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재 해석

해님과 달님

해님과 달님

우리가 어린아이들에게 읽히는 동화는 설화에 근원한다. 설화는 문자가 아니라 입으로 전해졌기에 화자에 따라 변형되기도 하지만 교훈적인 주제의식은 같다. 거기에 재미 더해져 다르게 이야기된다. 설화에는 옛 세계관으로 자리한다. 옛 세계관이 지금의 세계관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 조건이 있기는 하다.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지금 시대에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의 이야기는 배제된다. 그래서 아이들이 읽는 동화는 옛이야기이지만 현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동화에서 옛 세계관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현대적 세계관에 감춰져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글은 옛 세계관을 드러내는 작업이다.

가장 유명한 전래동화라 할 수 있는 해님과 달님은 엄마와 두 아이가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하는 가족 몰살 사건이다. 아이들이 죽어 하늘에 올라가는 비극적이지만 비극적이지 않게 받아들이는 이야기다. 어머니는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했고 아이들은 현실에서 사라져 저 하늘로 떠나갔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지만 한 가족이 모두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떠난 이야기다. 비극적 사건을 어떻게 희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됐을까? 처음부터 비극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만든 누군가의 마음을 찾아가는 이야기의 이야기, 해님과 달님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해님과 달님

엄마의 죽음

장터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여러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그때마다 떡을 달라던 호랑이가 나타나 떡뿐만 아니라 엄마의 목숨마저 앗아가는 비극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이들의 엄마가 호랑이에게 죽임을 당한 사건 현장은 고개다.

전남 무안군 현경면, 저승재(지금은 봉오재로 불린다)

저승 재라 불렸던 봉오재다. 이 고개에 얽힌 이야기는, 옛날 한 노승이 이 근처 절이 수도하기 좋다는 소문을 듣고 한 겨울에 그 절을 찾아왔다. 그런데 지치고 배고픔 때문에 기력이 없는데 이 고개에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결국 노승은 고개를 넘지 못하고 굵어 동사(凍死) 했다. 노승의 영혼은 악귀로 변해 이 고개를 넘으려는 사람들을 괴롭히며 죽였다. 스승의 소식을 접하게 된 젊은 제자는 스승의 시신을 찾아내어 잘 매장해 주고 그의 배고픔을 달래주기 위해 떡 석 잔을 올렸다. 그 뒤로 이 고개를 넘으려는 사람들은 떡 석 잔을 올려야 무사히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이야기의 해석에 필요한 것은 “떡 세잔”이다. 떡이라 하는 것은 만두의 유래와 비슷한 인간의 살을 대신해 바치는 것이었다.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노수라는 강에 사는 용에게 사람 마흔아홉 명을 제물로 바쳐야 했지만 만두로 대신했다는 이야기처럼 떡으로 대신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숫자 구(九)에 관한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자면, 중국과 한국의 구(九)에 관한 숫자의 관념은 다르다.

사람으로 변신한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로 설명하자면 중국의 숫자 구(九)는 완결의 의미다. 사람을 홀릴 완결된 미(美)의 대상이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인체나 성격의 결핍이다. 자청비 설화에서 자식을 얻기 위해 사찰에 바칠 음식 백 근 가운데 딱 한 근 부족한 구십 구근이라서 딸을 낳게 되었다. 또 제주의 창조설화인 설문대할망 설화에서 설물대할망에게 바칠 명주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명주실 백 개에서 한 개가 부족해 제주가 섬으로 남게 되었다는 설화를 통해서도 중국과 한국의 숫자에 관한 관념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이라는 숫자는 떡이 사람을 대신한다는 것을 더 정확히 알게 해 준다. 옛사람들은 인체의 구성은 뼈와 피와 살, 혹은 뼈와 살과, 숨(영혼)으로 되었다 생각했다. 여우누이 설화에서 누이로 변한 여우를 죽이기 위해 세 개의 주머니를 던진다. 여우의 살과 뼈와 피(혹은 영혼)를 제거해 죽인다. 살리는 방식도 마찬가지인데, 바리데기 설화에서도 꽃과 약물 세 개로 아버지를 살려낸다. 자청비 설화에는 더 분명하게 생명 꽃 세 개를 가져와 뼈를 살려내고 살을 돋우게 한 다음 피(숨)를 넣어 자신이 죽였던 남종인 정수남을 살려낸다.

