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3주간 출퇴근하며 느낀건 여전히 미래는 불확실하다는 것. 분명히 취업을 했고, 매달마다 월급이 나올 것이며, 남들보다는 안정적인 발판이 있음에도.
언제든 이 선을 끊을 가위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내가 여전히 일에 익숙해지지 않은 쌩신규라서 그런 것일까 싶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지금 있는 직장에서 오를 계단은 수없이 많고, 모두가 그 계단을 오를 수는 없다. 각자의 지위에 만족해서든, 아니면 강제로든, 머물러 있기도 하다. 누군가는 결국 불만은 가지고 이 계단을 벗어나 다른 계단으로 향하기도 했다. 틀렸다고 할 수 없지만, 정답이라고도 할 수 없다.
결국 나 하나 책임지기 위해 차근차근 이 생태계를 이해하게 되는 건 제법 버겁고 힘든 일이구나 싶었다. 삼교대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뒤죽박죽인 수면습관의 고충을 느끼고, 인간관계 사이에 있는 잡음을 들으며, 때로는 성취감과 때로는 자책감에 젖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든 내 에너지는 한정적이었다. 내 에너지가 한정적인데, 직장에 있는 타인들을 향해 다 흘러가게 두면 결국 내게 쓰일 에너지는 텅비어 버릴 것이다. 그렇게되면 직장에서 에너지를 전부 쓴 나는 집에 돌아와 힘이 없어 씻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빨래를 하는 것도 전부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과거 번아웃이 심하게 왔을 때 뼈저리게 알게되었다. 우울증의 경계선에 넘나들며 위태로운 나날이 하루하루 지속될 것이다.
일단 내가 적응하는 게 중요했다. 내가 중요했다. 타인의 말들에서 필요한 것만 골라 듣고, 내 에너지와 감정을 갉아 먹을 만한 것은 흘러가게 둘 것. 체지방률 50%의 다이어트 생존기에 인용했던 '내가 생각하는 타인의 마음은 망상이다' 이 말을 두고두고 되새기고 있다. 내 신규 생활 동안의 신념이며 직장에서도 상대방의 감정의 예상하는 나를 깨닫고 고개를 저으며 이 글귀를 속으로 중얼였다.
이는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고, 흔들린다 해도 나는 똑같이 다시 바로 세우고 승화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되기도 했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건 과거가 되고, 이는 성찰을 하게 되는 일이 될 것이다.
더불어 내가 어떻게 힘들게 적응할지, 어떤 실수를 하고 사고를 치게 될 것이며 환자와 다른 사수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지 상상을 하게 되었다. 그게 내 직장 생활의 불확실함이 되었다. 단단해보이는 신념들이 언제든 직장에서 일어날 일들에 깨질 수 있다는 불확실함.
하지만 이 불확실함은 지금 당장의 내가 해결할 수 없다고 느껴졌다. 단지 이 불확실함을 파고들 수록, 직장에 있는 내 자신의 미래에 파고 들수록, 이 순간 불안함에 헤엄치게 된다는 것만은 알수 있었다.
입사하기 전에 읽었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의 구절이 떠올랐다. 삼촌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인간계에 내려가 인간을 불행으로 이끌고 있는 조카 악마 웜우드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42p.
*환자 : 악마가 불행으로 이끄는 인간을 칭하는 호칭
*원수 : 악마가 하나님을 칭하는 호칭
*환자의 나이로 보나 직업으로 보나 징집당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확실치는 않다는 소식, 반갑게 들었다. 우리야 환자의 앞날이 불확실할수록 좋지. 서로 충돌하는 미래의 모습들이 마음을 온통 채운 채 희망이나 두려움을 번갈아가며 불러 일으킬 테니까. *원수가 인간의 마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바리케이드를 치기에 불안과 걱정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원수는 인간들이 현재 하는 일에 신경 바라지만, 우리 임무는 장차 일어날 일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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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네 임무는 환자가 현재의 두려움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라는 생각을 절대 못 하게 하는 한편, 오로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는 미래의 일들에만 줄창 매달려 있도록 조처하는 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그 일들이야말로 제 십자가라고 믿게 맏들거라. 그렇게 서로 어긋나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날 리 만무하다는 사실은 환자의 뇌리에 싹 지워 버리고, 다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에만 미리 마음을 굳게 다지며 인내심을 발휘하려고 애쓰게 하거라.
이는 현재의 두려움이 아닌, 미래의 불확실함에 매달릴 수록 나는 불행해진다는 말이었다. 악마의 속삭임은 현재의 두려움을 해결함에 있는 게 아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걱정하느라 현재에서 멀어지는 데에 있다는 말이었다.
책을 뒤적이고 이 구절을 다시 읽어보며 왠지 머리가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편한게 중요하다. 내가 '지금' 당장을 편안하게 느끼며 불행하지 않은 게 중요하다. 그렇다는 건 지금 당장의 두려움에 직면하는 게 아니라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일일이 나열해 상상하고 상처받는 것은 정말 의미없는 일들이었다. 그저 내가 내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들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번 했다.
그래, 아무리 노력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어.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야. 그때의 일은 그때의 나에게 맡기고, 나를 믿자.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할 건 뭐지? 공부지. 당장 모르는 걸 정리하고, 최대한 적용할 때 써먹을 수 있도록 실수없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이 마음을 덜어내는 것.
그래, 때로는 두려움도 직면하지 않고 피해도 된다고 했잖아. 이 두려움은 피해도 돼. 내가 직면할 건 부족한 지식이야.
여전히 3주밖에 되지 않은, 신규 생활에 대한 이 불확실함은 직장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언젠가 일어날 내 실수들과 미래의 나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에 오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내가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될거야. 그때의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맏기자. 지금 내가 할 건, 부족한 지식을 채우고 공부하는 거야. 충분히 잘하고 있어. 내가 알잖아. 내가 노력하고 있고,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거. 내 스스로가 아는 게 제일 중요해.
주변에서 너 지금 잘했다고,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다 해도 내가 늘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면 다 쓸모 없어. 대신에 아무리 주변에서 깎아 내려도 내가 처음과 비교할때 늘었다는 걸 알면 죽이던 밥이던 되잖아.
그래, 다른 사람이 하는 말과 나를 비교하지 말고, 내 처음과 나를 비교하자.
할 수 있어.
늘 그렇듯이 하던대로.
나를 다독였다.
이 나날이 계속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어떤 일이 생기던 스스로를 다독이면 다시 일어나는 내가 될 수 있길.
오늘도 수고했고 쉴땐 푹쉬고 일할 땐 최선을 다하자.
나 자신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