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사 창건설화
전남 장흥의 보림사다. 중종 10년에 천왕문이 세워졌다 전해진다. 신라 헌안왕(860년 경) 때 원표대덕이 작은 암자를 지었고, 훗날 한국 선종의 종조라 하는 도의선사가 설악산에서 내려와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가지산파를 열었다. 도의 선사의 제자인 보조국사 체징에 의해 중창, 중수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종사상을 기반으로 세워진 사찰이다. 지금의 보림사에는 해탈문이 아니라 천왕문이 세워져 있는데, 조선 중종 10년에 처음 세워지고 정조 4년(1780년)에 중수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존하는 목조 사천왕 중 가장 오래되었다. 천왕문 뒤편의 대적광전과 천왕문 지나 우측의 대웅보전은 전쟁으로 소실되어 근래에 복원된 건물이다. 구산선문 중 가지산파의 중심 사찰인 보림사는 한국 선종의 3대조인 체징에 의해 지어졌다. 보림사의 창건설화를 보면,
신라의 명승 원표대덕이 인도 보림사, 중국 보림사를 거쳐 참선 중 한반도에 서기가 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신라로 돌아와 전국의 산세를 살피며 절 지을 곳을 찾았다. 어느 날 유치면 가지산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데 선녀가 나타나더니 자기가 살고 있는 못에 용 아홉 마리가 판을 치고 있으므로 살기 힘들다고 호소해왔다. 원표대덕이 부적을 못에 던졌더니 다른 용은 다 나가고 유독 백룡만이 끈질기게 버텼다. 원표대덕이 더욱 열심히 주문을 외었더니 마침내 백룡도 못에서 나와 남쪽으로 가다가 꼬리를 쳐서 산기슭을 잘라놓고 하늘로 올라갔다. 이때 용꼬리에 맞아 파인 자리가 용소(용문소)가 되었으며 원래의 못자리를 메워 절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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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설화는 원표대덕의 암자에서 시작해 선사가 세워진 이유에 관한 이야기다. 아홉 마리의 용이 못에 살고 있다는 것은 부처의 출생 담에서 가져왔다. 싯다르타의 어머니 마야부인이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오른쪽 옆구리로 싯다르타 태자를 낳으니 용 아홉 마리가 물을 뿜어 싯다르타의 몸을 씻겼다. 그러자 싯타르타는 일어서 손가락으로 하늘과 땅을 가르키며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보다 존귀한 자는 없다"라는 싯타르타의 탄생설화를 통해서 이곳 장흥에 싯타르타의 법맥을 원표 대덕이 전하게 된 이유에 관해 말한다.
선녀가 나타나 원표대덕에게 용을 물리쳐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은 지혜의 존재인 문수보살(반야, 지혜)을 의미한다. 부적과 주문을 외었다는 것은 화엄경을 가지고 신라로 돌아온 원표대덕이 염불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까지 원표대덕의 일이다.
그럼에도 유독 백룡만이 끈질기게 버텼다는 것에는 교종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백룡은 선종 사찰인 백장사를 창건한 백장회해百丈懷海의 뜻을 이어간다는 것을 암시한다. 염불에 이어 이번에는 선가의 시를 게송 하자 백룡이 못에서 나와 남쪽으로 가다 꼬리를 쳐 산기슭을 잘라 놓아 못이 되어 용소라 불렸던 이곳을 메워 절을 지었다는 것을 풀이 하자면, 원표대덕의 암자를 도의선사와 체징에 의해 선종 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설화는 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