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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재 해석

선녀와 나무꾼

by 꼭그래

선녀와 나무꾼


선녀와 나무꾼은 제주를 제외하고 전 지역에서 전해지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이야기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콩쥐팥쥐의 이야기처럼 결혼하게 되는 전반부와 나무꾼이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죽어 닭이나 뻐꾸기가 되는 이야기로 나뉜니다.


선녀와 결혼한 나무꾼


『옛날 한 옛날에 효심 깊은 나무꾼(혹은 고아인 머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산으로 나무하러 가다(머슴이 불을 피우려 나뭇가지를 줍다가) 사냥꾼에게 쫓기던 노루가 나무꾼에게 숨겨달라 한다. 나무더미 속에 노루를 숨겨주고 사냥꾼에게 거짓말을 한다. 자신을 살려준 나무꾼에게 소원이 무엇이냐 묻는다. 노루는 결혼이 소원이라는 나무꾼(머슴)에게 나무더미에서 잠을 자게 한다. 잠을 자던 나무꾼은 자기도 모르게 하늘나라로 올라가 있었다. 하늘나라에서 선녀와 결혼한 나무꾼은 아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루는 노루가 찾아와 선녀가 아이 셋을 낳기 전에는 노루를 통해서 결혼하게 된 과정(혹은 날개 옷)을 설명해 주지 말라 한다. 아이 둘을 낳자 나무꾼은 안심이 되었는지 혼인 과정을 말해 버렸다. 선녀는 화가 나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을 바라보며 후회하고 있던 나무꾼에게 노루가 다시 찾아와 하늘에서 선녀들의 목욕물을 떠가려는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라 한다.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은 아내와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았다.』


동화의 이해


나무꾼이 선녀의 날개 옷을 훔쳐 결혼해 잘 살았다는 짧은 이야기다. 효행의 보상이라는 측면에서 유교적이며 살생 금지라는 점은 불교와 연결된다. 이야기의 공간은 선녀가 사는 하늘이 하강하고 나무가 하늘을 향하는 것은 도교적이며 토착신앙적 공간이다. 선녀의 하늘과 나무의 땅이 인간을 통해 만난다. 나무꾼이 두레박을 타는 상승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에서는 선녀의 하강을 통해서다. 무속에서 강신무가 접신을 하는 것과 같은 공간이 이 이야기의 배경이자 공간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효행과 자비를 구현하는 윤리적 공간이 나무꾼의 공간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 관한 이야기다.


나무


옛사람들에게 나무는 신앙적 존재였다. 제주에서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채록되지 않고 있는데, 당연하게도 제주에서는 나무꾼이라는 직업은 용납될 수 없었을 것이다.


와흘본향당신목.jpg 와흘본향당 신목(팽나무)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의 와흘 본향당 신목(팽나무)이다. 돌, 여자, 바람이 많아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는 육지와 마찬가지로 나무는 신앙의 대상이다. 제주의 중산간 지역인 와흘리에서는 해안가와 다르게 돼지고기와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특히나 신목을 소중하게 보호하고 있는데, 바람 많은 제주에서는 나무가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산신령의 령靈이 깃든 것으로 생각해 나무를 벨 때는 산신제를 지냈다. 그래서 다른 이야기에서는 땔감을 산 나무를 베는 것이 아니라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줍는 이야기도 있다. 무속적 세계관에 익숙했던 옛사람들에게 선녀의 하강과 나무꾼의 상승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강릉단오제.jpg 강릉단오제 신목(단풍나무)

강릉 단오제에서는 산신인 범일국사의 령을 신목에 담아 온다. 단오제 동안 범일국사를 잘 대접한 다음 신목을 태워 대관령으로 돌려보낸다. 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단오제 기간 동안에 산신령을 모셔와 그를 달래고 농기구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벌목했었을 것이다. 신앙의 대상이 아니더라도 나무는 하늘의 기후와 관련되어 있다 생각해 왔다.


