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혼자 헬스장

시선의 문제

by 이곤









6.









20살, 처음 헬스장에 들어서자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귀에 울리고 곳곳에서 위험한 철소리가 경쾌히 들렸다. 남자들의 건전한 신음소리도 곳곳에서 들다. 그 공간의 모든 것을 파악한 나는 꿀꺽 - 마른 침을 삼켰다. 접혀진 등살의 느낌이 선명했고, 허벅지 사이 붙어있는 살이 끈적했다. 내가 초라했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나를 힐긋거리고, 속으로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예민한 감각이 곤두서 빠른 심박동을 최대한 무시했다.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을 지나쳤다.


20살의 나는 그 공간에 있는 것조차도 힘이 들었다.


눈치를 보며 운동 기구를 만지려 했으나 곳곳에 사람이 있었다. 어물쩡이다 그나마 만만한 런닝머신에 올라 탔고 START가 적힌 빨간 버튼을 눌렀다. 3.5로 속도를 맞췄다. 느린 걸음이 습관인 나에게 3.5의 속도도 힘들었다. 그때, 옆에 마른 젊은 여자가 올라왔다. 여자는 거리낌 없이 빨간 버튼을 누르고 속도를 계속해 올린다. 7.0에 맞춘 여자는 앞만 보고 뛰기 시작했다. 반면에 나는 느릿느릿 걷고 있었고, 저 마른 몸이 지금 나와 대조될거라는 생각에 계속해 여자를 힐긋였다.




헬스장에서 비만을 비웃는 건 취업 박람회에 있는 노숙자를 비웃는 것과 같다.




젊은 여자는 3.5 속도에도 걷는게 힘든 나를 아마 비웃고 있지 않을까, 하며 계속해 눈치를 봤다. 10분도 못되는 시간은 결국 내가 먼저 내려왔다. 졌다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들었다. (누구에게?) 어쨌든 나는 다시 운동 기구들 쪽으로 어물쩡 거리다 포기했다. 여전히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냥 1시간 뒤에 있는 피트니스 수업을 기다리기로 한다.


휴게실에 앉아 휴대폰을 하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힐긋인다. 본인보다 운동해야 하는 내가 휴게실에 앉아있으니 우습지 않을까 하며 눈치를 봤다. 어서 빨리 수업을 받고 집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첫 요가 수업에 들어섰다. 아, 그냥 집에 갈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전 헬스장보다 좁은 공간에 마르고 몸 좋은 여자들이 밀집해있다. 더 비교되었다. 그들 모두 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요가 선생님의 몸도 너무 좋았다. 더욱 위축되어 이곳저곳을 흘긋거렸다.


요가는 몸을 접는 운동이었다. 피트니스실의 거울 벽면으로 사람들 사이 내가 보였다. 접은 몸에 옷 위로 접힌 살이 보이는 건 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기본적인 근육도 없어 스트레칭 중 버티는 팔까지 너무 아팠다. 제대로된 자세도 못해서 이들 사이에서 내가 더욱 톡 튀는 것 같았다


어제까지 이 완벽한 사람들과 수업을 했을 요가 선생님이 나를 수업의 방해자라고 여길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걸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이 끝없이 몰려왔다. 그냥 자리를 박차고 집에 가버리고 싶었다. 첫날부터 포기하고 싶었다.


요가가 끝나고 몸도 아팠지만 정신적으로도 피곤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탈의실로 향했다. 헬스장의 첫날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무겁게 그 공간에 들어섰다. 살을 빼려면 운동을 해야한다는 강박 하나가 나를 붙들어 맸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무력한 몸을 이끌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어서 빨리 이 고통스러운 행위들을 끝내려면 빨리 살을 빼야했으니까.


매순간 헬스장의 문을 여는 것도 용기였다. 언제부턴가 운동은 참아야만 하는 거고 견뎌야만 하는 거라는 생각이 확고 해졌다. 어린 나는 문턱을 넘어서야만 했다. 력감에 어깨가 짓눌렸다. 러나 이 기분을 참고 참으며 이겨냈다.


내 다이어트의 역사는 그 기분과 싸워 이겨낸 어리숙한 승리가 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패배였다.















비만 혼자 (마음 편하게) 헬스장 가기.


나는 어떻게 해야만 그 문턱을 수 십 번, 수 백번 가볍게 넘나들 수 있을까?초에 나는 뭐가 문제였을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의 마음에 기대하는 망상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나는 계속해 눈치를 봤다. 뚱뚱한 내 자신이 사람들의 눈에 비춰지는 모습이 어떨지 상상하며.


