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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경본풀이

자청비 설화

by 꼭그래

세경본풀이


자청비 설화로 알려진 세경본풀이는 제주지역에서만 전해지는 무가이기에 제주만의 이야기 특징이 있기는 하지만 육지의 설화를 더해 서사를 완성했다. 세경본풀이라 하는 이유는 하늘의 신인 상세경, 목축신인 중세경, 농업의 신인 하세경이라는 세 신의 내력을 풀어냈다 해서 세경본풀이다. 자청비 설화와 세경본풀이를 통해서 제주 설화의 특징을 모두 알 수 없기는 하지만, 제주의 특징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가려내려 한다.


자청비 이야기


『옛날 김 진국 대감과 조 진국 부인이 많은 큰 재산을 가졌으나 자식이 없었다. 김진국 대감이 오십이 되어도 자식이 없어 탄식하며 지내는데 동개남 은중절 대사를 모시는 소사가 찾아와하는 말이 시주하고 불공을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 말한다. 김진국 대감과 조진국 부인은 소사의 말을 듣고 절에 찾아가 수륙재(불교에서의 수륙재는 세상을 헤매는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며 위로하기 위하여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종교의식이지만 자청비 무가의 수륙재는 민간신앙에서의 기자치성)를 하러 불전에 바칠 쌀을 싣고 절에 찾아간다. 대사大師는 김진국 대감이 가져온 쌀을 소사에게 무게를 달게 한다. 백 근이면 아들이요 모자라면 딸인데 딱 한 근이 부족한 아흔아홉 근이었다. 대사는 합궁할 날을 정해주고 딸을 낳게 되는데 자식 얻기를 간절히 자청하여 낳았다 하여 자청비라 이름 짓는다.


자청비가 열 살이 되자 남종 정수남과 보모 정술댁으로 하여금 키우게 했는데, 하루는 자청비가 정술댁의 손이 너무 고와 그 이유를 묻자 샘에서 빨래를 많이 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러자 자청비도 정술댁의 손처럼 곱게 하고 싶어 빨래를 하러 주천강으로 간다. 주천강에서 글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로 가려던 옥황상제의 아들 문 도령을 만나게 된다. 자청비는 문 도령에게 한날한시에 태어난 남동생이 있는데 같이 글공부 갔으면 한다 말하고, 부모에게도 문 도령을 따라 글공부하러 간다며 남장을 하고 자청 도령이라 문 도령에게 자신을 소개한다. 서울에 도착한 자청비는 문 도령과 한 방을 쓰게 되는데 둘 사이에 은 대양과 은 젓가락을 은 자물쇠에 걸어놓고 이것이 떨어지면 과거에 떨어지게 될 것이니 서로의 공간을 지켜주기를 당부한다.


그렇게 둘은 한 방에서 삼 년을 같이 지냈는데 하루는 문 도령이 세수를 하려 던 중에 날아가던 기러기가 편지를 대야에 떨어뜨렸다. 옥황상제가 보낸 편지였다. 서수 왕의 딸과 혼인을 하라는 것이었다. 문 도령은 글공부를 중단하고 떠나려 하자 자청비는 자신이 여성임을 밝히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문 도령이 자청비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하는데 잠이 오지 않자 자청비의 방에 들어가려 하니 자청비가 잠에서 깨어 문 도령에게 귀신인지 사람인지 구분한다고 손가락을 문구멍으로 넣으라 한다. 자청비는 문 도령의 손가락을 바늘로 찌르니 사람의 피가 흘러 문 도령임을 확인한다. 그러자 화가 난 문 도령은 자청비에게 삼월 삼짇날 심으라며 박씨를 남겨두고 옥황상제에게 돌아간다.


자청비는 정수남과 정술댁을 불러 김정승 집 수장남(수 머슴)들처럼 열심히 일하라는 말을 하자 정수남이 다음날 소 아홉 마리와 말 아홉 마리를 숲으로 데려가 풀을 먹이려 숲으로 갔다. 소와 말을 나뭇가지에 묶고 정수남은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소와 말들이 죽어있었다. 정수남은 나무에 불을 붙여 소와 말을 구어 다 먹어 치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청비에게 덜 혼나기 위해 연못의 오리를 잡으려 했지만 가지고 갔던 도끼마저 잃어버리고 집에 돌아오게 된다. 도끼마저 잃은 정수남은 도끼라도 찾아갈 요량으로 옷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연못에서 나오니 벗어 놓은 옷가지들마저 잃어버리고 맨 몸으로 담을 넘어 집에 들어간다. 담을 넘어 누군가 들어오자 정수남의 동생 정술댁을 시켜 자초지종을 물어오라 한다. 정수남은 화를 면하기 위해 옥황상제의 아들 문 도령이 물놀이하는 것을 구경하다 마소가 모두 죽어 하는 수 없이 모두 구워 먹었다는 거짓말을 한다. 자청비는 문 도령을 만나기 위해 정수남에게 물으니 자신만 아는 길이라 둘러댄다. 그러자 자청비는 정수남에게 자신을 문 도령에게 데려 달라고 요청한다.


