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사내 정치의 맛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갑자기 내 주변 사람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적응에 급급해서 주위를 둘러보지 않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이야기란 건 참 쉽게도 귓가로 들어왔다.
일단 나는 말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뒷담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대학생때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건, 다른 사람이 내 이야기를 해도 된다는 허락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 이후로 남의 이야기를 꺼리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런 순간을 다 피하지는 못한다.
어쨌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다. 부서내에 한 명쯤은 있다는 '욕 먹을 만한 사람'이 나의 부서에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따로 잡은 회식 자리에서도, 일을 하다 생긴 중간의 짬에도 모두의 안주가 되었다. 그의 말들과 그의 나태, 일의 미숙한 완성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옆에서 보기에도 지적 받을 만한 일들이었다.
자신에게 배정된 환자를 두고는 밖에 나가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혈압이 떨어져 승압제를 단 환자에게 혈압강하제를 주고, 연차에 맞지 않은 언행과 행동들, 그런 와중에 절대 본인의 잘못을 수긍하지 않는 당당한 태도까지. 보수적인 이 집단에서 그는 물어뜯기 좋은 행동을 아주 많이도 했다.
실은 입사한지 2달정도 됬었나, 입사한지 한달된 그와 동기까지 셋이 만나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는 나와 동기에게 하소연을 했다. 선생님들이 자기를 싫어하는 게 너무 티가 난다는 것. 인계를 줄 때도 그렇다는 것. 말이 하소연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감정 쓰레기통 느낌이었다. 나와 동기는 그렇구나 하며 밥만 먹었다. 그러다 실수를 했다. 대화의 막판에 '조언'을 한 것이다. 첫째도 둘째도 유구무언이것만, 큰 실수였다.
지금 당장에도 수쌤부터 차지들을 말도 안듣는 그 대항마에게 당시에 입사한지 2달된 내가 조언을 했던 것이다. 실은 답답함을 참다참다 뱉은 것이지만.
윗년차 선배들이 큰 병원에 있던 자신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저를 내친다고 말했던 내용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정색을 하며 그에게 말했다. 열등감은 절대로, 절대 아니라고 말하며 그의 문제점을 짚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면 저렇게 자신을 방어하며 남을 이상하게 깎아내리는 건지. 나는 속이 터졌다.
'선생님이 전 병원에서 있던 연차는 물론 존중해야하는 거지만, 여기서 다시 시작하는 건 저랑 똑같잖아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존중 받고 싶으면 여기 있는 선생님들한테 일단 납작 업드리고 일만 열심히하면 다 해결될 문제에요. 그냥 일만 열심히 해요, 저희 여기 일하러 왔잖아요. 그럼 지금 나오는 말도 좀 지나면 다 들어가요'
그는 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동기는 내 눈치를 봤다. 강하게 말할 생각까진 없었는 데 그렇게 말해야 알아들을 것 같아서 말을 정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식사를 끝으로 이 사람이랑은 더 가까이 지내지 말아야겠다고, 그 순간에 생각했던 것 같다.
늦게 입사를 했어도 본인이 자신이 우리보다 연차가 높다는 것을 알자마자 말을 놓는 태도와 무슨 말을 하던 다 안다는 듯 알려주려는 말투가 그 말을 듣기 전부터 비호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어서 집에 갔으면, 하는 생각만 했다. 그는 그 뒤로도 하소연을 했고 나와 동기는 말 하기를 포기했다. 그 대화이후로 나는 카톡에서 친구추가를 해뒀던 그를 연락처에서 지웠다.
그러나 그는 그 대화 이후로 이상하게 나만 보면 어리광을 피웠다. 바쁜 내 옆에 와서 수다를 떨고, 뒤에 와서 앵겼다. 그 식사에 같이 있던 동기에겐 그러지 않았다. 무슨 심리인지도 모르겠지만 저보다 10살은 넘게 어린 나에게 이러는 것도 꼴값이라고 생각했다. (필터 없이 말하긴 좀 그렇지만 진짜 이 단어말고 쓸 표현이 없다)
나에게도 그는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나이만 먹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내 입장에서 이건 어마어마한 쌍욕이다)
그러다 곤란한 일이 생겼다.
그가 나와 '짱친'이라는 괴상한 소문이 난 것이다. 그 식사 자리에서 있던 동기가 기겁을 하며 나에게 말을 했다. 어이가 없었다. 그 인간이 나와 친하다고 선생님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닌 것이다. 아니, 나랑 친하다고 말돌아서 뭐가 좋은데?
던전에서 화가 나려다가 안났다. 선생님들은 내가 그와 친하다는 이야기를 소문마냥 하고, 그 인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저와 내가 술까지 마신 사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안마셨다) 블랙코미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 병원에서 일 존나 못하는 신규로 뒷땀까이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근무중 선생님들이 모여 이야기하다가 나를 불렀다. 대놓고 나에게 물었다. 그와 내가 친하냐는 물음이었다. 나는 속으로 머리를 짚었다. 그게 이렇게 불러 이야기할 그건가, 그냥 재밌는 거겠지. 뒷담깔 사람에게 생긴 에피소드가.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한번 밥 먹은 게 다고, 별로 안친하다고.
그 인간이나 이 사람들이나.
이런게 사내 정치일까.
그런 와중에 이들에게서 또 내 이야기가 나올까봐 순간 전전긍긍하는 내 자신이 느껴졌다. 자리를 피했다. 여기 사이에 껴서 얼마든지 그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자기한테 열등감 느껴서 욕하는 거래요, 쌤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일한대요, 라고. 얼마든지 들고 같이 까줄 분위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짧은 인생에서 안게 있다. 한번 발들이면 나올 수 없다는 것. 여기선 진짜 배울 건 배우고, 일만 하자. 다시 그 다짐을 굳히며 뒤에서 들리는 말들에 귀를 막았다.
그리고 교대할 다음 근무번들이 하나 둘 출근했다. 거기에는 그가 있었다.
당장 그에게 가서 도대체 왜 나랑 친하다고 말하고 다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갔다. 선생님들도 그에게 인사했고, 그도 선생님들에게 인사했다.
다음 근무번 인계를 준비하며 생각했다.
어쩌면 웃는 얼굴에 침뱉어도 그들과 잘지내는 게 사회생활인 건 아닐까
웃는 낱에 사람들이 침을 못 뱉는 다고? 아니, 뱉는다
그래도 계속 웃는 사람들이 승자인거구나.
새삼 사회생활이 참 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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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적응했다 싶으면 아주 그냥..
쨌든 그래도 잘 지내고는 있스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