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신화
황천(黃泉)혼시 무가(巫歌) : 함경남도 함흥 1926년, 무녀 김쌍돌이(68세)의 황천곡(黃泉曲). 채록자 임석재.
송 동(童)이(첫째), 이동(童)이(둘째), 사마동이(셋째),
귀물어는(재물은), 아바님 시절에는, 잘지웟더니(잘지었더니)
저의 뉘(대, 시절)에 나서는, 사는 일이 유가득식(唯可得食, 겨우 먹고삼)이라
한날에는(하루는, 어느 날에는), 사마동이, 칠월칠석(七月七日)에, 전지(田地) 구경나가자
전뒤(전지) 구경나가니, 사방(四方)에 곡석이, 이싹(이삭)이 좃코, 잘피엿소아(잘 패였습니다)
삼형제(三兄弟) 각색(各色)이(각각이), 싹을 머더가지고와(꺽어와) 왓사와,
무단(無斷)이(신에게 고하지 않고) 먹지 못하와, 이것 바사서(찧어서)
지신(地神)님 위정하고(대우하고), 산신령님 위정하고,
조왕님(부엌신) 위정하고, 우리 농사(農事)를 새립하자고(시작하자고), 사마동이 말을 하니, 성(형)이 그러자.
무병장수, 가족의 축원, 득남, 재산의 증식 등을 기원하는 장자풀이다. 함경도에서 셍굿, 세인굿, 센풀이이라 한다. 제주 사마장자풀이(맹감본풀이)의 도입 부분이다. 실제 굿에서 무당은 굿당(굿 하는 장소)을 정화(靖和)하는 부정굿을 한 뒤에 신을 좌정시키고 관객에게 모셔온 신이 어떻게 신이 되었는지의 풀이(서사무가)를 한. 열두 거리의 큰 굿을 할 때에는 당연히 들어가지만 의뢰자가 요구하는 굿만을 하더라도 신을 맞이 하는 장소를 정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굿이다. 부정굿으로 부정을 정화한 뒤에 사마장자의 수명을 늘려 준 맹감(저승차사)이 나오는 대목에서 굿을 하는 무당은 며느리의 공덕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굿 의로자는 며느리가 맹감을 대접하는 것처럼 재물이나 식량을 굿당 제단에 바치며 무병장수(無病長壽)를 빌게 한다. 무당은 굿 의뢰자를 대신해 며느리가 되어 맹감에게 재물과 식량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한다.
함흥의 황천혼시는 제주의 맹감본풀이와 굿 내용이 유사하다. 황천혼시, 맹감 본풀이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렇다.
사마장자(맹감본풀이)의 내용
가난하게 살아가던 사마동이의 아내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장사할 돈을 마련해 오라고 주었다. 하지만 사마장자는 그 돈으로 사냥할 총을 사 왔다. 산으로 가 짐승들을 잡으러 갔다. 하지만 사냥이 서툰 사마장자의 총에 짐승들은 잡혀주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어느 바위에서 쉬면서 울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자신을 잘 모시면 사냥을 잘 하게 해준다는 말이 들리는 것이었다.(혹은 걸어가는데 백골이 발에 걸리는데, 이 백골이 계속 발에 걸려 따라왔다). 그래서 사마장자는 백골을 수습해 집 앞 나무에 걸어 놓았다. 사마장자의 아내는 향나무 물로 잘 씻고, 하얀 종이(베 헝겊)로 잘 싸 집안으로 모시고 들어가 잘 대접해 주었다. 그러자 사마장자는 아주 많은 짐승들을 잡게 되어 부자가 되었다.