정수남의 제안으로 말 고사를 지내고 여행길에 먹을 음식을 준비한 다음 정수남은 자청비를 데리고 문 도령에게 가는 척한다. 가는 길에 정수남은 자청비가 문 도령 찾는 것을 포기하게 하려 혼자서 음식과 물을 먹어 치우고 남은 음식에도 소금을 부어 자청비가 못 먹게 한다.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려 걸어가게 하기도 한다. 또 이길 저길 헤매 다가 해가 지자 하룻밤 묵을 움막을 지어 같이 밤을 보내려 한다. 움막을 다 지을 무렵 정수남이 음험한 마음을 품고 범하려 하자 귀를 파준다며 은 젓가락으로 정수남의 귀를 찔러 죽인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신선들이 장기 두다 자청비의 뒤를 죽은 정수남 귀신이 쫓아가는 것을 막아준다. 집에 와 부모에게 정수남을 죽인 사실을 김진국 대감과 조진국 부인에게 말하자 정수남을 다시 살려내라 한다. 문 도령을 따라 글공부를 하러 나섰듯 남자 방에 들어가 남장을 하고 김정승 집 서천 꽃밭으로 생명 꽃을 구하러 간다.


가는 길에 아이들이 죽은 부엉새가 서로 자기 것이라 싸우는데 돈 아홉을 골고루 나눠주고 아이들이 가지고 있던 죽은 부엉이를 가지고 김정승 집을 찾아간다. 서천 꽃밭에 부엉이를 던지니 다시 환생해 그날부터 김정승 집 탱자나무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김정승은 부엉이 우는 소리가 듣기 싫었지만 잡지 못하여 근심하고 있던 차에 자청비가 김정승을 찾아간다. 김정승은 부엉이를 잡아주면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사위를 삼는다 말한다. 그날 밤 부엉이가 우는 탱자나무에 가서는 배를 내놓자 자청비의 따뜻한 배에 부엉이가 내려앉았다. 잡아서는 화살로 찔러 부엉이를 죽이고 탱자나무 아래에 갖다 놓았다. 다음날 김정승이 부엉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사위를 삼고자 딸애기를 자청비와 한 방에 자게 했다. 하지만 둘 사이에 아무런 일이 없자 딸애기는 자청비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며 김정승에게 알린다. 김정승을 찾아가 자신은 과거를 보러 가는 중이니 과거에 급제하면 다시 찾아오겠다 말하며 떠나기 전에 서천 꽃밭을 구경하고 가겠다 한다. 서천 꽃밭에서 사람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뼈 꽃, 살 꽃, 힘 꽃을 가지고 죽은 정수남을 다시 살려낸다. 정수남을 대리고 집에 찾아가지만 사람의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양반집의 흠이라며 자청비를 쫓아낸다.


쫓겨난 자청비가 강가에서 울고 있는데 비단 짜는 주모할망이 수양딸이 되어줄 것을 제안한다. 주모할망의 집에 가게 된다. 혼인식을 위해 서수 왕 딸 애기에게 보낼 비단을 찾으러 문 도령은 주모할망의 집에 찾아가 보니 자청비가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문 도령은 주모할망에게 자청비를 만나게 해달라 한다. 허락을 받은 문도령이 자청비의 방에 들어가려 하니 이번에도 사람인지 귀신인지 확인한다며 문구멍으로 손가락을 넣어보라 하며 바늘로 손가락을 찌른다. 화가 난 문 도령은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자청비와 문 도령을 이어주려 했던 주모할망이 돌아와 보니 문 도령이 떠났음을 알자 자청비를 비난하며 쫓아낸다. 중이 되어 떠돌다 박 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자 물을 기르지 못해 선녀들이 울고 있었다. 선녀들을 도와줘 문 도령의 집을 찾아가 중이 되어 찾아온 자청비와 문 도령은 그날 밤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몰래 그렇게 지내다 옥황상제가 눈치를 챘는지 문 도령을 부른다. 문 도령은 자청비가 알려 준 대로 말馬, 옷衣, 간장의 새것과 묵은 것 중에 어느 게 더 좋은지 묻는다. 부모는 새것보다는 묵은 것이 좋다 말하자 문 도령은 서수 왕 딸애기가 새것과 같고 김진국 대감과 조진국 부인의 딸 자청비가 묵은 것과 같아 자청비와 살게 해 달라 한다. 그러자 옥황상제의 몸에 꼭 맞는 옷 만들기, 구덩이를 파 숯으로 불을 피워놓고 칼 선 다리 지나가기의 시험을 통과해야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자청비는 두 시험을 통과해 며느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서수 왕 딸애기와의 혼인이 먼저여서 자청비가 후처가 될 것을 걱정해 막편지(양가 부모의 혼인 서약서)를 돌려주라는 말에 문 도령은 서수 왕을 찾아가 막편지를 돌려 주려 한다.