잔이라 하는 말이 여전히 전해지는 이유는 접시라는 뜻보다는 잔이라는 어떤 표현이었기 때문인데, 한자어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앞의 떡과 셋을 완성해주는 한자인 해칠 잔(戔) 자였거나 잔 잔(盞)이었을 것입니다. 세 덩어리의 살과 같은 떡을 바치기 때문에 목숨을 더 이상 해치지 말아달라는 의미의 해칠 잔(戔) 혹은 어떤 것을 잔에 정성스레 담았다 하는 마음을 표현한 잔 잔(盞)이라는 한자로 표현했을 것이다.

호랑이의 존재

호랑이는 어미를 해친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을 찾아간다. 어미의 죽음은 아이들의 암울한 미래를 예견하게 한다.

전남 해남 문내면 우수영에서 충평마을로 넘어가는 곳에 쑥국 고개(된재)가 있다. 이곳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는 떡 팔러 돌아오는 어미의 이야기가 아니라 떡을 팔기 위해 장터로 향하는 어미의 이야기다.

전남 해남군 충평마을의 버릇들

넘기 어려워 몸을 숙여 넘어야 했던 쑥국 고개에서는 호랑이가 아니라 아이들이 등장한다. 아이들에게 떡을 주고 나서야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한다. 그래서 충평마을 인근을 버릇없는 아이들이 있다는 “버릇들”이라 했다. 아이들을 키워야 했던 어미들의 지난한 삶의 감정이 담긴 이야기라 생각된다. 그래서 아이들을 찾아가는 호랑이는 동물인 호랑이 일 수도 있지만 먹을 것을 줄 어미의 부재인 가난이다. 호랑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은 굶주릴 수밖에 없다..

동아줄

도끼로 나무를 찍어 홈을 밟고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자신들도 모르게 호랑이에게 알려주게 된다. 남매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어 하늘에 동아줄을 내려 줄 것을 기원한다. 그런데 여기서 금 동아줄과 썩은 동아줄이라는 두 줄이 등장합니다. 이 줄은 이야기 자체에서는 위급한 상황에서의 탈출이라는 수단으로써의 줄이지만 이야기 밖에서 해석하자면 액과 악귀를 막는 금줄이자 명(命) 줄이다.

옛 전통혼례식에서는 부부의 연을 길게 가져가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청실과 홍실을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생명을 길게 해 달라는 명줄이라는 것을 굿과 돌탑, 장승에서 사용했었다. 생명연장의 꿈은 지금은 의학으로 이루려 하지만 옛사람들은 신앙을 통해서였었다.

한국의 굿 중에서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오구굿이 있다. 망자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저승에 연결된 망자는 이승에 남겨진 자손과 가족의 명줄을 늘려주고 간다. 오구굿이라 하는 이유는 다섯 개의 구멍이 나 있는 떡시루를 뒤집고 그곳에서 명줄을 끄집어낸다 해서 오구굿이다. 명줄이 길면 망자가 남겨진 가족들의 수명을 늘려준다 해서 대부분 긴 명주(明紬) 실을 이용한다. 명주실을 이용하는 것도 목숨 명(命)과 밝을 명(明)이 같은 발음이기 때문에 두 의미 모두를 담아낸 것이 명줄이다.

출처, 다음 블로그

한국의 서낭나무에 걸려 있는 오방색 천은 천지의 조화와 만물의 번성을 위해 걸어 놓았다. 그리고 서낭나무에 개인적인 기복도 걸어 놓는데 그것이 명주실이다. 자식이나 손주가 병치레 없이 잘 먹고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기원하며 걸어 놓기도 했다. 해님과 달님의 동아줄은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 듣는 아이의 명줄을 늘려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호랑이의 죽음

금산군 자진뱅이 돌탑의 금줄

썩은 동아줄이 끊어져 호랑이는 땅에 떨어져 죽는다. 그런데 대개 주식인 쌀보다는 조, 수수와 같이 잡곡과 관련된 곳에 떨어져 죽는다. 호환도 무서웠겠지만 굶주림도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었다. 흉년이 들어 쌀이나 보리 등 먹을 곡식이 없으면 잡곡을 먹었어야 했다. 앞에서도 호랑이 자체라기보다는 굶주림과 관련 있었지만 결론부의 호랑이의 죽음 또한 아이들을 위협하는 굶주림을 물리쳐 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로 해석된다.

해와 달

남매는 하늘에 올라가 해와 달이 된다. 해와 달은 농경생활에서 기후를 결정해주는 중요한 존재다. 해와 달에 인격을 부여해 사람의 마음에 감응해 자신들의 아이들을 지켜주는 풍년 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만들었던, 할머니와 엄마가 물레를 돌리며 초롱초롱 뜬 눈으로 잠들지 못한 아이를 재우며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의 이야기, 해님과 달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