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지방률 50퍼의 다이어트 생존기 외전
다이어트 생존기를 뒤로, 그 뒤의 이야기는 어떨까? 또 다른 실패를 향한 도로가 될까. 아니면 다음 목표를 향한 디딤돌이 될까.
크게 바뀐 점 몇 가지를 말해보겠다.
1. 운동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직장을 다니면서 점차 여유가 생기면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2. 딱 봐도 칼로리 범벅에 당분이 미친 음식은 피하게 되었다. 너무 달면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되었다.
3. 음식을 보고 너무 많다, 싶으면 덜어낸다.
4. 무언가 먹고 싶어지면 충동적으로 어떻게든 먹기 위해 달려드는 게 아니라 효율을 생각한다. 지금 당장 먹는 게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지 고민한다.
5. 전보다 먹는 것을 즐긴다. 하루에 먹을 수 있는 량과 식사는 정해져 있기에 식사를 기다리게 되고, 전보다 먹는 게 행복해졌다.
6. 힘들면 왜 힘든지 생각하지 그걸 음식으로 풀지 않는다.
계속해 강조했지만 음식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과식을 하는 게 문제이고, 과식을 하고 있는 내 보상심리가 문제였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한다.
그런 사람에게 이제 다이어트도 했으니 잘 유지하려면 먹지 말라 하는 건 너무 고역 아닌가. 유지할 수 있는 선에서 '먹고 싶은' 걸 덜 먹는 게 나를 위한 다이어트 유지 방법이었다.
덜 먹지만 먹고 싶은 걸 먹으니, 일하면서 끝나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게 너무나 확실한 소확행이 되었다. 아무리 양이 적어도 치킨은 치킨이고, 라면은 라면이며 떡볶이는 떡볶이다. 양에 아쉬움이 있다한들 음식 자체에 아쉬움이 없다. 그 정도는 유지어터에게 감안해야 할 요소였다. 샐러드 먹으며 다이어트의 의미를 매일 밤 굶주린 배를 안으며 찾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작지만 소중한 음식이 나에겐 어떤 의미인지 내 머릿속 흐름을 나열해 보겠다. (조금 창피하지만...)
'스무디 먹고 싶네... 음. 스무디는 매일 먹고 싶지만 그건 과식에 당분 폭탄이니 안돼. 대신 일주일에 한 번은 가능. 이 소중한 걸 지금 먹기엔 아쉬운데. 그럼 언제 먹지? 아, 목요일에 일정이 많아 힘들 테니까 집에 가는 길에 테이크 아웃해야지. 그래그래 전에 지나가다 본 카페에서 사야겠다. 헉.... 그거 먹으면서 이번에 새로 나온 드라마 봐야지. 꺄! 나는 천재. 목요일에 빨리 끝내고 스무디 먹고 싶다ㅏㅏㅏㅏ. 와 드라마 보면서 스무디. 상상만 해도 엔도르핀 돈다. 빨리 목요일 왔으면...'
실제 내 머릿속이다. 오늘 소고기 구워 먹으면서도 이렇게 생각했다. ㅋㅋㅋㅋ 소고기 먹으면서 시그널 봤는데 크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요즘 시그널 정주행 중인데 역시 김혜수 존멋. 큼 쨌든 인생은 소확행이 모여 하루하루의 행복을 만든다고 했다. 다이어트 이후로 음식의 행복을 더 깨달았다. 그래서 많이 먹지 못하는 음식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 순간을 기다린다.
행복은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되돌아보면 일정이 많아 버거웠던 목요일은 스무디 하나로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스무디를 먹고 드라마를 보면서 마무리한 목요일은 열심히 산 하루에 더 완벽한 날이 되었다.
입안 가득 감자튀김 라지 두 개를 욱여넣어야만 행복해지던 그 행복은 잠깐의 보상심리에 불과했다. 음식이 행복이 되지 못한다. 충족은 시간이 지나면 나태가 되고, 충족된 음식은 나태한 나를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결핍과 어느 정도의 만족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단 일주일의 한 번뿐인 스무디가 내 원동력이 되어 하루를 기다리고, 하루를 만족스럽게 지나 보내줄 의미가 되었다.
다이어트를 유지한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음식을 좋아하는 내가 음식을 다른 의미로 바라보게 되는 것. 텅 빈 공허에 음식에 존재하는 찰나의 온기를 향해 끝없이 매달리는 게 아니라, 단지 음식을 기다리는 설렘이 음식이라는 것. 먹고 난 뒤 오늘도 잘했어라고 다독여주게 만드는 수단.
다음 날, 또다시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나의 작은 행복.
유지라는 건, 이 음식의 소확행을 잊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게 다이어트 생존기 이후 내가 깨달은 하나의 사실이다.
체지방률 50퍼의 다이어트 생존기, 외전을 끝으로 정말로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