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탐구할 수록 나만 힘들어진다
같은 날 입사한 동기의 자취방에 놀러갔다. 그는 입사 한달만에 수쌤에게 퇴사하겠다고 문자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사직서를 내러간다고 했다. 듣는 나는 놀람과 함께 약간의 진빠짐, 어이없음, 웃김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맞이했다. 처음으로 잡은 나와의 약속이 송년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제대로 이야기한 것도 처음이었는데 그의 마지막 근무날, 자취방에서 내가 함께하게 된 것이다. 하하... 다시 생각해도 웃긴 상황이었다.
그가 그만두는 이유는 말해줄 수 없지만, 적어도 본인의 의지문제는 아니었다. 그래도 병원에 불만족스러웠던 게 많았던 모양이었다. 나에게 본인이 처음 입사할때부터 지금까지 뭐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하나씩 찝어서 말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허허 웃으며 그럴 수 있겠다고 대답했다. 그 대화의 굴레 끝에 내 대답에 그가 깨닳은 것처럼 말했다.
'아...다르네. 너랑 나랑 아예 다르네'
'? 뭐가? 아. 너랑 내 상황이 다르다고?'
'아니. 생각하는 게 다르다고'
그런가? 나는 그냥 허허 사람좋게 웃었다. 그가 말하는 모든 불만족 끝에 내 대답은 이거였다.
그냥 하는 거야.
직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건 긍정적이고 부정적이고를 떠나서 불만족이어도 결과적으로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사회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상황에 나를 맞추게 되는 것. 그리고 점차 내 스타일을 만들면서 상황이 나에게 맞춰 굴러가게 하는 것. 어쩌면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디 뭐 그런 명언이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의 이유를 찾아라? 하는 일에서 모두 본인만의 이유를 가져라? 뭐 그런 비스무리한게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좀 더 나이를 먹어보니 모든 일에서 이유를 찾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고, 거기에 호불호를 부여하게 되면 나는 어느 순간 신경이 곤두서있게 되었다. 그래서 왠만해서 중요한 일이 아니면 사소한 건 넘어가자, 라는 주의다.
그가 불만족으로 말하는 모든 건 진짜 솔직하게 말해서 사소했다. 입사하고 뒤늦게 신규교육을 시켜주는 것도 불만족스럽고, 상사가 힘이 없어 불만족스럽고, 병원의 연봉도 만족스럽지 않고, 병원의 규모가 만족스럽지 않고, 사수들에게 사명감이 없어 보여 만족스럽지 않다고 했다. 난 수긍했다. 딱히 맞다고 할 말도, 틀렸다고 할 말도 없었다. 이 사람에겐 이 대화가 첫 직장과의 이별일 수도 있으니까.
'내가 보기엔 너 그냥 정이 털린거야. 정이 털려서 그렇게 느끼는 거지'
'아니야! 몰라. 마음에 안들어'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 날인데 뭐. 나한테 털어내고 그만두면 돼'
'응... 넌 끝까지 버텨야해...'
나에게 버티라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불만족이 여전히 끼어있었다. 솔직히 이때 조금 짜증났다. 쨌든 본인이 선택해서 이 곳에 왔으면서 뭐 그렇게 싫은 게 많은 건지. 그러다가 그러려니했다. 생각하는 건 다르니까. 그리고 우린 '버틴다' 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버티는 게 뭐 있어. 아까도 말했지만 그냥 하는 거야'
'...진짜? 나는 매일매일이 버티는 하루였는데'
'버틴다 생각하면 뭔가 무게가 짓누르는 느낌이고 곧 쓰러질 것잖아. 근데 그냥 하는 건, 걍 하는 거란 느낌이라서 뭔가 덜 힘들어'
내 말에 아...하며 그가 말했다.
'어쩐지. 그럼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규들도 그래서 나보단 덜 힘들어 보이는 건가. 걔네도 그냥 하는 건가...'
그 말을 듣고 일부러 다른 대화 주제로 바꿨다. 남과 본인을 비교해봤자 쓸데 없으니까.
그와 처음이자 마지막(일수도 아닐수도)인 약속에서 헤어지고 기숙사로 향했다. 어둑어둑한 거리를 걸으며 아빠, 엄마와 10분정도 통화를 하고 멍하니 허공을 보며 걸었다.
그러고보니 나도 맨날 뭐가 좋고, 나쁜지 생각했던 거 같은데. 이번에 병원 들어오면서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 없네. 아니 애초에 그렇게 생각한지가 오래된 것 같아.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뭐랄까 아무 생각 없어서 좀 그런 것 같다가도 이게 마음 편해. 그럼 된거지. 이건 깊게 생각하지 말자.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알고 느끼고 파악하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모든 사소한 것들에 이유를 붙이고 호불호를 느끼는 순간. 동기가 병원에 대해 이야기하며 찡그린 표정이었던 것처럼 내 표정도 그렇게 될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적어도 나는 내가 선택한 직장을 이야기하며 찡그린 표정이 되고 싶진 않았다.
입사한지 1달차인 신규 간호사...병원 적응... 아직까진 잘하고 있습니다...
흑흑..
쬐금(?)...아니 아주 아주 쬐금보다 더 많게...힘들지만...ㅎ
모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