도 여동생이 쫓아오자 두 번째 주머니를 던지니 여동생이 물에 빠졌다. 그러나 헤엄쳐 따라오니 마지막 주머니를 던졌더니 여동생 주위에 큰 가시덤불이 생겼다. 여동생은 가시덤불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시에 찔려 피 흘리며 죽었다. 막내아들은 위기를 모면하고 부모의 집에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한다.』
여우 변신 설화에서 한국 설화의 전형적인 숫자인 삼三이 등장한다. 제주 신도 2리의 용왕 아들 삼 형제에서도 그렇지만 딸로 태어난 여우에서도 삼 형제와 주머니 세 개가 등장한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설화에 등장할 이 삼이라는 숫자를 설명하고자 한다.
옛사람들은 하늘과 땅과 물로 세상이 이뤄졌다 생각했다. 토착신앙은 천신, 지신, 수신을 모신다. 그리고 인간의 구성은 피(혹은 살)와 뼈와 숨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딸로 태어난 여우의 이야기에서 삼 형제는 인간의 완성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여동생이 여우로 변신하여 소 세 마리를 죽이고 간 세 개를 먹는다는 것은 여우로의 완성을 향해 간다는 의미이고 주머니 세 개는 다시 여우의 신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뒤에 다른 설화에서도 자주 등장하게 될 이 삼이라는 숫자는 생명을 재생하기도 한다.
호랑이 설화가 호환이나 수탈과 같은 외재적 문제라면 여우 설화는 가정이나 마을 공동체의 내재적 문제를 다룬다. “호랑이 형님”의 이야기가 혈연인 형님이라고 속여 가족문제인 것 같기는 하지만 청자의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혈연이 아님을 알 수 있어 해학적 웃음을 이끌어 낸 이야기라면 딸로 태어난 여우의 이야기는 가족 구성원이 죽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 파탄의 비극적 결말이다.
유성룡과 관련된 설화에서도 가족 내부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부엉이가 자신의 알을 모두 먹어버린 여우에게 복수하기 위해 죽어 신령스러운 이인(異人)이 되어 유성룡을 도와 결혼과 과거급제를 하게 한다. 그렇게 신뢰를 쌓은 부엉이는 어느 대감 댁의 새신랑이 여우이니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한다. 유성룡은 새신랑으로 변신한 여우를 죽여 복수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에서도 부엉이의 혈연 문제 해결 이자 다른 가족 내부의 문제 해결이다.
딸로 태어난 여우의 이야기에서 가족 파탄의 원인은 어렵게 얻은 딸을 아들들보다 편애(偏愛)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편애(偏愛), 여우 설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내용이다. 아내가 여우였다는 이야기에서도 가정 파탄의 책임은 아내인 여성이 된다. 그 책임은 외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산다툼도 아니라 여우이기 때문이다.
『여우와 너구리가 같은 산에 살고 있었다. 서로 먹이가 겹쳐 먹이가 부족해지자 진 쪽이 다른 산으로 떠나기로 내기를 했는데, 먼저 사람과 결혼하면 이기는 것이었다. 여우가 잘생긴 총각으로 변신해 정승 집 딸에게 장가가려 했다. 여우는 정승의 신망을 얻어 사윗감으로 선택되었다. 하지만 딸은 총각이 자신이 주는 시구(詩句)에 대구(對句)를 채워 오면 혼인하겠다고 말한다.
여우 총각은 이태백(두보)의 무덤을 파헤치고 이태백을 괴롭히며 대구를 채워줄 것을 요구한다.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이태백은 글귀를 채워준다. 대구를 채운 여우는 글귀를 딸에게 보내니 딸은 보내온 글귀가 사람의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기에 혼인을 승낙했다.
