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먹는 행위는 마음의 행위

by 이곤














7.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20대초반에 섭식장애를 겪은 여자의 솔직한 에세이.


내 다이어트의 멘탈 코치였던 책.




저자 : 정예헌




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때 박명수의 명언이 떠올랐다.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이다"


사회를 관통하는 말이 왠지 찡하다.


나는 '체지방률 50%의 다이어트 생존기'를 연재하면서 이 책의 여러 구절들을 인용했다. 그만큼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는 나에게 많은 통찰을 하게 해줬다. 울고 난뒤 선명해진 시야를 느끼게 해줬으며 그녀의 절벽 벼랑끝에 공감하고, 울먹이던 저녁은 잊을 수 없다


그만큼 이 책은 나에게 필요한 책이었다.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를 통해서 깨닳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건 이거다.



나에게 먹는 행위는, 마음의 행위라는 것.



좋아하는 음식은 마음에 위안을 준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이유가 없다. 또한 어린 내가 과하게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헤매지 않았을 것이며 입안에 갑자튀김을 한움큼 집어 넣지도 않았을 거고, 어차피 뱉을 음식을 맛이라도 볼지말지 고민도 하지 않았을 거다. 먹는다는 건 어쩌면 내 마음의 행위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에 확신을 가지게 된 책의 한 페이지.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42p.
먹은 것이 많아질수록 숨이 가빠오지만 나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아, 오늘도 중간에 멈출 수 없겠구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냄비에 물을 더 부었다. 엄마가 숨겨둔 라면 두 봉지를 한꺼번에 까서 끓였다. 라면까지 먹고 나서도 허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었다. 남은 밥이 없었다. 밥도, 반찬도, 라면도, 과자도 빵도 모두 해치우듯 먹어버린 탓에 남은 게 없었다. 정말 더 먹을 것이 없을까 하고 잠시 숨을 고르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반쯤 눈이 뒤집혀 먹을 것을 찾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엄마가 버리려고 비닐봉지에 묶어둔 곰팡이가 핀 빵과 상한 과일이었다.
안돼. 그러지마. 배고픈 게 문제가 아니야.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버리지마.
아무리 혼잣말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몸은 머리를 따라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나는 비닐봉지를 풀고 곰팡이가 핀 빵을 우걱우걱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모두가 자는 밤,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품격은 내팽겨쳐 버린 채 음식에 대한 갈망만이 남은 한마리의 아귀가 되었을 뿐이다.



작가는 어쩌다 곰팡이 핀 빵으로 입에 넣었을까.


이 책의 전후 상황을 읽지 않고 책의 위 페이지를 읽은 사람들은 이 물음에 당연히 작가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으니 그럴 거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의 눈에는 항상 '지금'이 이상해보인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많이 먹은게 이상하고, 내가 지금 이 순간 음식을 미친듯이 갈망한게 이상하다.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여기서 더 먹으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입안에 기억도 나지 않는 음식을 넣는 내가 이상하다. 그 순간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도 당신은 이상하다.


하지만 작가의 어린 시절을 차근차근 읽은 당신이라면.


작가의 지금이 아닌, 한 순간 한 순간을 밟아 곰팡이 핀 빵에 도달한 당신이라면.


'....그래. 이제야 이 사람의 마음이 사이렌을 보내고 있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먹는 것에 이상을 느낀다면, 마음에도 곰팡이가 피고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20살은 공무원 준비생이었다. 그녀의 젊은 시간은 부모님이 말하는 '경찰 공무원'이었다. 그녀는 20살에 노량진에 들어가 공시생을 시작했고, 끝이 보일 거라 생각한 6년을 공시생으로 보냈다.


20살에 공무원 스터디에서 만난 'K'에게 상습적인 가스라이팅과 성추행을 당했다. 부모는 자신의 자살시도를 알아주지 않았으나 K가 알아줬다는 사실에 그에게 마음을 열었고 마음을 연 대가는 가혹했다. 그녀는 K에게 입은 옷이 걸레 같다는 말을 들었으며, 장난인척하는 거센 발길질을 맞았다. 또한 털어놓은 가정사는 K의 입으로 고생하는 부모를 배신하는 자식이 되었다.



114p. 나는 맞을 만해서 맞는 사람이었다. 손톱을 뜯고, 돈을 허투루 쓰고, 내 친구들에게 그를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말하고 다니니까. 그의 체벌은 정당했다. 모자란 날 데리고 다녀주는 그에게 감사할 뿐이었다.



또한 6년의 공시생 생활에 그녀의 자유의지는 부족했다. 부모의 지속적인 6년간의 투자는 끝이 나지 않았다. 부모를 '엔젤투자자'라 말하며 자신을 '불성실한 채무자'라 칭했다. 그렇기에 작가는 아빠가 최후의 수단으로 집에 입주 과외 선생님을 데리고 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35p. 오전 7시부터 밤 9시. 화장실은 웬만하면 다섯 번 이하로. 식사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은 '대가'와 함께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 사생활이란 건 없었다. 최대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물을 마시는 양도, 화장실에 가는 횟수도 최소한으로 정해져 있었다.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실험의 실험용 쥐처럼.