타인의 마음을 해석하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망상이다. 그리고 그 망상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누군가의 속내를 확신하며, 내가 만들어낸 누군가의 못난 마음을 미워하고, 미워하다 보면 결국 불행만 남는다. (그리고 이걸 자각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큰 불행이다)


헬스장에 들어섰던 수많은 과거들이 아마 그런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얇은 헬스장 공용 티셔츠 뒤로 접힌 살이 보일까 봐 남자용 티셔츠를 입었고, 러닝머신에서 뛸까 싶다가도 내 가랑이 사이로 끼이는 반바지에 러닝머신 속도를 줄였다. 접힌 살과 가랑이 살 사이에 파묻힌 바지를 보고 누군가 비웃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둘셋 모여 이야기하는 곳에서 멀찍이 돌아 나갔고, 사람이 너무 많을 때면 휴게실에 한두 시간 죽치고 앉아있다가 한산해진 헬스장에 들어서기도 했다. 몸이 좋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내 망상이었다면?


가까운 타인의 속도 몰라서 아등바등하는데, 생판 모르는 이들의 속을 확신하며 움츠려 들었던 모든 일들이 망상이었다면? 저 사람들은 나를 '뚱뚱하다'라고 생각하겠지, 하며 확신하는 것조차도 타인을 해석하는 거였다면. 못난 사람들에 받은 어린 상처들이 자라나 나를 못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면.



난 정말 헛된 곳에 에너지를 쏟은 거구나, 런 생각을 하며 책의 문장을 한참을 들여다봤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224p.


허한 느낌이 가슴으로 바람을 들이 밀었다.


헬스장이 왜 그렇게까지 버텨야만 하고, 힘든 걸 참아야만 하는 곳으로 인식되었는지 알았다. 나의 문제였다. 난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이었다. 난 당당하지도, 자신감 넘치는 사람도 아니었다. 멋지게 내 할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태 내가 멋진 사람이라 생각하던 어린 나는 나에 대한 망상에 빠져있다. 나는 완벽하지 않았다.


살이 쪘으니 등살이 접히고 가랑이 사이로 바지가 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허나 완벽한 나는 등살이 접히지 않고, 바지가 끼지 않을 것이다. 결국 완벽한 나라는 건,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의 나였다. 누군가의 시선에 등살이 접히지 않고, 바지가 끼지 않는 내가 완벽한 나였다. 여태까지 그렇게 되지 못해 괴로웠다.


미디어속 여자 몸이 정상이라는 무의식과 심한 말들에 받은 상처가 그 괴로움에 더 커지고 벌어지며 노란 진물을 흘렸다. 모든 요인들이 하나하나 모여 헬스장을 향하는 내 어깨위로 무력감이 되었다.



허나 나의 망상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완벽한 내가 되길 바랄 거란 망상. (단지 몇몇 소수가 내 앞에서 개소리를 한거다) 내가 이렇게 된 요인들에 원망하고 미워하기보다 성찰했다. 그 성찰 끝에 결국 시선이라는 건, 내가 만들어낸 망상이었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허한 공기 뒤로, 해방감이 찾아왔다.



진지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 옆페이지 쇼펜하우어의 얼굴이 왠지 웃겼다.



성찰은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내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24살, PT를 끝내고 2개월간 10kg의 감량에 성공하며 혼자 운동하기 위해 다시 그 헬스장을 찾았다. 헬스장의 문턱은 가볍진 않았다. 여태까지와 다른 다이어트였으나 요요가 올까 봐 무서웠다. 요요가 오지 않기 위해선 이 공간을 꼭 이용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물론 처음 헬스장에 들어섰을 때와는 다르게 내 의식은 다른 곳에 있었다. 뚱뚱한 내 자신이 아니라, 노력해야만 하는 내 자신에 있었다. 사람들이 아닌 헬스 기구가 먼저 눈에 들어 왔다.



'상체, 하체 기구 내가 쓰는 거 다 있네. 잠만 스쿼트 없는데? 아 저기 있네. 중량은 내가 가져다가 올려야 하구나. 그전 헬스장보다 번거롭네. 뭐, 무게만 칠 수 있으면 되니까. 익숙해지겠지'



여전히 체지방 43%의 비만인데, 헬창처럼 생각하는 내가 왠지 웃겼다. 그래도 괜찮았다. 부지런한 저들 사이에서 부지런히 움직일 내가 멋있다는 마음도 조금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헬스장에 있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게 바뀌었다. '나를 뚱뚱하다 생각하고 있을 사람들'이 아니라 '부지런하게 운동하는 사람들'로.





비만 혼자 헬스장? 상관없다.


헬스장에 도착한 나는 그저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중 하나일 뿐이니까.



'자기에게 맞춰서 3kg, 4kg 드는 게 운동인거지, 50kg 아령들고 뛰고 3시간 4시간 여기 죽치고 있는 건 그냥 노동이에요. 이곤씨'



저들처럼 나도 나에 맞춰서.


가벼운 걸음으로 20kg 아령 사이에 5kg 아령을 집어 들었다.





































20살때는 PT가 너무 비싸서 끊으려는 엄두도 못냈었고, 운동 지식이 부족했기에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흑흑.... 그래서 그렇게까지 무식하게 운동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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