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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설화

해남 대흥사 설화

by 꼭그래

대흥사


DSC_5683.JPG 대흥사 대웅보전

해남을 땅끝이라 하는 이유는 사후 세계관에 기인한다. 북쪽을 사람이 죽으면 가야 하는 저승이고 남쪽을 삶이 펼쳐지는 이승이라 생각해서다. 색깔로는 저승은 검은색으로 표현하며 땅은 하얀색이다. 그 안에서 다양한 삶의 색이 펼쳐진다. 그것이 우리 조상들의 죽음과 삶을 이미지화하는 기본 토대였다. 그래서 이곳 땅끝 해남에 자리한 대흥사에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 할런지도 모른다.


대흥사 설화


사람이 죽으면 저승으로 가는데 대흥사가 이승과 저승의 경계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승으로 가면 저승 왕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한다. 망자가 답을 제대로 하면 극락을 가거나 다시 인간세상으로 환생을 하지만 제대로 답하지 못할 경우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 질문은 대흥사 길에 놓여있던 옹기의 개수가 몇 개인지 알고 있는지 저승 왕이 물었다 한다.

_DSC9269.JPG 강진 옹기

욕심 많은 부자와 가난한 선비가 죽어 저승차사를 따라 저승으로 가게 되었다. 부자는 가면서 옹기의 개수를 무시했지만 선비는 옹기의 개수를 자세히 세었다. 대흥사를 지나 저승에 도착하자 저승 왕은 부자와 선비에게 대흥사의 옹기 개수를 말해보라 했다. 그러자 세어 보지도 않았던 부자는 자신만만하게 몇 개 인지를 말했다. 옆에 있던 가난한 선비는 저승 왕에게 "세었지만, 모르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저승 왕은 욕심 많은 부자는 지옥으로 가난한 선비는 극락으로 가게 했다는 것이다. 실은 아무리 세어도 알 수 없는 숫자였으며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옹기의 개수를 모두 셀 수 없었기에 숫자가 아닌 모르겠다는 말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알고자 하면 모르고 모르고자 하면 알게 되는 것이 세상살이라는 의미의 이야기인 듯하다. 눈에 보인다고 그것을 아는 것이 아니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앎이라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다.


대흥사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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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심진교, 운송교, 망화교


교종과 선종은 사찰에서도 차이가 있지만 사찰을 가기 전 다리에서부터 다르다. 대흥사에는 전에 아홉 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 조암교, 현무교, 니원교, 운송교, 흥류교, 망화교, 청홍교, 쌍옥교, 심진교의 아홉 개의 다리가 놓여 있었으나 지금은 소나무에 구름이 걸친 모습을 보여준다는 운송교, 다리 아래에 그물에 걸린 듯 매화꽃들이 걸쳤다는 망화교網花橋 와 대웅보전 앞에 흐르는 금당천의 심진교尋眞橋만이 남았다. 지금은 사시사철 푸른 동백과 소나무가 우거졌다 해서 붙여진 장춘동을 지나 장춘교가 처음 반긴다.


_DSC9360.JPG 대흥사 장춘교


교종 사찰을 가기 위해 건너는 다리는 많아봐야 두어 개 정도인데 선종 사찰은 다리가 많다. 수고롭게 다리를 여러 개 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다. 선승들은 다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물은 멈추고 사람이 흐르네"


사람들은 때로 물 흐르는 것을 감상하기 위해 다리 위에 서지만, 물의 입장으로 보자면 사람이 흐른다는 말이다. 사람은 늘 자신에게서 시선이 나간다. 들어오는 시선으로 사물을 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저 말없이 수만 년 흐른 물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이 말을 해석하는 무수한 말이 있겠지만 직접 다리에 서서 물을 바라보는 것으로 설명을 대신할까 한다.


_DSC9883.JPG 대흥사천大興寺川

천불전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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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천불전과 천불상

대흥사 천불전에는 천불상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경주의 흰 돌로 만들어진 불상인데 이곳 대흥사까지 오게 된 연유에 관한 설화다.


경주에서 해남으로 향하다 폭풍을 만나 일본의 어느 곳에 불상을 실은 배가 일본에 가게 되었다 한다. 일본 사람들은 하늘이 주신 불상이라며 자신들의 사찰에 모시려 했다. 바다에 빠진 것들을 제외하고 꺼내 보니 모두 789개의 불상이었는데, 일본인들은 불상을 자신들의 사찰로 모시려 했지만 꿈에 부처가 나타나 대흥사로 보내줄 것을 말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불상을 보내는 것이 아쉬워 불상 아래에 한 일一자와 날 일日자를 불상에 새겼고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았다 한다.


진불암과 대흥사


천불전 벽에 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한산과 습득을 그린 그림이다. 한산과 습득이 빗자루를 가리키며 웃고 있다. 이와 관련된 것이 진불암 설화다.