그 시간 끝에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트루먼쇼와 같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느끼는 과한 개입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느낀 뒤로 다시 그녀에게 먹고 토하기의 굴레가 찾아온다. 그녀는 6번째 시험이 60일이 남은 시점에서 결국 입주과외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고시텔로 들어간다. 허나 고시텔에서의 시간은 더욱 지옥이 되기 시작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참을 수 없는 폭식 이후 구토, 그리고 체중계의 반복이 되었다. 음식에 지속적인 지출로 돈이 없어 고시텔의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졌고, 변기의 구토를 퍼서 다시 먹었다. 복용하는 식욕억제제 용량은 늘어갔다.


그 지옥에서 그녀는 혼자였다.



58p. 약이 떨어지면 나는 자존심을 굽히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의 대답은 매번 같았다.
의지로 이겨낼 수 없냐는 것이었다. 나는 돌아버릴 것 같은데, 아니 이미 돌아버린 것 같은데 의지의 문제로 치부하는 엄마의 대답에 나는 의지로 이겨낼 수 있었으면 약은 왜 먹고 전화는 왜 했겠냐며 폭발적으로 신경질을 부리곤 했다. 그러나 여간한 신경질에는 부모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읽으면서 명치께가 묵직했다. 왠지 숨이 쉬기 힘들어 읽는 내내 몇번을 숨을 마쉬었다 내쉬었는지 모르겠다. 읽다가 중간에 포기할까 몇번을 고민했다. 도저히 나아질 수 있는 것 같지 않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거.


이상한 걸 알아도 그녀처럼 곰팡이 빵을 입에 넣을 수도 있고, 변기의 토사물을 주워 먹을 수도 있다. 작가라고 몰라서 그렇게 했을까. 아니, 절대. 알았겠지. 그래서 그런 본인이 더 미웠을 것이고 더 질책했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다 읽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루에 20p. 30p. 10p. 조금씩조금씩 마지막 챕터를 향해 천천히 읽었다. 작가의 20대 삶은 꺾여 너덜거리고 있다. 그녀는 그 꺾인 마음을 어떻게 다시 세울까?


먹는 것을 향한 끝없는 갈망을 어떻게 채울까?

구토를 어떤 방법으로 멈출까?

부모의 과도한 삶의 개입과 필요할 땐 내밀어 주지 않는 손을 어떻게 해결할까?


뒤로 갈수록, 나는 작가가 이 책을 쓰고 펼치기 까지 어떤 과정으로 이겨냈는 지 점점 궁금해졌다. 상담을 받고, 어떤 기법으로 어떤 해법으로 인생을 바꿨을까.


하지만.



183p.
"예헌씨는 차로 비유하자면 6년 내내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잠깐 일반 도로로 빠져나왔는데, 아무것도 점검할 시간조차 가지지 않고 아우토반으로 뛰어든 거나 마찬가지 인거에요. 그건 사실 자기 학대에요. 사람도, 자차도 쉴 새 없이 달리기만 하면 고장이 날 수밖에 없어요. 다시 달리기 위해서는 점검하는 시간이 꼭 필요해요"
내 마음이 평안한 곳에는 부드러운 3월의 봄바람과 피어나는 꽃망울, 그리고 따뜻한 햇살이 있었다. 매출을 내라고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오는 카톡도, 출근 보고도, 청소 보고도 없었다. 부당한 노동착취를 하는 회사로부터 잠시 벗어나 걷는 것만으로 나는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왜 봄이 오는 것도 모른채 이 겨울을 지났을까. 무엇을 얻기 위해 햇살을 받으며 잠깐 걷는 것조차 어색해 질 지경으로 나를 몰아넣었을까. 내 마음대로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는 나를, 무엇 때문에 스스로 그리도 고통스럽게 만들었을까.


대단한 해법도, 기발한 치료 기법도 없었다.


그녀의 자존감 회복의 시작은 그저 날씨 좋은 날, 조용한 거리를 걷는 것이었다. K의 무자비한 가스라이팅으로 인한 자존감 괴멸도, 부모의 시험에 대한 과한 기대를 저버렸어도, 한 마리의 아귀가 되어 음식물 쓰레기를 입에 넣었어도, 가장 괴로운 순간에 혼자였어도.


그 모든 사랑스럽지 않던 과거들이 단지 날씨 좋은 날 걷는 것만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낀다.



찌잉 - 마음에 울린다.



꺾이고, 짓밟힌 건 무조건 다시 세우고 짓밟힌 자국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걷는 길은 꺾인 채로, 짓밟힌 채로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꺾인 나도 나이고, 짓밟힌 나도 나이다.


꺾여도 그냥 한 걸음 나아가는 것. 꺾여도 그냥 하는 것.



나는 체지방률 50% 일지라도, 좋은 날씨에 길을 걸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쉬운 사람이다.


먹는 것 뿐만 아니라, 그저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굳이 음식 수십개를 사서 입에 욱여 넣어야만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 아닌, 단지 길을 걷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 나를 다시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게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였다.














































이런 책을 때 '나는 이러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책이라는 건 생각하기 위한 수단이다. 책을 읽을 때 나는 '작가보다 나은 삶을 사는 구나'하는 안위를 얻는 게 아닌, 스스로를 '정신질환 위험군'으로 여기며 여린면과 마주한다면 더 얻는 게 많을 거라 생각한다. 정신질환은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오는 것이니까.


작가와 나에게는 먹는 행위가 마음의 행위 였다면, 당신에게는 무엇이 마음의 행위인지 고민하고 갔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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