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
나는 이 단어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관심, 즉 인정을 받고자 하는 사람또한 관종이라면 관종이 맞겠지.
요근래 마의 3개월차가 되면서 깨닳은 게 있다. (간호사에게 신규생활 중 마의 3,6,9가 있다)
나는 인정에 목마른 사람이다. 여기서 가장 일을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이 병원 내에서 뿐만 아니라 어느 무리에 가던 그 중심에서 그런 인정을 받고 싶어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전 병원에서도 그저 상사에게 인정받고 싶었다는 생각만 있었지 그게 나를 그렇게까지 깎아먹을 줄 몰랐으니까. 그리고 나는 또다시 똑같은 실수를 하고 있었다.
직장이 바뀐거지 내가 바뀐건 아니었으니까.
나를 부풀리고, 무의식중에 다른 신규들의 실수를 깎아내렸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알량한 자존감을 채우기 위해서.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고자 사람들을 못마땅해 하며 내가 더 낫다는 무의식을 치켜세웠다. 그러다 보면 거짓 자존감이 나를 채웠다.
그러나 그건 밑빠진 독처럼 금새 비워지고, 나는 새로운 희생양을 찾았다. 그리고 그를 내 머릿속에서 물어뜯었다. 왜 저렇게 일하는 거야? 그렇게까지밖에 생각을 못하나?저래서 일은 어떻게 해?그렇게 한번의 의식이 끝나고 나면 결론은 똑같았다.
'그래, 저런 사람도 일하는 데 나라고 못하겠어?'
되돌아보면 그 의식이 끝난 후 내 스스로를 치켜세우며 그와 나를 비교했다. 더 나은 내 스스로에게 인정을 내렸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는 일한지 '3개월'째 된 여전한 신규이며 여전히 노력해서 일을 배워야 하는 입장이었다. 1인분을 하기에 한없이 모자란 사람이었다. 잘나봤자 잘난 신규가 되어서 뭐하겠는가?
나는 웃기게도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독립'이 또다시 밀린 것이다. 프리셉터(교육을 담당하는 간호사)가 바뀌었다. 그전에 나를 맡아주던 프리셉터는 2년차로 연차가 낮아 원래는 프리셉터를 할 직책이 아니었다. 사람이 없어 나를 맡았고, 그는 그대로 최선을 다해 나를 알려주었다. 나는 꼼꼼히 알려주는 그에게 아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연차가 내 독립을 결정한 수 있는 직책이 아니었다. 나는 또다시 프리셉터가 바뀌게 되었고, 7년차가 나의 프셉이 되었다. 7년차는 나에게 처음부터 말했다. 본인이 공부를 아주아주 많이 시키는 스타일이라는 것. 공부가 버거워 자신이 가르치던 신규가 그만둔적도 있으니 그만둘거면 미리 말하라는 것. 그러면서 나에게 독립을 본인은 천천히 시키는 스타일이라 했다. 나는 그저. 웃었다.
'독립'이라는 건 전 병원에서도 이 병원해서도 나에게 신성시 되는 것이었다. 이 병원에서까지 독립이 밀리면 내 마음은 얼마나 무너지질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독립을 미룰 것이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속이 콱 막혔던가.
나는 또다시 내 세상에 빠졌다.
나에게 부족한 것들, 저들의 시선, 실은 이들이 나를 부족하다 못해 모자를 것이라 생각할 것이라며 나를 후벼팠다. 나는 못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은 여태 쌓아놓은 마음의 장벽을 아주 쉽게 무너트리고 휩쓸었다.
나는 또다시 밑빠진 독이 되려고 했다.
전과는 그래도 아주 다른 상황이고, 어쩌면 공부를 더 할 시간이 늘었다는 운 좋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공부를 시켜주는 상사는 없으니까. 나는 또다시 돈을 받으며 열심히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전 병원과는 확실하게 다르다.
전 병원에서처럼 사람들 사이에 평판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환자파악도 못하는 멍청이 취급도 받지 않았고, 일도 못처내는 모지리 취급도 받지 않았다. 나말고도 신규가 많아서 나 정도 실수는 뭍히는 수준이었다. 하물며 독립을 했다해도 여전히 모르는 게 많은채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나는 일을 제대로 '알고'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배우는 것도 많을 거며 독립하면 선생님은 분명히 날라 다닐거라고 했다. 날라 다니지는 않아도 적어도 환자에게 피해를 주진 않을 것이었다.
어쨌든 환자를 혼자보다가 선생님이 빽을 봐주는 시스템이니, 환자를 혼자보는 건 똑같았다.
울면서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할머니는 나를 다독였다. 괜찮을 거라고, 그러니 울지 말라고. 처음에 힘들 수록 나중이 편해질 것이라고.
결국에 나는 내 생각의 문제였다. 내 자존심과 나에 대한 내 스스로의 인정. 결국 하던대로 하면 됐다. 하던대로 열심히 일하고, 하던대로 웃으며 직장동료들과 이야기하고. 선생님이 알려주시면 알려주신대로 열심히 공부하면 됐다.
괜찮다.
나는 도태되지 않았으며 뒤처지지도 않았다. 4개월 교육을 받던, 5개월 교육을 받던. 그게 그거고, 결국 전부 동등한 위치에서 일할테니까.
이런 잡생각을 할 시간에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런 생각들 끝에 운동을 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