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 간 기둥들 4
나는 할아버지가 없다. 친가와 외가에 모두 할아버지가 없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모두 돌아가셨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이유는 모르고, 친가는 술을 먹고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하다가 술을 먹어 간질환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뭐가됐던 딱히 모두가 그들을 그리워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새벽에 자고있을 때 시끄러워서 깨면 머리 위로 밥솥이 날라 다니고 그랬어'
삼촌이 술에 취해 웃으며 말했다. 옆에서 작은 고모가 웃으며 동조했다. 나는 그 말에 웃지 못했다. 그 밥솥은 누구에게 던진 것이며, 조용히 텔레비젼을 보고 있는 할머니의 눈치가 보였다. 아마도 그건 할머니의 남편이 그녀를 향해 던진 것이었으리라. 친가 가족들이 말해주는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딱히 아름답지 않았다. 그를 추억하는 말은 일절 없으며, 단지 그로 인해 생겼던 일화들뿐이었다.
언제는 자기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던 아빠가 나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해줬던 말이있다.
'느그 할아버지는 저기 시골 구석까지 군내 버스타고 술먹으러 다니고 그랬어. 어렸을 때 할머니가 할아버지 데리러 오라고 군내버스타고 거기까지 갔지. 그런데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도 그냥 내버려두고 가버린거야. 그런데 나는 돈도 없었어. 형이랑 시골 아무도 없는데서 밤을 샜지'
할아버지는 옛날 바람직하지 않은 술꾼 가장이셨던 것 같다. 나는 아빠의 말을 듣고, 어린 눈에 보였을 새벽녘의 공허한 시골길을 상상했다. 무섭고 추웠으며 불안했을 것이다. 그 뒤로 아빠에게는 한 번도 할아버지에 대한 말을 들은 적은 없다. 대신에 아빠는 내가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온 날, 자신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또한 아빠는 일절 술자리에 가지 않았다. 아마도 할아버지와 연관이 있는 것만 같은 슬픈 예감이 들었다.
언제는 할머니가 나에게 크게 소리 지르듯이 말한 적이 있었다. 다 들리니까 화내면서 말하지 말라고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자기가 소리 지르는 지도 몰랐다고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곤 휴대폰으로 눈을 돌렸다. 잠깐의 정적이 지나고, 멍하니 옆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옛 이야기를 해주었다.
'버릇이여. 버릇. 니 할아버지가 맨날 술을 먹고 들어오니까 나도 맨날 소리를 질러댔지. 하도 소리를 질러대니까 지금까지도 계속 목소리가 큰거 같어'
할머니는 나와 집에 둘이 있을 때면, 자식들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손녀인 나에게 하나 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도 어딘가 이런 이야기를 말하며 풀고 다닐 사람은 아니었다. 할머니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내가 점차 가족에 대한 원망을 품고 독을 서려봤자 쓸모없다는 것을 알게 된 어느 순간부터 였던 것 같다. 할머니의 눈에도 그게 보였는지 내게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둘 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그냥 그런 말을 할 사람이 필요했던 걸지도.
'한번씩 머리가 찡하듯이 아퍼. 여기 정수리 위쪽 만져보면 움푹 들어가 있어. 머리가 아퍼'
내가 놀라 할머니의 머리를 걱정스레 쓰다듬었다. 정말로 그녀가 말했던 부분이 살짝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멍하니 텔레비전의 한부분을 보며 말한다.
'니 할아버지 죽기 몇 년전에 철 대를 들어서 여기를 때린 적이 있어. 그때는 그냥 아프다 말았지. 그게 지금은 시간 지나서 여기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몰라'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뻐끔거리기만 했다. 술에 취한 남자가 철 막대기를 제 아내에게 휘두르는 모습이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할아버지에 대한 과거가 가족들에게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대충은 짐작은 했다. 그런데 내 짐작의 이상이다. 아빠도, 다른 어른들도 그 모습을 목격한 자식들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끔찍했다.