총각이 찾아올 때까지 개를 굶기고 기다렸다. 총각이 찾아오자 총각에게 줄 밥상을 들고 가다 신랑 앞에서 밥상을 일부러 쏟았다. 굶주린 개가 달려들어 쏟아진 음식을 주어먹는데 총각으로 변신한 여우도 그동안 먹지를 못해 사람으로 변신한 것도 잊은 채 개와 함께 쏟아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개가 배를 채우자 허겁지겁 먹는 총각에게 달려들어 물었다. 그러자 총각은 여우로 변하였고 개가 여우를 공격해 죽였다.(혹은 도망간다) 그래서 너구리는 산을 독차지하게 됐다고 한다.』
이 경우에는 반대로 남성인 신랑이 여우다. 여우는 호랑이만큼 위협적이지 않아 기르던 개에게도 죽임을 당할 정도의 나약한 존재다. 강력한 존재인 호랑이는 외적 문제의 소재로, 여우는 가족 내의 이야기에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공통점을 찾자면 여우가 사람으로 변하면, 여성이건 남성이건 미인(美人)과 미남(美男)이라는 점이다. 아름다움과 편애가 가정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다. 옛 여우 변신 설화들은 여우가 아름다운 여성으로 변신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중국의 산해경과 함께 동진시대에 쓰인 현중기에는 다음과 같이 여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우는 50년을 묵으면 여인으로 변할 수 있다. 백 년을 살면 미녀가 될 수 있으며 신통한 무당도 될 수 있다. 혹은 남자가 되어서 여인과 관계를 맺기도 하다. 천리 밖의 일도 훤히 알 수 있으며 사람을 잘 홀려 정신을 못 차려 이성을 잃게 한다. 천 년을 묵으면 하늘과 통하는 천호(天狐)가 된다.』
또 여우가 소나 말, 사람의 간을 취하여 해를 끼친다. 여우가 빼먹는다는 간(干)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간은 인간의 내장기관이다. 해부학적 지식이 부족해 옛사람들은 간에 대해 추상적, 사상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허준의 동의보감 내경 편 에는 간에 대해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각각 지락(支絡)을 따라 경맥이 속에 있으면서 양기를 퍼지게 하며, 혼(魂)을 간직하는 일을 담당한다.』
그러니까 설화에서 여우가 탐한 것은 간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의 혼(魂)이다.
또 이 간이라는 말소리는 다른 의미로 민중들에게 인식되는데 한국 민속문화 대 백과사전을 보면,
『간(干)이라는 한자의 본 뜻은 ‘범(犯)한다’, ‘간섭(干涉)한다’, ‘방어한다’, ‘방패’ 등으로 해석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한자의 뜻을 취한 것이 아니라 한자의 음(音)을 차용한 말이다.
간은 한(汗, 韓, 馯, 旱)과도 통하는 말로 고대의 삼한(三韓) 사회에서는 수장(帥長)을 칭했으며, 동북아시아 민족 사이에서는 군주를 부르는 공통어였다. 몽고족(蒙古族) 쿠릴타이 회의(Khuriltai會議)에서 선출된 황제를 간[干(Khan)·汗(Han)]이라 했으며,『일본서기(日本書紀)』에 보이는 간기(干岐)와 한기(旱岐) 등도 간(Khan), 한(Han)의 한역(漢譯)이다. 간과 한은 ‘Khan’, ‘Han’의 대역(對譯)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말의 뜻으로는 모두 ‘크다’·‘큰(한)치’, 또는 ‘큰사람’·‘족장’·‘군장(君長)’의 뜻이다.
신라에서는 군장을 거서간(居西干)·마립간(麻立干)·서발한(舒發翰) 등으로 불렀는데, 특히 마립간은 ‘마루한(麻立韓: 宗韓)’의 대역으로 가장 존귀한 사람을 의미하였다. 그리하여 법흥왕(法興王)을 중국 기록에서는 ‘누간(樓干)’이라 하였다. 마한(馬韓)이라는 말도 ‘마루한’에서 유래된 말로, 삼한 중에서 으뜸 되는 한(韓)이라는 뜻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신라 관등 중에서 경위(京位)의 이벌찬(伊伐飡)·이척찬(伊尺飡)의 고형(古形)은 일벌간지(一伐干支)와 일척간지(一尺干支)였기 때문에, ‘찬(飡)’도 원래의 ‘간지(干支)’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지방민에게만 수여했던 외위(外位) 11 관등 중에도 악간(嶽干)·술간(述干)·고간(高干)·귀간(貴干)·찬간(撰干)·상간(上干)·간(干) 등의 간군(干群) 관등이 있는데, 이들 간군 외우 관등을 소지한 사람들도 원래는 지방 부족장의 후예들이었다.
