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설화
망자의 넋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사령제(死靈祭)인 씻김굿의 서사무가인 오구 풀이는, 저승으로 인도하는 사령(死靈)인 부모에게 버려진 바리데기가 신이 되기까지의 내력을 풀어낸, 오구 풀이다. 바리데기의 이야기를 오구 풀이라 하는 것은 오구굿을 할 때에 무녀가 다섯 개의 구멍이난 떡시루인 오구 시루에서 무명실을 팔로 감아올리면서 부르는 무가라 해서 오구 풀이라 한다. 지금은 형식적인 작은 도구들로 대체되었다. 옹기로 만들어진 시루가 무겁고 또 잘못 다루면 깨지기 때문에 지금은 나무로 만든 작은 통을 겹으로 쌓는다.
오구굿은 망자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굿이다. 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고 바리데기가 저승에서 약물과 환생초를 가져와 아버지를 살렸듯이, 망자가 저승에서 남겨진 사람들의 수명과 복을 잇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오구실 뽑기를 명줄∙복줄 당기기라고 하기도 한다. 실을 뽑아내기도 하지만 흰 천을 가로질러 잘라내기도 한다. 인연의 단절은 산자들의 수명줄을 늘려주는 것이라는 의미다.
옛날 어느 왕국에 딸만 여섯을 낳은 왕이 있었다. 그래서 왕은 일곱째 아이는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이기를 간절히 원했다. 명산대천에 지극정성으로 왕과 왕비는 기자 치성을 드렸다. 그렇게 고대하던 아들이었지만, 왕비가 낳은 일곱째도 딸이었다. 화가 난 왕은 아기를 쑥대밭에 버린다. 학이 날아와 보호하고 있는 것을 어느 노파가 발견해 데리고 가 키운다.
오랜 세월이 흘러 국왕이 죽을병에 걸렸다. 왕비가 점쟁이에게 점복을 하니 수양산의 약물과 저승의 환생초로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여섯 딸에게 약을 구해 올 것을 말하지만 딸들은 거절한다. 왕비는 하는 수 없이 오래전 버린 바리데기를 찾아가 아버지를 위해 약물을 구해 올 것을 말한다. 자신을 버린 부모가 원망스럽기는 하지만 낳아준 부모를 위해 구해 오겠다며 저승으로 바리데기는 떠난다.
저승으로 향하는 길에 산신에게 산 값, 지신에게 길 값, 수신에게 물값으로 삼 년씩 그들과 살며 일해주고서야 저승으로 갈 수 있었다. 산신과 지신, 수신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어 저승에 도착하지만 저승왕은 자신과 결혼해 아들을 낳아 줘야 원하는 환생초를 줄 수 있다고 말한다. 환생초를 얻기 위해 아들 셋을 낳고 환생초를 구해 돌아와 죽은 아버지를 살려낸다. (다시 살아난 국왕은 바리데기가 자신의 뒤를 이어 나라를 다스리기를 권하지만 바리데기는 자신이 낳은 저승왕의 아들들과 함께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오구신으로 좌정하게 된다.) –괄호의 이야기는 무당마다 구송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한다. 또 상황에 맞게 변형하기도 한다.
『나라로나라레 공심은 절이옵고
절이로 남서가 본이어서 옵니다
부귀로 지니시명 강남은 대한국이시고
우리나라는 소한국으로소니다
천인을 알으시고 이씨 주상 금마마님
본을 푸시면 귀 어디 본이신가
함경도 함흥 영흥 단천 경주가 본이신데 ( 서울 박종복 본,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3, 101페이지)』
“절이로 남서가 본이어서 옵니다”라는 구절을 통해서 무속이 불교의 내세관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서라는 방향은 아미타불이 불법을 설하고 있다는 불교의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말한다. 인도인들은 동쪽을 바라보고 앞쪽이 과거이고 뒤쪽 죽어서 가야 할 사후세계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남서는 완전히 서쪽도 아닌 지난한 삶을 의미한다.
그런데 전라도 지역의 오구 풀이에서는 이 “남서가 본”이라는 말이 없다. 남서라는 곳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지만 한반도 사람들의 생각에는 전라도 땅으로 실제적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전라도라는 곳이 심청 풀이의 원류인 원홍장 설화가 탄생된 곳이기도 해서 굿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다.
채록된 전라도의 오구 풀이에서는 “남서가 본”이라는 말이 없다. 있는 본을 채록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남서가 본”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전라도에서는 서해 바다이거나 중국을 연상케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심청 풀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다는 재생의 의미를 갖는 물이라서 소멸의 극락세계와 어울리지 못한다. 또 함경도 영흥에서 태어난 이성계의 이씨 왕조에서 오구굿의 권위를 얻으려 하기 때문에 중국도 들어갈 수 없다. 오구 풀이의 시작은 이 땅의 어느 곳에 있는 사후세계를 설정하고서 시작하지만 이 설정이 필요 없기도 하다. 옛사람들의 사후 세계관은 삶의 공간이 곧 죽음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의 공간을 특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서가본”이라는 것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사후 세계관이지만, 꼭그 세계를 나타낼 필요도 없다.