『동중서董仲舒의 사철에 기우하는 방법은 이미 일찍이 참작해서 거행했으나, 단지 봄철의 가뭄에는 고을[縣邑]에 명령하여 수일(水日)에는 백성들로 하여금 사직단에 빌게 하고, 이름 있는 나무를 벤다든가 산림(山林)에서 벌목하지 말게 하며, 여름철 가뭄에는 고을에 명령하여 수일(水日)에 집 사람들이 부엌 귀신에게 제사 지내게 하고, 흙일을 한다든가 다시 샘물을 가시어 내지 말도록 하며, 6월 가뭄에는 집 사람들이 중류(中霤)에 제사 지내게 하고, 흙일을 너무 하지 말게 하며, 가을 가뭄에는 집 사람들이 거리 귀신에게 제사하고, 불일[火事]을 하지 말게 하며, 겨울 가뭄에는 집 사람들이 샘물에 제사하며 물이 막히지 말게 하는 등의 일을 다 거행하지 못했습니다.』 세종 18년, 의정부


유교국가였던 조선시대에는 나무가 기후와 관련 있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보호만 하지는 않았다. 태종(이방원) 때에는 왕의 사냥터인 강무장(講武場)에 머물며 민간인들이 밭을 일구거나 벌목하는 것을 관리 감시했던 별차別差가 백성들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나무 베는 것을 엄하게 단속하자 태종은 그것을 꾸짖어 파직시킨다. 제한을 하되 겨울에 불을 지피거나 조상의 묘 관리를 위한 벌초와 벌목은 허용됐다.


아이 셋


은퇴한 관리인 향대부가 어진이를 찾아 예를 갖춰 대접하는 방식을 기록한 향음주례에는 고수레(음식을 떼어 허공에 던지는)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초대한 주인이 술을 잔에 채우면 손임은 말린 고기와 고기 젓갈, 고기를 제공한 동물의 허파를 떼어내어 고수레를 한다. 말린 고기는 단단한 뼈를, 고기 젓갈은 살과 피를, 허파는 숨을 의미한다.


인간과 동물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에 관한 옛 생각이다. 바리데기와 자청비 설화에서도 뼈와 살과 숨을 불어넣는 생명 꽃이나 약물 세 개로 사람을 살려낸다. 여우 설화에서는 반대로 여우를 죽이는 데 사용된다. 그래서 아이 셋이라는 것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인간의 완성이라는 상징적 숫자다. 아이 셋을 낳기 전에 날개 옷을 주었다는 것은 선녀가 완전한 인간으로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녀 중에서 막내이거나 셋째가 선택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가능성이다. 아이의 숫자가 제각각 전해지기는 하지만 이 셋이라는 숫자가 옛 사고방식의 원형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날개 옷과 두레박



제주 남원읍.jpg 제주시 남원읍 해안

서귀포시 남원읍에는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저승사자가 잘못 기록된 명부 때문에 망자를 데려갔으나 이승으로 돌려보내며 흰 개를 따라 가면 이승으로 갈 수 있다고 해서 흰 개를 따라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장례를 치르는 도중에 살아났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찾아간 남원읍 해안가는 해변의 모래와 바닷물, 그리고 하늘조차 숯처럼 검었다. 그리고 달이 뜨지 않은 밤에 번갯불만이 세상을 밝힐 때 보였던 것은 개들이 달리기라도 하는 듯 보이는 흰 파도였다. 누군가를 잃거나 거칠어진 바다로 나간 누군가를 걱정하며 흰 개들(파도)을 따라 이 해안가로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야기인 듯하다. 개를 따라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의 이야기는 이곳 남원읍에서만 전해진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오는 방법이 흰 개를 따라왔다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방법은 인연因緣을 끊어낸다. 해님과 달님의 오누이가 지상세계와의 인연이 끝나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씻김굿에서 무당이 하얀 명주실을 다 끄집어 내거나 흰 천을 가로질러 잘라내 망자와 가족들과의 인연이 끝났음을 알린다. 나무꾼이 선녀에게 날개 옷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는 방법이 다양하게 전해지는데 인연의 끈이라는 생각이 바탕이다. 그네를 타다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는가 하면 무지개를 타거나 두레박을 타고 오른다.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나무꾼이 두레박에 오른 것도 연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아내와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희극적 결말의 이야기로 끝나기도 하지만 비극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아내가 말한 금기를 어겨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닭이 되거나 금기를 어긴 것을 안 선녀가 두레박의 줄을 끊어 떨어져 죽게 된다. 인간적인 도리로 채워야 할 나무꾼의 공간이자 인간 삶의 공간에 그리 매몰차게 지상의 어머니와 인연을 끝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닭이 된 남자


