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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

by 꼭그래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


지금까지의 여정을 돌이켜 보면, 이야기의 배경이 되었던 곳은 신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산과 바다, 강, 저수지에서 점점 마을로 향한다. 유교적인 윤리관과 불교적인 사후세계관이 더해져 동물에서 사람들이 살고있는 마을 안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역사 유적지나 이국적인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을 찾아가는 이유는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음식을 담을 그릇을 역사적 가치가 있고, 아름다운 곳이 그릇이라면 이야기의 내용이 음식과 같다. 때로는 아름다운 식기들이 음식을 맛있게 보여지기 때문이다. 좋은 그릇에 자신의 관념이나 감정을 매끄럽고 아름답게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세상에 던진다. 작은 물결 같은 파장을 일으키며 누군가에게 도달되기를 바라며 지금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설화 여정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가지 않는다. 누구나 흔하게 보았을 시골 풍경 속에 있다. 흔한 풍경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들은 뻔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다. 그래도 설화를 찾아가는 이유는 지금의 이야기가 세련된 서사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옛이야기 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뻔한 서사에는 설화의 특징이 있기 때문인데, 토착신앙적인 옛사람들의 세계관이 있어서다. 토착신앙적 세계관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다른 세계관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상사_01.JPG 전라북도 남원시, 실상사 극락전

유교에서는 어떤 상像을 정의 내리려 한다. 불교는 상이 없다고 말한다. 도교는 상이 변한다고 말한다. 토착신앙은, 불교처럼 상像이 없다고 하지 않지만, 유교처럼 질서를 위한 정의 내리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도교처럼 일정한 패턴으로 상이 변하는 것도 아니라 불규칙적으로도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설화를 통해서 알게 된 우리 선조들의 세계관이다.


설화는 유교, 불교, 도교, 토착신앙이라는 이념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각각의 세계관이 이야기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유교는 질서를 추구한다. 효孝를 통해서 가부장적 질서를 바탕으로 국가의 질서인 충忠을 요구한다. 불교는 권력과 기상현상을 분리하고 권력자와 민중을 분리해 계급 사회를 유지하게 한다. 불교가 유교보다 먼저 국가체제의 도구로 사용된 이유다. 불교를 버리고 유교가 국가체제 시스템이 되자 유교는 도교의 풍수사상을 이용해 토착신앙적 공간마저 질서의 공간으로 만들려 했다. 그것이 고스란히 설화에 새겨져 있었다. 그렇지만 설화는 이념투쟁의 장場이 되지 못했다. 각기 쓰임에 따라 토착신앙적으로 수용한 것, 우리 설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설화가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 친근하고 익숙한 동물과 산천山川에 담았다면 지금은 이국적인 풍경과 음악, 역사와 이념, 과학 등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그릇에 담고 있다. 담을 그릇이 다양해졌다 하더라도 이야기는 비슷한 서사 구조를 갖는다. 이야기 담을 그릇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담아내는 내용이 거칠다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투박하면서도 내용이 익숙하게 맛있는 전통적 이야기인 설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한 탐구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설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이야기 교본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나 분단과 지역주의라는 마음의 장벽을 이념과 지역을 넘고 세대를 이어 전해져 온 설화가 마음의 통로 역할을 하기 바라는 마음에서다. 설화가 당시의 세계를 담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을 변화하게 하려던 것처럼 지금의 이야기에서도 세상을 담고 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처음에 논문들을 읽으며 현장에 가보지도 않아서 이런 오류를 범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현장을 찾지 않고 텍스트 안에서 맴도는 글을 쓰는지의 의문은 몇 번의 여행으로 알게 됐다. 돈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설화의 현장을 찾는 이유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는 글이 아니라 새롭게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새로운 여정을 위한 마침의 글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더 많은 설화의 현장이 사라지기 전에 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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