그러자 백골을 더 잘 모시는 것에 화가 난 저승의 조상신들이 저승왕에게 사마장자의 죄상을 고하니 저승 왕은 저승차사로 하여금 잡아오게 명한다. 이것을 알게 된 백골은 사마장자에게 알리고 저승차사가 오는 길목에 푸짐한 상차림으로 대접하라고 알려 준다. 사마장자를 잡아가려던 저승차사 들은 배가 고파 사마 장자가 차려 놓은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다. 그때 사마장자가 나타나 저승차사 들을 설득해 사마장자 대신 소(닭, 말, 사슴 등의 짐승들)를 잡아가게 했다. 사마장자 대신 소를 데려간 차사들은 자신들의 일이 들통나지 않게 하기 위해 명부를 고치기로 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틈에 명부 보관소에서 명부를 꺼내 사마장자의 수명 삼십 년(三十年)에 획 하나를 더해 삼천 년(三千年)으로 했다. 그렇게 해서 사마장자는 오랫동안 살게 되었다.
이런저런 모습으로 변신해 저승차사를 따돌리며 명부의 수명을 넘어 살아가게 된다. 명부를 고친 죄가 드러날 것이 걱정된 차사들은 사마장자를 저승으로 데려 가려 하지만 누가 사마장자인지 가려낼 수 없었다. 그래서 한 가지 꾀를 낸다. 흐르는 물에 검정숯을 씻고 사마장자를 기다렸다.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게 된 사마장자가 차사의 모습을 보고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묻자, 숯을 하얗게 하려 씻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마장자는 크게 웃으며, “내가 삼천갑자를 살아오면서 그런 말은 처음 듣소”, 그러자 사마장자인 것을 알아챈 차사는 그를 붙잡아 저승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사마장자를 도와 부(富)와 장수(長壽)를 얻게 해 주는 백골은 중국 수렵의 신神 예羿설화와 관련 있어 보인다.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달에 토끼가 살고 있다 생각하지만 중국에서는 달에 예의 아내인 상아가 살고 있다 생각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태양이 열 개가 떠올라 세상이 가뭄이 들자 활을 잘 쏘는 예(羿)라는 자가 아홉 개의 태양을 활을 쏘아 떨어뜨렸다는 중국 설화의 인물이다. 천제의 아들인 태양을 죽였다는 이유로 천계에서 쫓겨나 인간인 상아와 결혼하게 된다. 서왕모의 불사약을 구해와 다시 천계로 올라가려 했으나 아내 상아가 몰래 마시고 천계로 가려했으나 천제가 그것을 알고 상아를 달에 머물게 했다는 예羿의 설화다. 그리고 제자의 복숭아나무로 맞아 죽자 사람들은 그를 귀신들의 우두머리인 총포신으로 모셨다는 중국의 설화다. 함흥의 사마장자 풀이는 동방삭의 이야기에 중국의 총포신 예羿 의 설화를 더했다.
충청과 호남지역의 장자풀이는 장자못 설화를 더했다. 시주 자루에 똥바가지를 넣어준 인색한 장자의 못된 성격이 단명(短命)의 이유가 되어 징벌을 받아 마땅한 인물임을 강조한다.
전략
사마 도라(사마들의) 사마 장자는 부모님께 불효하고, 동구 간의 화목 못 하고, 동네방네 인심 없고
사마 장자 맘씨가 국고 맘씨가 나쁘다, 사마 장자 거동 보소, 사마 장자 죄를 무궁무궁 졌구나.
나락(벼)은 썩어서 뒤엄(두엄)이 되고, 쌀은 썩어서 재가 되고
돈에서는 삼녹이 나고(마구 녹이 나고), 옷은 썩어서 거름이 되고
아적으(아침에) 작은 말로 주고, 밤에는 큰 말로 받아 들이고
적은 되로 주고 큰 대로 받아드리고
체게 자리 놓아도(처가 집에 빌려 주어도) 두 푼 오리에다, 장리로서 걷어 들이고
세 푼 오리로 장리로 받고, 사마 장자 죄를 무궁허계 짔는다.
