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청비 설화 2
자청비의 남장
자청비 설화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해석이 되고 있는 자청비가 남장이다. 자청 도령이 되어 문 도령과 글공부를 위해 서울로 떠나는 것은 중국의 양축설화(축영대설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이 지배적이기는 하다. 요즘 해석으로는 이름 그대로 자청해서 부모를 설득해 문국성 도령과 함께 글을 배우러 서울로 떠나기 때문에 적극적인 여성상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한다. 양축 설화에서 남장한 부분의 이야기를 가져왔을 수도 있으며 지금의 시각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제주의 정서로 해석해야 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육지로 마음대로 떠날 수 없었다. 섬이라는 환경 탓도 있지만 출륙 금지령出陸禁止令 때문이다. 제주는 수렵과 목축, 어업으로 살아가야 하는 척박한 땅이다. 동물들은 한라산 산신인 하로산또와 같이 신성시되어 함부로 죽이지 못했다. 농업은 흉작이기 일쑤여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을 피해 남해안과 경상도 해안지역으로 이주했다. 이주라기보다는 도망에 가까운 이 탈출은 인조 7년(1629년)에 비국의 상소에 의해 출륙 금지령이 내려져 육지에 갈 수 없게 됐다. 제주 인구가 감소해 세금과 진상품 관리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인조시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 지속적으로 제주인들의 내륙 이주를 엄격히 제한했다. 제주에는 흉년이 잦아 육지에서 식량을 보내기는 했다. 하지만 풍랑을 만나 도착하지 못할 때에는 아사자가 속출했다. 제주인들에게 출륙금지령은 생사를 제주라는 곳에 맡긴 샘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이면서 육지로 들어와 금강산 구경까지 한 김 만덕이라는 여성 상인이 있었다. 정조 20년(1796년)에 제주에 흉년이 들었다. 조선의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김 만덕은 자신의 재산으로 육지에서 곡식을 사와 제주인들의 굶주림을 해결했다. 정조가 그 공을 높게 사 원하는 바를 말하라 했더니 왕궁과 금강산을 구경하고자 해서 김 만덕이 바다를 건너 전라도와 충청도를 지나 왕을 만나고 금강산까지 다녀오게 된다.
자청비 설화에서 김만덕의 일화를 넣었다는 점은 보이지 않지만 제주인들이 서울로 떠난다는 것에는 쾌감을 가졌으며 남장을 하고 떠난다는 점에서는 당시 사회의 남성 중심적인 시대상을 반영했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른 해석은 동성 간의 대결이라는 해석이다. 계모 설화에서처럼 여성 간의 대결은 비극적 결말이 된다. 그래서 구렁덩덩 신선비에서 아내는 중이 되어 떠난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청비가 남장을 하고 떠나 문 도령과 이별을 하게 된다는 설정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자청비와 서수왕 딸애기의 대결도 비극적인 결말이듯이 같은 성性은 이별, 사망에 이른다는 옛이야기 방식일 수도 있다.
고대중본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다른 무속인의 구송에서는 자청비의 성별을 확인하려 스승이 활 쏘기를 시키거나 문 도령이 서서 오줌 싸기를 하게 한다. 자청비가 여성임을 아는 청자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자청비와 문 도령은 헤어지게 된다. 정수남을 살리려 김 정승 집을 찾아갈 때도 남장을 한다. 제주에서 여성이 육지로 갈 수 있으려면 남장이 아니면 안 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다른 해석으로는, 목축 신이 되는 정수남을 살리는 농경신의 계절성을 갖춘 모습으로 그려졌다 할 수 있다. 또한 제주의 생존을 의지하는 곳이 바다다. 제주의 바다는 삶과 죽음을 주는 존재다. 갯것할망 옆의 용천수처럼 생명수와 바다의 해산물로 살아갈 수 있게 생존을 주기도 하지만 바다가 험해지면 목숨을 앗아가는 이중성에 관한 생각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청비의 남장은 제주의 모습을 반영했다고도 볼 수 있다. 문 도령이 서수 왕 딸애기와 혼인 때문에 떠날 때 자청비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장면을 보면,
『연삼년을 가 한방 안네서 잠을 자며 글공비 활공비하되 남년중도 모르더라. 몰르시니 자청도령이 말을 하되 『문왕성문도령님아 옵서 몸모욕이나 하영가게 몸모욕을 하시는디 당신님이랑 알통에서(아랫쪽 물통에서) 모욕을 하옵소서. 날라근에 웃통에 가 몸모욕을 하오리다』 이를적이 자청비가 웃통에 가 모욕하며 물창을(물의 밑창을) 숙대기며(휘저으며) 숙대기난 무남성이문도령이 말을 하되 『어찌 물창이 이렇게 궃는고?』 하여 하는 중에 자청비가 청버드낭 섶을 기차내여(뜯어내어) 상손가락을 집어때고(집어 뜯고),『문왕성 도령아 눈치 모르고 이치 모른 문왕성도령아 연삼년을 한방 안네서 글공비 활공비하되 남잔중 여잔중 모르더구나』 글을 처 띄웠더라. 문왕성문도령은 줏어보난 자청비가 여자로구나』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내려와 벽랑국 공주와 결혼했다는 혼인지다. 문 도령과 자청비의 만남도 물에서 이루어지지만, 성性의 갈림도 물에서 이루어진다. 이 갈림은 남성과 여성의 갈림일 수도 있고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의 갈림일 수도 있다.