_DSC9923.JPG 한산과 습득도

두륜산 두륜봉 아래에 자리한 진불암에는 훗날 대흥사의 주지가 되는 각안 스님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_DSC9917.JPG 두륜봉 아래에 자리한 진불암


진불암에는 스님들이 참선하고 있었다. 어느 날 종이 장수가 종이를 팔려 절에 왔다. 스님들이 모두 법당에서 법문을 듣고 있어 종이 장수는 누구한테도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그냥 돌아갈 수도 없어 종이 장수는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맨 뒤쪽에 앉아 법문을 다 들은 종이 장수는 이해할 수는 없지만 거룩한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종이 장수의 마음에는 자신도 승려가 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법회가 끝나자 주지 조실 스님을 찾아 자신의 뜻을 전했다. 조실스님은 종이 장수를 자신의 방에 들어오게 한 다음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큰 발우 하나를 내게 주셨는데 자네가 오려고 그랬나 보오. 발우라는 것을 전한다는 것은 법맥을 잇게 한다는 뜻인데, 이제 자네에게 그것을 잇게 하려 하시는 것 같소. 부디 큰 도를 이루도록 하시게" 하면서 머리를 깎아 주었다.


최행자는 그날부터 물을 긷고 나무를 하는 등 후원 일을 거들면서 염불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그는 후원 일과는 달리 염불은 통 외우 지를 못했다. 외우고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또 외워도 그때뿐이었다. 함께 공부하던 스님들은 물론이고 사람들까지 그를 바보라 놀려댔다.


입산한 지 반년이 지났으나 그는 어느 경도 못 외웠고, 수계(승려 자격)도 못 받았다. 그는 자신의 우둔함을 탓하면서 그만 하산하기로 결심하고 조실 스님에게 인사드리려 찾아갔다. 저실 스님은 옛날 인도에서 부처님을 찾아가 수행하던 판타카형제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로했다.


판타카 형제 이야기


형과 함께 출가한 판타카는 부처님 법문을 들으면 기억하질 못했다. 듣고 또 들어도 기억하지 못하자 함께 공부하던 스님들로부터 바보라는 놀림을 받았다. 판타카는 울면서 부처님 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판타카야, 내 말을 기억하거나 외우는 일은 그렇게 소중한 일이 못된다. 오늘부터 너는 절 뜰을 말끔히 쓸고 대중 스님들이 탁발에서 돌아오면 발을 깨끗이 닦아 주거라. 이처럼 매일 쓸고 닦으면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니다"


판타카는 그날부터 정사의 뜰을 쓸고 스님들의 발을 씻어 주었다. 여러 해 지난 어느 날 아침, 판타카는 마당을 쓸던 빗자루를 땅바닥을 쓰는데 자신도 모르게 부처님의 말씀이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소리를 듣던 부처님은 북을 울려 사람들이 모이자 기쁨에 찬 목소리로


"판타카는 깨달았다. 판타카는 깨달았다."


조실 스님의 이야기를 다 들은 종이 장수는 판타카와 같은 수행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도 판타카와 같이 마당을 쓸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들 어쩌랴 하면서 하루하루를 무심한 마음으로 보냈다. 밖에서 설법을 그저 한 귀에 담았다 한 귀로 흘려보내는 그런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판타카와 마찬가지로 종이 장수의 입에서 불경을 흥얼거리는 것이었다. 큰 깨달음을 얻은 종이 장수는 수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훗날 대흥사 주지가 되었다는, 각안 스님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한산과 습득

_DSC9906.JPG 백련사 대웅전의 한산과 습득도

당나라 선사 풍간이 버려진 아이를 국청사에 데려다 키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습득이다. 습득이 국청사에서 밥 짓고, 스님들의 빨래와 마당을 쓸며 일을 했다. 절 근처 가난한 아이였던 한산이 찾아와 밥을 얻어먹곤 친한 친구가 되었다 한다. 둘은 절간의 허드렛일을 하며 법당 출입 없이 법문을 들었는데, 훗날 선사들에게 영감을 크게 미치는 시를 많이 지었다 해서 "시성詩聖"으로 추앙받는다.


하루는 습득이 마당을 쓸고 있는데 어느 승려가 다가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너를 데려다 키웠다 해서 습득이라 하는데, 네가 정녕 깨달은 보살이라면 너의 본 성씨는 무엇이냐?"


그러자 습득은 마당 쓸던 일을 멈추고 빗자루에 고개를 기댄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이것을 훗날 선승들은 차수이립이라 한다.


대흥사 천불전에서 습득의 차수이립이라는 일화를 벽화로 전하는데, 습득의 일화를 통해서 진불암 설화를 통해서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차수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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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은 승려의 물음에 그저 고개를 빗자루에 올려 놓음으로서 대답한다. 질문의 내용을 보면 승려가 뿌리인 부모의 성씨를 물어 본 것이다. 습득이 빗자루에 고개를 올려 답한 것이다. 빗자루는 가지였으나 머리를 올려 놓음으로서 뿌리가 된다. 습득의 머리는 이제 빗자루를 뿌리 삼은 머리를 올려 놓은 것이다. 가지는 뿌리에서 시작되지만 다시 뿌리가 되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 한다.


승려가 성씨를 물은 것은 예를 따라 성씨를 물려 받는 유교적인 과거의 사건을 물은 것이다. 습득은 빗자루에 머리를 올려 놓음으로서 과거가 아닌 미래의 사태로 답한 것이다. 선사상에서 빗자루는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화두로 사용되는데 습득은 이 빗자루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의 업과 마음을 치웠고 이제 나로서 우뚝 서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진불암설화와 대흥사의 한산습득도는, 과거 부처님의 설법도 중요하지만 현재와 미래에 적합한 화두를 찾아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각안의 가르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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