'니 할아버지 술먹고 죽어서는 혼자서 농사 일해가지고 자식들 굶기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니 아빠가 소풍가는 날에 도시락도 없이 애들 밥 먹는 것만 보고 있는 것도 몰랐어. 아니 딴 애기들 거 같이 먹지는 왜 혼자서 그거 보고만 있었던 거야'
동생이 체험학습때 싸가야 할 도시락을 이야기했을 때 들었던 아빠의 말이었다. 도시락을 뭘 쌀지, 동생이 먹고 싶던 반찬을 이야기했는데 아빠가 밥을 먹다가 그냥 없이 가라고 했다. 동생과 나는 뭔 말을 또 그러고 하냐며 짜증을 내고 넘겼다. 그러자 그는 '나는 초등학교때 소풍가면 도시락도 없어서 애들 먹는 거 보기만 했어' 하며 할머니를 원망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헐. 나는 힐긋이며 할머니와 아빠의 눈치를 봤다. 괜찮던 분위기는 금새 가라앉았다. 아빠가 할머니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으로 아빠에게 자신의 엄마에 대한 서러움이 보였다.
그렇구나, 그들 사이에도 결핍이 있었다. 할머니는 농사를 지어 다섯 자식들을 최소한 먹여서 키워야 된다고 생각해서 자식들의 소풍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할머니가 왜 소풍이라고 말을 안했냐고 몇십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손주들 앞에서 자식에게 물어도, 아빠는 밥을 먹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나쁘긴 해도 최악은 아닌 나의 아빠에게 최악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그뒤로도 할머니는 한 번씩 옛날에 있던 일을 이야기해주곤 했다. 듣고 싶지 않았다. 알게될 수록 아빠가 불쌍해보였다. 아빠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아버지와 다르게 우리를 책임지려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었다. 앞 뒤없이 아빠를 원망하던 내가 어리숙하다는 생각이 점차 들기 시작했기에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더불어 할아버지가 가족을 때리던 인간말종이라는 추측이 점차 기정사실이 되어가는 것도.
나는 결국에 나중에는 아빠의 결핍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마음이 자랐기 때문이었다.
제대로된 보살핌과 애정을 받아본 적 없는, 숫기 없는 남자가 자식과 아내에게 반대로 할 수 있을까. 설령 있다해도 모든 인생이 반드시 성장 드라마는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변하지 않는 인생일지도 모른다.
아빠는 여전히 상처를 회피하고 있었다. 본인에게 결핍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빠는 화를 내고 고성을 질러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 보이는 사람이었다. 애칭으로 부르며 말없이 내 방을 수 없이 들락거리고, 못 이긴척 하고 싶다는 걸 하게 해주었다. 말로는 못해도 사과를 음식으로라도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는 옛날 사람이지만 동생과 나와 대화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다. 적어도 아빠는 우리를 사랑했다. 방식이 서툴렀을 뿐이었다.
그렇게 아빠가 회피하며 제 인생의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려는 것도,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를 회피하며 이겨내었던 과거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결핍을 알고 연고를 바르자 눈 앞에 있는 부모의 결핍이 보였다. 딱지와 벌어짐이 반복된, 진물이 늘러 붙어있는 결핍이었다.
앞 편에서 아빠가 보였던 모습들을 보면 '그것들을 어떻게 용서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시간이 지나서 용서가 해방이 될 때가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아빠를 미워하며 원망하는 시간이 감옥과 같았다. 비록 방임되어 최소한의 의식주만 제공받은 돌봄이었지만, 어쩌면 그도 나처럼 자라서 방법을 몰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전처럼 아빠를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단지 짠했다.
나는 마음이 편한 삶을 살고 싶다.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내 마음의 일부분이 되지 않길 바랬다. 더군다나 그게 내 평생 보고 살아야 할 부모가 된다면 내 마음이 언젠가 불구덩이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들의 과거 속, 아빠의 결핍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빠도 불쌍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