정수남의 죽음
정수남이 자청비를 범하려 하자 자청비가 은 젓가락을 정수남의 귀를 찔러 죽인다. 또 서수 왕 딸애기는 문 도령이 막편지를 돌려주자 방 안에 갇혀 죽게 된다. 이 두 죽음은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정수남의 죽음에 관해서 강원도 대관령 정씨 소녀 설화로 해석할 수 있다.
정씨 소녀가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해 범일국사의 아내가 되어 호환을 막아주는 여성황사가 된다.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한 정씨 소녀가 호랑이와 교감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한 것을 반영한다. 견훤의 설화에서도 젖을 물려준 호랑이와 교감하는 존재라는 것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소 아홉 마리와 말 아홉 마리를 먹은 정수남은 목축 신인 중세경신이 되는 방식과 같다. 가축은 땅의 풀을 먹고 살아간다. 그래서 땅과 농업의 하세경신인 자청비가 정수남을 죽인 것도 같은 방식이다. 제주도 행원리 웃당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먹은 신이 좌정한 신을 모시면서 돼지고기를 삶으로 수용할 수 있게 됐다.
『아버지 나라는 강원도요 어머니 나라는 철산인 중의대사가 당堂오백 절寺오백이 없어질 무렵에 살길을 찾아 제주도에 들어왔습니다. 관포(조천)에 이르러 당신인 정중부인에게 함께 있기를 간청했으나 땅도 물도 내 것이니 여기에 좌정할 수 없다 거절한다. 조천관을 떠나 뒷개에서 무료하게 날을 보내는데 고기잡이 하는 김첨지 회갑잔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구경할 겸 들어갔다가 배도 고파 견디기 어려운데 대접하는 국수를 맛있게 먹고 난 다음에 국수 국물이 돼지고기 국물인줄 알고 제주도에서는 중도 돼지고기를 먹느냐고 따졌는데 김첨지는 대사인줄을 미처 몰랐다고 해명한다.
중의대사는 살 곳이 못 된다 생각하여 어등개 마을 청천이동산(연디봉)에 이르러 거기가 살 곳이라 생각하고 좌정하여 일곱 날을 기다려도 누구 하나 대접하는 사람이 없었다. 중의대사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풍운조화를 불러들여 마을에 흉년이 들게 한다. 이상히 여겨 유지들이 공론을 했으나 알 수 없어 중의대사를 불러 “흉험을 주었습니까?” 물었더니 그랬노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유지들은 이 마을에 좌정할 곳이 있거든 좌정해 달라고 간청했다.