웅그전으다(옹기전에다) 말 달리기, 바 단전에 물총 놓기
우는 애기 주저않히기, 우는 애기 집어 뜯기
똥 싸는 애기 주저 안 지기, 새끼 밴 개 발질로 툭 차 놓고
얻어먹던 걸인이 오면, 식은 밥 뎅이 여그저그 던져 주고
사마 장자 죄를 무궁 무궁 지는구나
중이 동냥을 오면은 보리 때에는 풍구 끝이(풍구 끝에) 꺼시락(까끄라기)을 집어 던져 주고
나락 때에는 나락 쭉젱이(쭉정이)를 던 저주고
호박에다 말뚝박기, 넘어 유부녀 음해 작패
아적 새벽바람에, 물 동이 이고 가는 사람, 젖통이 잡고 입 맞추기
사마 장자 죄를 무궁무궁 졌구나
장자의 악행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소설 연의각과 판소리 흥부가에서 놀부의 악행과 비슷하다. 어떤 것이 먼저인가에 관해서는 정확히는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장자못 설화를 무가에서 내용이 있는 이야기로 구성된 뒤에 소설과 판소리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학계에서는 판단한다. 반대로 관객에게 재미를 주기 위해 놀부의 악행을 더 부각한 판소리의 흥부가를 무가에서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설화와 판소리에 가까운 충청과 전라도 지역의 무가가 야기의 재미를 추구했다는 점이 함흥과 제주의 사마장자 풀이와 다른 점이다.
함흥의 황천혼시에서는 조상신이 저승왕에게 사마장자의 단명을 권유하고 백골이 사마장자에게 단명의 소식을 전한다. 충청과 전라도의 사마장자 풀이에서는 박대 받은 중이 저승왕에게 장자의 악행을 고발한다. 장자에게 미움 받던 며느리가 꿈을 꿔 그 해석을 통해 장자에게 단명의 사정을 알려 준다. 함흥의 황천혼시가 중국의 유교와 도교의 영향을 좀 더 받은 흔적일 보인다. 제주의 장자풀이(맹감본풀이)는 이 땅의 성모(聖母)신앙인 설문대할망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사마장자 풀이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자 풀이에서 장자의 수명을 늘려준 며느리가 수명신으로서 좌정하기도 한다. 혹은 며느리가 장자에게 꿈 해석을 하는 대목에서 굿 의뢰자는 무병장수를 기원한다.
전략
아부님 꿈 해덕을 지가 허리다
뒷동산으 행자나무(은행나무) 삼(三)동강이 갈라저, 방문 바로 뇌여 보일적으는
한 도막은 젯상을 짜라는 거요, 한 도막은 곽을 짜라는 거고
또 한 도막은 상부(상여) 짜라는 뜻이요
내가 이 집에 시집 와서 삼십년(三十年)이 지나도
개한티(개한테, 개에게) 물 한 방울 찌크러(부어) 주는 일없고
걸인 밥 한 뎅이 주는 일 못봤소.
(생략)
아버지는 그러지 않고 죄가 많십니다.
이 세상 재물을 두었다가 뉘게다 다
전장하러(전하여 관장하려)하십니까? 절반은 귀신헌티 주고 절반은 자손한티 주어도
먹고 남고 씨고 남고 헐 터이니 지은 죄나 풀어 주시요
사마장자 이 말 듣고 홰를(화를) 내어
어허 그년 괫심허다. 넘으 자식이라 꿈 해덕히도, 숭칙허게(흉칙하게) 한다.
에라 이년 좇아내라.
[장자풀이. 전라북도 부안군. 1912년, 무녀 박소녀, 채록자 임석재.]
장자못 설화에서의 장자와 집이 홍수로 물에 잠기고 며느리는 바위가 된다. 맹감본풀이에서는 장자에게 직언하다 친정으로 쫓겨나게 되는데, 친정으로 가지 않고 저승차사가 오는 길목에 음식을 잘 차려 대접해 사마장자의 수명을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여성이 인간 설화에서는 소극적 역할이었던 반면에 무가에서는 성모 신앙적인 여성성으로 장자의 악행과 그의 수명을 늘려주는 적극적 역할을 한다.