『한곳을 점점 들어가니 산신이 부른 소리
여보시오 저 부인아 산 값을 갖고와겼소
산 값을 내가 잊고 아니 갖고 왔습니다
산 값을 삼 년 살고 가시오 산 값을 삼 년 살고 나니
아들아기 태생 받아 그 아기 등에 업고
또 한 곳을 점점 들어가니 길신이 부르는 소리
여보시오 저 부인 길 값을 갖고 와겼소
길 값도 내가 잊어 아니 갖고 왔습니다
길 값 삼 년을 살고 가시오 길 값 삼 년을 살고 나니
또 아들아기가 또 태생을 받어 갖고
그 아기 등에 업고 한 아는 손에 잡고
또 첩첩 산중을 들어서니
사해용왕님이 영접을 허신구나
여보시오 저 부인아 물값을 갖고 와겼소
물값도 내가 잊어 아니 갖고 왔습니다.
물값 삼 년을 살고 가시오
이수인간은 일 년 삼백 육십 오일이 일 년이라 허건마는
귀신의 도술이라 하룻밤 하룻낮이 삼 년이라 허고 보니
눈멀어 삼 년 말을 못해 삼 년 귀 멀어 삼 년
합쳐 삼 년 석사면 하고 배를 살고 나니
아들 삼 형제가 탄생을 하여 그 아기 앞세우고 절절
하루아침에 초동아기 지제 목발을 뚜드리며
우리 오구시왕님은 딸을 일곱을 낳아놔두고
심의화로 병이 들어 시상에는 약이 없고
수양산 큰 바구밑에 약물이 있닥헌디 [전남 화순 황옥진본, 서사무가 바리공주 전집 3, 217페이지]』
바리데기가 수양산의 약물을 얻으려 가는 도중에 산신과 지신, 수신에게 길 값 대신 일과 아들을 낳아 수양산에 도착해 약물을 얻게 되는 과정이다. 눈, 입, 귀 막고 살아가야 했던, 저승길이 마치 시집살이를 연상하게 한다. 바리데기의 삶이 청중들의 삶처럼 느껴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설화에서는 수양산 약물을 관리하는 자의 일을 돕거나 저승왕과 결혼해 아들 셋을 낳은 뒤에 환생초를 얻게 되는데 오구 풀이에서는 보다 더 토착신앙적 내용으로 되어있다. 바리데기가 기자 치성으로 태어난 것과 같이 세 아들도삼신과 관계해 태어났다. 출산을 신성화한 것은 실제 여성의 삶을 신앙화한 것이다. 수양산에서 약물을 구하는 것도 추상적 공간에서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난 고개 설화에서 보듯이 보이는 산천이 삶의 공간이자 죽음의 공간이었던 것처럼, 삶의 실재에서 죽음이 결정되는 것이라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바리데기 가보니까 불라국에 오구대왕 행상이 오는 것이었다. 상주들이 울면서 따르는데, 바리데기가 가면서 우니까 삼천 군사들이 바리데기를 엄중하게 다루는 것이었다. “약물 뜨러 간 년이 삼십 년이 지나도 안 왔는데.”하면서 말리니까 바리데기가 “이 행상을 멈춰라.”하니 언니들이 그냥 막”저 년을 죽여라. 어디 가서 어느 놈 서방질 붙었다가 이제 와서 감히 궁에 와서 그러느냐?”하고 그 인제 칠 공주인 언니들이 그러는 것이었다.