중의대사는 심방은 당에 가는 것이고 중은 절을 지켜야 하는 법이로되 이 마을에는 절이 없으니 당에라도 가서 좌정하겠다 했다. 그리고는 남당으로 가서 남당하르방을 만났는데 벌써 돼지고기를 먹었던 사실을 알고 자기와 좀 떨어져(혹은 등 지고) 좌정해 배와 해녀 어장을 차지하여 얻어먹으라 했다. 중의대사는 농경신으로 남당하르방은 해신으로 좌정하게 됐다.』
서수왕 딸애기의 죽음
제주에서의 결혼은 두 집안 가장의 결정으로 성사된다. 합의가 이루어지면 신랑 측에서 혼인날을 적은 막편지를 가지고 신부 집에 찾아간다. 편지와 함께 혼인날 입을 옷의 옷감을 신부 측으로 전달한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는 신부 측이 받아야 할 것을 문 도령이 받았고 결혼의 파기를 알리기 위해 막편지를 돌려주기 위해 서수 왕을 찾아간다.
실제 제주의 결혼 파기는 좀처럼 없었다. 막편지가 전달되면 결혼은 거의 성사 단계라 할 수 있는데 파혼은 막편지 오기 전에 이루어져야 했다. 그래서 서수 왕 딸애기가 죽어서도 문가 사람이라는 주장은 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문 도령의 파혼 결심이 굳건하자 자신의 방 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딸애기가 죽어 네 마리의 새가 되는데, 머리를 아프게 하는 두통 새, 나쁜 마음을 일으키는 악심 새,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어혈 새, 부부가 멀어지게 하는 곰팡 새가 되었다. 이것 또한 동물들을 정수남이 수용하고 정수남을 자청비가 수용한 것과 같이 처음부터 결혼 파기가 아니라 서수 왕 딸애기를 문 도령이 수용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문 도령은 네 마리의 새를 수용한 것이다. 딸애기가 죽어 후처가 되지 않게 됐지만 문 도령을 자청비는 거부하고 땅으로 내려온다. 자청비와 문 도령이 절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문도령이 서수 왕 딸애기를 수용한 것에 있다. 제주의 산굼부리에서 전해지는 설화가 이와 비슷하다.
산굼부리 설화
『옛날 옛적에 하늘 옥황상제가 견우성, 직녀성 같은 여러 별들을 거느리고 있을 때 한감이라는 별도 있었는데 별들 중에서 영특하기로 소문나 있었다. 옥황상제의 말잣딸(셋째 공주)이 착하고 총명해서 사랑을 받고 있었는데 옥황상제의 생일잔치에서 만나게 된 한감과 말잣딸은 서로 반해 사랑하게 되었다. 옥황상제 몰래 만남을 해오다 소문이 상제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둘은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게 된다. 허락을 받지 않고 사랑하게 되었다 해서 둘은 귀양을 가게 된다. 한감과 말잣딸은 살만한 좋은 곳을 찾다가 지금의 산굼부리에 내려와 살게 되었다.
한감은 동물들을 사냥해 먹었고 말잣딸은 다양한 나무 열매를 먹었다. 이 식성의 차이가 결국 둘을 싸우게 되고 말잣딸과 한감은 서로의 식성과 냄새를 싫어해 헤어지게 된다. 말잣딸은 산굼부리에서 내려와 인가를 찾았는데 지금의 제주시 남문 밖 천년 팽나무에 좌정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곳을 각시당이라 하여 단골을 두게 되었고 한감은 산의 짐승들을 돌보며 살게 되었는데 나중에 사냥꾼들은 이곳 산굼부리에서 산신제를 올린 후에 사냥 갔다고 전해진다.』
산굼부리 설화에서는 극복할 수 없는 식성의 차이로 헤어지게 된다. 옛날 제주에서는 중산간지역과 해안가 지역 사람들은 서로 통혼하지 않을 정도였다. 말잣딸은 과일과 열매라는 수렵의 방식을 가져왔다면 자청비는 농경생활에 필요한 목축 신인 정수남을 데리고 땅으로 내려온다. 고대중본에서는 스스로 내려왔지만 다른 무속인들의 구송에서는 돌아오는 문 도령이 말 위에 거꾸로 앉아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자청비도 돌아서 내려왔다 한다. 제주인들의 날씨에 관한 생각을 보여준다. 하늘은 사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문 도령과 자청비의 헤어짐은 하늘 아래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땅의 신도 어쩌지 못하는 하늘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옛 설화들의 이야기 속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모든 설화를 찾은 것은 아니다. 여전히 설화는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아 들리지 않는다. 여전히 많은 설화들을 찾아야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설화 해석 코드로 이제 동화를 해석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