모든 지역의 장자풀이가 같은 점이라면, 백골과 저승차사에게 무병장수를 위해 기원한다는 점이다. 함흥과 제주의 무가가 종교적 특성에 충실하다면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는 설화와 가까운 이야기다. 함흥의 황천혼시와 제주의 맹감 본풀이(명관命官 : 저승차사)는 서사구조가 비슷하다. 비슷하기는 하지만 수렵 신인 백골이 등장하는 이유는 다르다. 함흥의 황천혼시가 중국 설화에 영향을 받았다면, 제주에서는 오랫동안 수렵으로 생존해야 했던 수렵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충청과 전라도 지역도 농경 지역 특색이 반영되어 며느리가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복희와 여와의 상징과 같이 그려지고 있다. 성모 신앙적 특성이 강조되는 동해안의 장자풀이와 제주의 장자풀이와 연결된다. 또 제주와 동해안의 장자굿이 제의적 성격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유교적 제례 형식을 강조하는 함흥지역의 장자 굿과 연결된다. 생활환경적 차이로 조금씩 다르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선조들의 정신문화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자못 설화와 매우 비슷한 “안락국전”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세존께서 우담바라화와 연화를 심어 즐기시더니, 일곱 해 가뭄을 만나 꽃이 시들어 승여래바라문을 시켜, 대원국왕 사라수대왕과 왕비 원앙 부인에게 인걸립 시주를 보내, 꽃 밭 수레를 할 사람을 구하니 사라수대왕이 원앙 부인을 보내려 했다. 그러자 백관들이 말려 팔선녀를 대신 보냈다. 다시 꽃이 씩씩하게 피기 시작하니 세존께서 바라문화주를 보내 사라수대왕과 원앙부인을 불러 오게 한다.
서천 세존을 뵙기 위해 길을 떠난 사라수대왕과 원앙부인은 안락국에 당도해 자현장자의 집에 머물다 이튿날 떠나려 했으나 원앙부인이 오랜 여행으로 발병이 난 상태에다 임신한 몸으로 더 이상 여행을 함께 할 수 없게 된다. 그러자 원앙부인은 자신을 팔아 그 돈으로 세존께 드리자고 남편 사라수대왕에게 말한다. 사라수대왕은 원앙부인을 자현장자에게 금화 5천 냥에 판다.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되면 아들이면 “안락국”, 딸이면 “효양녀”라 지으라 하며 사라수대왕은 서천의 세존께로 가게 됩니다.
사라수대왕이 떠나자 자현장자는 원앙 부인에게 자신의 첩이 되라고 강요한다. 원앙 부인은 아이를 낳거든 그때 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아들 안락국이 태어나자 이번에도 자현장자는 첩이 될 것을 강요한다. 하지만 원앙 부인이 거절하자 자현장자는 내기를 해 원앙 부인이 이기면 다시는 그 일을 묻지 않겠다고 한다. 단 그 일을 해내지 못할 경우에 자신의 첩이 되어야 한다면서 삼일 내에 옷감 열다섯 필을 짜라고 한다. 원앙 부인은 장자의 제의를 수락해 옷감을 짜기 시작하려는데,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원앙 부인을 도와 옷감을 모두 짜게 된다.
안락국이 십 여세 되던 해에 어머니에게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물으니 모든 일들을 이야기 해주자 안락국은 아버지를 찾아 서천으로 가기 위해 자현 장자의 집에서 탈출하기로 하려 하지만 자현장자는 천리를 보는 목동과 만리를 보는 부동눈을 시켜 잡아오게 한다. 다시 탈출하면서 쫓아오지 못하게 강을 건너 도망을 친다. 탈출에 성공한 안락국은 서천의 아버지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말한다. 어머니 원앙 부인은 자현장자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거라 말하니, 사라수대왕은 안락국에게 적년화, 청년화, 백년화 세 개를 주어 사용법을 알려 준 다음, 어머니 원앙 부인을 살려 데려오라 한다.