근데 형부들이 그러는 것이었다. 그럴 때 자기 품에 있는 책을 펴고 불경을 외우니까 떠나가던 행상도 발이 붙고 언니들도 다리가 붙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바리데기를 건 드릴라고 해도 몸이 움직이지 못하니까. 상두꾼들이 행상을 멈추었다. 바리데기 가행상을 벗겨가지고, 그러니까 아버지가 뼈가 이제 내려앉은 거예요. 돌아가신 지 삼십 년이 됐으니까. 바리데기가 하얀 꽃을 이렇게 쓰다듬으니 뼈가 살아나고, 고 다음에 노란 꽃을 쓰다금으니 살이 살아나고, 고 다음에 빨간 꽃을 쓰다 듬으니 피가 살고 심줄이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입에다 약물을 세 방울을 떨어뜨리니 안개같이 구름이 싸이면서 오구대왕님이 하품을 하고 일어나면서”어허 내가 무슨 잠을 이렇게 깊이도 잤는가?”하면서 일어난다
일어나니까 상두꾼이 모두 놀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머니가 보고 딸들 도아 버지가 살아나니까 효녀 효녀 그런 효녀가 어디 있어. 아버지가 “네가 효녀구나. 몇 년 전에 버렸던 바리데기구나.” 하기”뭐이냐?” “저, 서천서역국에 약물을 뜨러 갈 때 동수자를 만나서 아들 삼 형제를 낳았는데 죽을죄를 졌습니다.” 아 오구대왕님이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외손자를 얻었으니까. 그래 외손자가 나중에 하늘의 삼태성 별이 되었데요. 칠공주는 북두칠성이 되구, 오구대왕하고 길대부인은 견우 직녀가 되었다. [강릉 빈순애 본]』
현재 강릉단오굿 전수자이자 무형문화재인 빈순애 무녀의 오구 풀이에서는 사건을 대단히 압축적으로 서사하고 있다. 중요한 사건에서 노래를 더한다. 바리데기가 약물을 구하러 가는 장면과 바리데기가 돌아와 아버지를 살려내는 부분에서는 서사가 아니라 노래로 풀어낸다. 바리데기의 정한을 담은 부분에서는 무녀가 바리데기인 것처럼 흐느끼며 연기를 한다.
『하적이야하적이야
시앙산 가신다고 하적이로구나
하적이야 관세음보살로 하적이로구나
어떤 나무는 팔자가 좋아
길욱에(길위에) 장승이되얐는디
어떠한 나무는 팔자가 궃어
길 밑에 장승이 되얐는가
하적이야 하적이야
시앙산으로 들어갈 적에 하적이로구나
가시다가 저물어지면
바우가 좋다고 주저앉지 마시오
석신이 잡고서 아니 아니 놓으요
또 가시다가 저물어지면
나무 좋다고 휘어잡지 마시오
나무 목신이 아니 아니 놓으요
또 가시다가 저물어지면
질이(길이) 좋다고 주저앉지 마시오
질신이(길신)이 잡고서아니 아니 놓으요
또 가시다 저물어지면
물이 좋다고 주저앉지 마시오
사해용왕님이 영접허요
하적이야 하적이야
시양산(수양산) 가신다고하적이로구나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시양산으로 가신다고 나무아미타불 [황옥진본]』
바리데기가 망자를 수양산으로 보낸다. 그리고 부처에 귀의한다는 나무아미타불(namo amitāyurbuddhaya)을 말하며 하직소리를 끝낸다. 무속과 불교가 섞여있는이 부분은 서사로만 이해할 수 없다. 무당의 제의 현장을 보아야 한다.
무당은 오구에서 오구실을 뽑아내면서 하직소리를 한다. 아무리 긴 실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삶처럼 그 끝은 있게 마련이다. 긴 실타래의 끝이 나오면 망자가 자손들을 위해 자신의 수명을 남겨주고 갔다는 의미다. 오구실 당기기가 끝나면 오구 가루 보기를 한다. 오구 풀이 전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종이 위에 체에 쳐놓았던 것을 보며 망자의 다음 생을 이야기해 준다. 동물의 형상이거나 사람의 발자국이 남으면 망자가 다음 생에 동물이나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것을 점쳐준다. 그렇게 이승에 남겨진 가족들은 망자와의 완전한 절연을 통해 망자는 잊혀야 할 존재가된다.
도교적인 수양산의 약물과 환생초로 불교적인 환생으로 무속과 불교가 결합되어 있다. 조선 정조대의 학자 이규경李圭景(1788년 ~ 1856년)의 오주행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오구 가루로 망자의 환생을 점쳤다는 기록이 있다. 무당이 점을 쳐 준다는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마을 입구에는 장승과 돌탑이 세워지고 서낭당을 짓고 그 옆에 서낭 신목이 심어졌다. 삶의 공간인 마을과 죽음의 공간인 마을 밖으로 구분하게 됐다. 열고개에 전해지는 이야기처럼 망자의 공간을 터부시 해야 하기에 도깨비를 만들어야 했으며 도교의 풍수사상을 가져와 마을 밖 명당에 묘 자리를 쓴다. 심리적 공간이었던 것을 물리적 공간으로 환원시켜 사람의 마음과 마을에서 먼 공간으로 나눌 필요가 있었는데 무가가 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서 삶과 죽음의 심리적 거리가 짧았지만 불교의 서천서역과 서방정토로 멀게 하고 또 도교의 별 숭배 신앙을 통해 망자는 별에 가기도 한다. 이승의 인연을 다하고 멀리 떠난 망자의 새로운 삶, 그리고 다시 이 땅에 돌아 옴의 이야기. 이제 무가 설화의 마지막 여정인 제주의 자청비 설화인 세경본풀이를 찾아 제주로 향한다.
- 사진 출처, 한국문화재단, 호남학연구원,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