서수 왕에게 찾아가 그간의 사정들을 이야기하고 막편지를 건네려 하자 딸애기가 자기는 끝까지 문가 사람이라며 막편지를 불에 태워 먹는다. 서수 왕과 문 도령에게 백일이 지나면 자기 방문을 열어 보라 말하고 문을 잠근다. 백일이 되어 문을 열어보니 방안에는 딸애기가 죽어 네 마리의 새로 변했다. 머리를 아프게 하는 두통 새, 나쁜 마음을 일으키는 악심 새,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어혈 새, 부부가 멀어지게 하는 곰팡 새가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자청비는 딸애기의 인생을 망친 것 같아 문 도령 보고 선 보름은 딸 애기에게 가 살다 후 보름은 자신과 살자 말한다. 그런데 서수 왕 딸애기에게 간 문 도령이 돌아오지 않았다. 자청비는 시부모에게 찾아가 더 이상 하늘에 있을 수 없어 세상에 내려가 살려하니 오곡 씨를 달라 한다. 내려가다 정수남을 만나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다. 그래서 문 도령은 하늘을 다스리는 상上세경신, 정수남은 가축들을 다스리는 중中세경신, 자청비는 오곡을 다스리는 하下세경신이 되었다.』 자청비설화 (제주도 무속과 서사무가, 166페이지 고대중씨 구송 참조)


자청비 설화의 해석


자청비의 탄생


김진국 대감과 조진국 부인이 절에서 수륙재를 올리고 자청비를 낳게 된다. 불교에서의 수륙재는 세상을 떠도는 망자를 위로하는 제례이지만 설화에서는 망자들이 자식을 점지해 주는 것을 방해해 자식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기자치성의 성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기자치성의 성격을 가진 것은 할망당이다.

능향원 할망당.jpg 제주시 금능리 능향원 할망당
삼성혈_01.JPG 제주 삼성혈

제주 시조 신화에 삼성혈에서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나타나 제주의 조상이 된다. 삼신三神의 아홉 아들을 모시는 곳이 본향당이라 해서 제주에서는 그들을 위한 제례가 이루어지고 있다. 제주의 신앙적 장소인 당에는 마을의 생산과 물고, 호적과 장적을 주관하는 마을 토주관에 해당하는 본향당, 산육産育과 치병治病을 위한 일뤠당, 해녀와 어부의 해상 안전을 위한 돈짓당, 개당, 남당이 있다. 이외에 뱀을 모시는 요드레당, 수렵과 목축을 담당하는 산신당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은 학술적으로 구분된 것이지 제주 사람들은 그 구분을 크게 나누지 않는다. 해신당에서는 오히려 기자치성을 드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제주의 마을 입구나 해안가에서 마을 쪽으로 바람이 많이 불어오는 곳에 세워지는 방사탑도 기자치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육지에서 기자치성 바위에 기자치성 말고도 산신제와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학술적인 구분은 하지 않겠다.

신도 2리 방사탑.jpg 신도 2리 방사탑


해안가에서는 가족의 평안과 개인적 구복을 위해 설문대할망만을 모시는 해신당인 할망당들이 있다. 본향당과 할망당 모두 마을 전체를 위한 제례의 성격을 갖지만 기자치성이나 병에 걸리지 않게 해 달라는 개별적인 기원을 하는 할망당이 본향당과 다른 점 이기도 하다.

개갓할망당_01.JPG 제주 세화리 갯것할망당

그래서 해안가 지역의 할망당은 해녀들에게는 수신水神적인 성격뿐만 아니라 신적인 권능의 총합적 성격을 갖고 있다. 제단을 만들고 그 주위를 돌로 쌓아 제단을 보호한다. 세화리의 갯것할망당은. 해안가 바로 근처 바다에 잠기는 곳에 제단이 만들어져 있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갯것할망당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 용천수가 솟아 나와 이곳으로 제단을 옮겼다 한다.

용천수.jpg 갯것할망당 근처의 용천수

갯것할망당은 바닷물이 들어차는 만조 때에는 바다에 잠겨있다가 바닷물이 빠져나가는 간조 때 모습을 드러난다. “갯것”이라는 말은 바다에서 걸어(기어) 나온다는 의미라 한다. 설문대할망이 바다에서 육지로 걸어 나오며 옆의 용천수 물을 가져다준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실 수 있는 물이 솟구치는 이곳으로 제단을 옮겨와 설문대할망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제례를 올렸다.