안락국의 예상대로 원앙 부인은 자현장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어느 수풀에 버려졌다. 자현 장자의 집 근처에서 안락국은 목동이 부르는 노래에서 어머니가 어느 수풀에 버려졌는지 알아내게 되고 그 수풀로 찾아가 어머니의 뼈를 모아 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어머니를 살려낸다. 그리고 아버지가 있는 서천으로 어머니 원앙 부인과 함께 떠난다. 부동눈에게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자현장자가 두 모자를 쫓아와 잡으려 하니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자현장자의 집은 깨끗하게 없어지고 부동눈은 실명을 하게 되었다. 가족이 다 모이자 그들은 세존을 찾아가니, 아버지 사라수대왕은 아미타불이, 원앙 부인은 미륵불, 안락국은 대세지보살이 되었다.
불교설화 [안락국태자경]이 소설화된 것이 안락국전입니다. 자현 장자가 죽임을 당하는 장면은 장자못 설화와 유사하다. 장자못 설화가 먼저인지 안락국태자경이 먼저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장자못 설화에는 다른 점이 있다. 며느리가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설화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앞서 바위 설화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바위는 무속의 제의와 관련 깊다. 지금도 무속인들은 바위 아래에 기도터를 만들고 산신이나 성모신을 모신다. 장자풀이가 안락국전이나 불교설화에서 장자 모티브를 가져왔을 수도 있지만 망부석 이야기를 더해 무속화∙토착신앙화 했을 수도 있고 장자못 설화에 노인이나 거지가 장자의 집을 찾았던 부분이 승려의 탁발로 변한 것은 토착신앙이 불교를 받아들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무가에서 안락국전을 완전히 수용한 이공본풀이라는 서사무가가 있다. 이공은 세존이 계시는 서천의 꽃밭을 감독하며 인간의 수명과 사후세계의 관리자를 의미하는데, 이공의 직책을 어떻게 맡게 되었는가의 내력을 풀이해주는 무가가 이공 본풀이다. 무가의 포용성을 통해서 이 땅에 어떤 종교가 들어왔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선조들의 사고는 매우 유연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외래 종교들이 무작정 들어온 것은 아니다.
외래 종교가 어떻게 이 땅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정리하자면, 도교는 풍수로서 산천의 산신으로, 유교는 조상숭배의 제례로서, 불교는 토착신앙인 성모신앙의 방식으로 들어왔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의 갯것할망당이다. 갯것이라는 말은 수신인 갯것할망이 해변으로 걸어 나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갯것 할망당은 해녀들이 수신제를 올리는 곳이다.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와 조금 흡사하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거세한 후 거세 물을 바다에 던졌는데 이것으로부터 아프로디테가 태어났다. Aphrodite는 거품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다. 바다의 수신인 갯것 할망과 아프로디테는 무척 닮았다.
전남 영광군 법성면의 해안가에는 불교 최초 도래지라 하는 곳이 있다. 흔히 사찰이 산에 있는 것과 달리 이곳은 해안가다. 갯것할망이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처럼 불교도 이 땅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에는 해안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에서 용과 관계하여 무왕을 낳았다는 것도 이렇게 정리가 가능하다. 수신과 결합해 이 땅에 들어온 불교와 마찬가지로 무왕도 수신과 결합하게 했다는 점이다. 또한 불교는 산으로 갔을 때에는도교의 산신도 산신각으로 받아 들인다.
지금의 서사무가는 제의의 신령스러움 보다는 청중을 위해 변화해 왔다. 무당의 춤은 위엄과 신령스러움을, 악사들의 음악은 흥겨움을, 무당의 서사무가는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는 이야기로 변화해 왔다. 굿은 무당과 악사, 관객의 참여가 조화를 이뤄 행해진다. 조화로운 공간과 시간 속에 신화화된 신들을 무속인이 강신시켜 청중들과 만나게 해주는 것이 한국의 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