[변천]
간은 역사적 변천에 따라 의미가 바뀌었는데, 외위의 제7관등인 간은 부족의 우두머리라는 뜻보다 외위관등 체계 서열 중의 하나로 정형화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촌도전(村徒典)·마전(麻典)·육전(肉典)·재전(滓典)·석전(席典)·궤개전(机槪典)·양전(楊典)·와기전(瓦器典) 등의 책임관을 간이라 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와서는 간의 뜻이 천한 호칭으로 변하였다.『동사강목』에서는 “신라 때에는 간이 존귀한 이름이었는데, 지금은 비천한 칭호가 되었다. 채소밭 가꾸는 사람을 원두간(園頭干)이라 하고, 고기 잡는 해민(海民)을 포자간(捕鮓干)이라 하는 따위이다”라고 했듯이, 당시의 간칭호자(干稱號者)는 염간(鹽干)·철간(鐵干)과 같이 신량역천(身良役賤)의 신분으로 변하였다.』
[한국민족문화 대 백과사전]
딸로 태어난 여우는 혼(魂)의 문제인 부모의 편애(偏愛)를, 총각으로 변신한 여우는 정승댁 딸과의 혼인과 그 권력욕에 관련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간은 혼(魂) 일 수도 있고 권력(權力) 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두 가지 모두의 문제이다. 아름다운 미모로 남성의 혼(魂)을 얻어 남성의 권력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는 구미호(九尾狐)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오고 있다.
봉신연의(封神演義)의 달기(妲己)가 그렇다. 구미호(九尾狐)가 변신한 달기가 은(殷) 나라 주왕(紂王)을 홀려 세상을 어지럽히자 주(周) 나라의 무왕(武王)인 희발(姫發)과 태공망(太公望)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다. 달기의 이야기가 한국의 설화에서도 다양하게 전해지는데 간추리자면,
『달기의 얼굴은 매우 아름다웠지만 항상 찡그리고 있었다. 왕이 매우 안타까워 어떻게 하면 웃겠냐며 물으니 구슬로 집을 지어 달라 한다. 왕은 태공망을 불러 구슬로 집을 지으라 했지만 태공은 그럴 수 없다며 도망간다.
다시 달기에게 물으니 이번에는 뜨거운 숯 위에 사람들을 걷게 하여 죽는 모습을 보여달라 했다. 왕이 그렇게 하자 달기는 매우 기뻐하며 웃었다. 도망갔던 태공망이 개 세 마리와 함께 돌아와 달기 앞에서 풀어놓았다. 그러자 달기는 구미호의 모습을 드러내며 도망갔다(혹은 달기를 죽였다.)』
궁예의 설화에서도 달기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궁예가 궁궐터를 제대로 잡았다면 천 년 왕국을 세울 수 있었으나 그러지 못했던 것은 달기만큼 아름다운 왕비의 미모에 현혹되어 왕비의 요청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궁예의 신하들도 태공망처럼 세 마리의(혹은 발이 셋 달린 삼족 구三足狗) 개를 데려와 왕비 앞에 풀어놓으니 개들이 왕비에게 달려들어 죽이니 구미호로 변하였다는 설화다. 여성이 미모로 남성을 홀려 정치에 개입하여 나라를 어지럽혔다는 달기의 이야기는 가정 내의 문제에 다시 권력행사라는 외부의 문제로 발전되어 죽임을 당한다는 이야기다.
여우 변신 설화에 담긴 의식은 여성의 아름다움이 남성의 마음을 빼앗지 않아야 하며 남성의 권력을 탐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담아낸 설화라 해석된다. 시아버지나 시어머니로 변신한 여우 설화에서는 가족 내 주도권 다툼의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그런데 이야기상에서 구미호가 되기도 하고 여우가 되기도 하는데, 아름다운 소녀나 딸로 여우가 변신하고, 이미 혼인을 했거나 혼기가 지난 여성이거나 왕비이면 권력을 탐하는 구미호로 변신하는데, 그 이유는 구미호가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한대에 쓰인 『백호통의』에는 구미호의 아홉 개의 꼬리라는 것은 아홉 명의 비를 얻어 자손 번창에 그 뜻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미호나 여우가 결혼과 관련된 설화에 등장하게 된 이유다.
여우 변신 설화를 정리하자면, 여성을 구미호라 했던 것은 아름다움으로 남성을 유혹해 판단을 흐리게 하여 남성으로부터 얻은 권력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는 여성, 특히 권력자들의 아내에게 여우가 변신한 요물로서 생각한 것은 남성의 무지나 판단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여성만을 비난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여우 변신 설화는 여성성을 제한하는 이야기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할 만큼 아름다워서도 안되고, 권력을 탐해서도 안 되는 것이 당시의 여성상임을 알 수 있다.
여우 변신 설화가 여성성을 제한하기 위한 설화라면 다음의 뱀 변신 설화는 여성의 권한을 회복하기 위한 이야기다. 여성들의 자기결정권이 제약이 심했던 시대의 여성들의 시대 극복 의지가 담긴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