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일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
'ㅅㅂ 나 *환타 맞나봐....'
* 환타 : 환자를 탄다...내가 담당만 되면 환자들 상태가 안좋아진다는 말이다...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내 환자의 혈압과 시끄럽게 울리는 EKG 모니터를 보고 그런 생각했다.
그렇게 한바탕 작은 전쟁을 치르고 주렁주렁 달려있는 수액들과 긴 밤이 지나서야 자고 있는 환자가 내 앞에 있었다. 내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던 차지쌤은 수고했다며 어깨를 토닥였다. 살짝 - 울컥했고 온몸이 두드려맞은 것마냥 힘들었다. 세번째 당직날이었다.
퇴근 후 들어누워 기절하듯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몸은 당시의 도파민을 기억하듯, 여전히 두근 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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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환타인건가..라는 생각을 요근래 들어하다가 부질 없는 생각이라는 걸 깨닳았다. 애초에 내가 일하는 곳은 중환자실이고 언제든 환자들 상태가 나빠질 수 있는 곳이니까. 어쩌면 내 묘한 자학심일지도 모르겠다. 더 바빴으면 좋겠고, 더 내가 궁지로 몰렸으면 좋겠어, 라는 이상한 무의식일지도.
얼마전 심정지가 왔던 환자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내가 이런 문장을 썼더라.
'삶과 죽음 사이라는 묘한 희열'
나는 그새 이 일에서 그런 잠깐의 희열을 느껴버린 것이다. 정신없이 몰려 오는 처방들과, 환자의 상태를 알리며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들, 뛰어다니는 것으로 부족한 응급처치들. 나는 그 아수라장에서 내 존재 의의를 찾은 것이다. 아무리 쪼렙이어도 그 상황에서 약물 건네는 손 하나가 급급하니까. 무엇보다 누구보다 빠르게 처방을 인지하고 뛰어가는 것은 기묘한 우월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래, 솔직히 재밌다. 이런 응급 상황이.
어쩌면 응급실이 더 적성에 맞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도 근래했다. 공부했던 것들을 빠르게 적용해내는 것도 재밌고. 나는 정말 신기하게도 그 응급상황에서 했던 것들 하나하나 뇌리에 박힌 듯 기억을 했다. 이때 이래서 뭘 했고, 뭘 했다. 되려 알지 못하면 그것에서 은근한 짜증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상황을 더 전문적으로,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해내고 싶다는 오기까지도 생겼다.
얼마전에 새로 깨닳은 사실이 또 하나 있는데, 나는 예상외로 '재미'에 움직이는 인간이었던 걸 잊고 있었다.
고등학생때도 내신이고 뭐고 재밌다 싶은 과목 하나에는 하루 종일 매달려 새벽도 샜다. 나에게 수학과 생명 과목이 그랬다. 그런데 재미없으면 망치지 않는 이상은 시간을 그렇게 많이 쓰지 않았다. 한자나 국어가 그랬다. 그냥 내가 이과생이어서 그런 줄 알았지. 하긴 수학은 3등급 한번 맞으면 그렇게 분해했는데 한자 8등급 맞은 거에는 호탕하게 웃고 넘어갔었지. 재미에 따라 중간이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 계획은 '수학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까' 였지, '어떻게 하면 더 내신이 높을까'가 아니었다.
근래 그걸 깨닳고, 내 직장 생활까지도 돌아보게 되었다.
인정해야겠다. 그저 '부서 안맞았던 건가'라는 고민에서부터 벗어나서.
나는 전 직장인 '조혈모세포이식실'이 재미없었다. 하긴 재미있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지. 여기서 한 3년은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괜찮은 것 같다', '버티다 보면 좋을 것 같다' 라고 써내리고 말하고 다녔던 거지. 일종의 방어 기전이었고 나도 나 자신을 속였다.
실은 그때의 공부는 의무였고,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었다. 매일 매일 나를 다독이며 긍정적인 마음만 가득 안고 갔다. 그러나 그건 내 답이 아니었다.
나는 '간호사'라는 직업이 안맞는 게 아니라, '내가 어디서 희열을 느끼는 지'에 따라 부서를 선택해야 했다. 나에게 재밌어야 했다.
내가 은근히 동물적 감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란 것에 1차 충격, 지금 이 힘든 상황과 일들에 재미를 느낀다는 것에 2차 충격이었다.
힘들어도 보람이 느껴졌다.
한 번의 시행착오 뒤 두번째 시도로 이런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나는 다시 한번 내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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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그래도 전보다 훨씬 낫다고 하면 친구들이 말해요
"그럼 그때보단 안힘들겠네"
약간 멈칫하다가 고개를 저어요
"아니. 힘든건 똑같애. 몸이 겁나 힘들어. 하루하루 20년 늙는듯"
친구가 뭐야 괜찮다며? 하고 어이없어 하더라구요ㅋㅋㅋ 제가 머쓱해하다가 이렇게 말하면 다 수긍합니다
"힘든 건 똑같은데, 뭐랄까 좀 재밌어"
부디 이번에는 잘 적응해서 혼자 1인분 할 수 있길 또다시 욕심을 부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