수륙재가 기자치성이 된 이유


육지(한반도)에서의 기자치성의 대상은 바위다. 하지만 화산섬이라 바위와 돌이 많은 제주에서는 돌탑이나 제단은 바위에 대한 신앙이라기보다는 바위를 이용한 건축물에 가깝다. 그런데 육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 형태를 제주에 가져왔다.


1754년(영조 30년) 제주 목사 김몽규가 제주에 전염병이 창궐하자 돌하르방을 세웠다. 돌탑과 장승을 결합한 상징물로 육지의 신앙적 토대로 세워졌다. 하지만 나중에 제주인들도 아들을 낳기 위해 돌하르방의 코를 갈아먹기도 했다는데 육지의 남근석, 석장승, 불상과 같이 기자치성의 상징물이 됐다. 하르방이라는 남성성을 가진 것에 대해서는 제주에 여성들이 많거나 설문대할망이라는 여성 신과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제주에 여성이 많은 것이 아니라 여성의 노동력까지 필요했었고, 제주가 육지의 여성들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어 음기를 억제하려 했다는 추측도 하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다.


육지의 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여 기자치성을 올려 한 근 모자라 아들이 아닌 딸 자청비를 낳게 된다. 이 결핍은 뒷이야기의 복선적 효과를 위한 서사적 기교라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제주만의 정서이기도 하다. 육지라면 숫자 삼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설문대할망과 관련된 설화에서도 확인된다.


설문대할망이 자신에게 명주옷 한 벌 해주면 제주를 육지와 붙여준다 했지만 명주 한 통이 부족해 제주가 지금도 섬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조천 읍 영장매코지에 전해지는 설문대할망과 명주옷에 관한 설화가 전해진다. 또 제주에서 맹수가 없어진 이유에 관한 설화에서도 맹수는 없앴지만 제주는 그대로 섬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학계에서는 제주 사람들의 육지에 대한 동경이라 해석하지만 강원도 바위설화처럼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해석해야 한다.


명주옷은 비가 내리면 지하로 스며들어가는 제주 지반의 특성과 관련해 해석된다. 명주옷은 대지의 껍질로서 육지의 넓은 농경지로 해석되며 농경지가 적은 제주의 결핍과 호랑이가 없다는 희망을 담은 이야기로 이해된다.


그래서 불교의 수륙재를 육지의 불교신앙으로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수륙재水陸齋라는 한자어를 그대로 해석하자면 물이 뭍으로 올라온다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갯것할망당처럼 뭍으로 걸어온다는 것과 같이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수륙재는 할망에게 기자치성을 드리는 것이다.


쇠소깍하천.jpg 쇠소깍 하천


문도령과 자청비


정술댁의 손처럼 고운 손을 만들기 위해 주천강에서 문도령을 만나게 된다. 빨래하면 손이 고와지지는 않는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강이 흐르지 않는다. 한라산에서 시작된 용암이 바다로 향하던 쇠소깍처럼 제주의 하천은 많은 비가 와야 흐른다. 강이 흐르지 않지만, 주천강이라는 장소는 생명이 시작되는 강에서 남녀가 만나게 된다는 물에 대한 제주인들의 마음이라 생각된다.

남원읍 신례리 올리소.jpg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 올리소

제주에서는 고여있는 물을 올리소라 하는데 오리 무리가 날아와 물을 마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례리 올리소는 86미터에 달해 사람들이 소와 말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예전에는 식수로도 사용했다지만 고여있는 물이라 수질이 그렇게 좋지 않다. 그래도 제주인들 에게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곳이었다. 해안가에서는 용천수가 솟아나는 곳에 마을이 생겼다면 중산간 지역에서는 이렇게 큰 올리소 근처에 사람들이 살아왔다. 안타까운 점은 물이 있어 사람들이 살아가려던 올리소나 샘이 있던 마을들은 4.3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다.


문도령에게 물을 떠 주는데 나뭇잎을 띄워 주는 육지의 며느리 선택설화와 같다. 어사 박문수의 설화와 전남의 장자못 설화에서도 물 위에 잎을 띄워준 며느리를 선택한다. 아마도 여성성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 구현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유교적 생각이라 보인다. 유배지였던 중산간 지역의 사람들은 유교적 의식이 강했다. 아마도 그 의식의 반영이라 보인다. 그래서 문도령에게 자청비가 물을 떠 주는 것은 제주인들의 생명과 사랑에 관한 생각이자 육지의 유교적 남존여비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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