『떠나간 아내를 잊지 못하여 선녀를 만났던 곳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노루가 찾아와 하늘로 오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셋째 선녀가 나무꾼 때문에 승천하지 못하자 그 뒤로 목욕물을 두레박을 이용해 길러 가니 두레박에 오르라 한다. 밤에 하늘에서 두레박이 내려왔다. 나무꾼은 두레박에 물을 따라내고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아내와 아이들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장인, 장모, 동서와 처형이 인간세상에서 온 나무꾼을 시험에 통과해야만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말한다. 장인과 숨바꼭질, 장기 두기, 이정승 딸 허벅지에 박힌 화살 빼오기, 이무기의 눈에 박힌 화살 빼오기, 말 타기, 천도 따오기, 쥐가 가져간 장인의 그릇 찾아오기, 쥐뿔 뽑아오기, 고양이 왕의 옥새와 통천관(황제가 경축일에 쓰던 관) 가져오기를 통과해 사위로 받아들여 아내와 살 수 있었다.


나무꾼은 지상에 남겨진 어머니를 잊지 못하여 슬픔에 잠겼다. 그러자 선녀는 남편에게 한 마리의 천마를 가져다주고 어머니를 뵙고 오라 한다. 단 말에서 내리지 말아야 하며, 아무리 배고파도 지상의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며, 하늘로 돌아올 시간을 절대 어기지 말아야 하늘로 돌아올 수 있다 말한다.


천마를 타고 집에 도착해 어머니를 찾아 천마에 태워 하늘로 오르려 했으나 <어머니가 박국을 먹자고 해서 먹다가, 혹은 시간이 늦어 서두르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버린다. 천마는 그 즉시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렸다. 하늘로 오르지 못한 나무꾼은 아내와 아이가 보고 싶어 날마다 울다 병들어 죽어 닭(뻐꾸기)이 되었다.』


동화 해석


신화에서 시험은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문제들이다. 그런데 선녀와 나무꾼의 시험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 같은 시험이다. 성性에 따른 차이도 있는데 장기 두기와 숨바꼭질에는 성에 차이가 없지만 이정승 딸 허벅지에 박힌 화살 빼오기와 말 타기는 남자아이들에게, 장인의 그릇을 찾아오기와 고양이 왕의 옥새와 통천관(황제가 신하를 만나기 위해 쓰던 머리에 쓰던 관冠) 찾아오기는 부엌과 길쌈에 관련되어 있어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들에게 다르게 이야기했었다 생각된다.


노루나 쥐와 같은 조력자를 통해 시험에 통과한다. 자청비 설화에서 정수남을 죽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 신선이 자청비를 따라가는 정수남의 혼령(귀신)을 떼어 준 것과 콩쥐팥쥐에서 소와 두꺼비, 쥐가 도와주는 것 같이 친숙한 동물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나무꾼도 노루나 쥐에게 도움을 받는다.


지상으로


어머니를 찾아와 말에서 떨어진 것은, 후손을 남기고 효성을 다한 인간 도리를 다했음을 말하는 것이다. 유교적 효孝로 돌아온다. 그런데 하늘의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는 끝난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하늘과 연결된 어떤 조재로 만드는데, 그것이 새다.


닭도 한 때는 새다


새鳥는 하늘과 연결된 존재로 생각되어 신성한 지역을 상징하는 솟대에는 사용되었다. 그런데 닭은 날지 못한다. 날지 못하는 새인 닭이나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에 관한 어떤 윤리적 설명이 필요했었을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어떤 존재가 필요했는데 선녀와 나무꾼의 결혼담에 나무꾼을 지상으로 떨어뜨려 닭이 된 남자의 이야기를 더해 전체적인 서사를 완성시켰다. 선녀와 나무꾼은 옛사람들의 세계관과 인간관 그리고 지상의 어떤 존재에 관해서 당시 사람들이 익숙한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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