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도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관계가 있다. 직장 동료이든, 친척이든. 1편에서 말한 가지치기가 어려운 상태에서는 경계선을 설정한다.
예전 직장에서 나의 상사와 동료가 친구 사이인 적이 있었다. 상사가 본인의 친구를 데려다 꽂아준 셈이었고 그들은 나와 10살 정도 차이가 났다. 나와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해서인지 동료가 나에게 상사처럼 굴기 시작했다. 반말 같은 존댓말을 하거나 어렵다고 생각되는 일을 은근히 떠맡기려는 태도를 보였다. 물론 나는 받아주지 않았다.
어느 날은 상사가 나에게 동료가 나이가 많으니 그녀가 해야 하는 영수증 처리를 좀 해주라며 웃었다. '제가요?'라고 얘기하고 '내가 왜?'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해주지 않았다.
나도 영수증 처리를 할 것이 있었기에 같이 해주면 됐었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경계선을 설정한 것이다. 한번 해주면 반복이 되고 더한 요구가 계속될 것을 알았다. 상사 앞에서 동료에게 가서 '영수증 처리 이렇게 하시면 되는 거 아시죠?' 하며 알려주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들은 100%의 확률로 뒤에서 나를 욕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들은 만나면 같이 일하는 다른 사람들 욕을 하기 바빴고, 내가 그렇게 하나 그렇게 하지 않으나 어차피 욕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무의식 중에 알았을 것이다. 내가 욕먹을 짓을 했다기보다 그들 자신이 문제였다는 것을.
그 상사는 부당한 일을 자주 시키는 편이었는데, 상사가 시키는 것이니 그냥 따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나는 예의를 갖춰, 내 생각을 전했다. 상사는 나에게 그런 소리를 듣기 싫었는지 그 뒤로 한 번도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시킨 적이 없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게 되어 3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었고, 잘 다니고 있을 때 그 상사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어디서 일하냐고, 같이 일할 생각 없냐고.' 경계선을 설정하며 나를 지키면서도, 적당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경계선을 설정하라고 하면, 흑백논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저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면 혹은 저 사람에게 내가 기분 나빴던 것을 그대로 이야기하면, 사이가 틀어질 거야.'라고. 하지만 예의를 갖춰서 정중히 맞는 말을 하는데 거기에 화를 내고, 관계를 단절하는 사람은 사실 소수이다. 웬만한 사람들은 받아들인다. 또 한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는데 침 못 뱉는다.
친척, 시댁, 친정 등 무례한 어른들을 만났을 때도 동일하게 적용이 가능하다. 적절한 경계선 설정은 인간관계 스트레스에서부터 자유하도록 도와준다. 이제 곧 추석이다. 듣기 싫은 질문들을 피해서 친척들을 만나러 가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물론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현명할 때도 있지만 그저 '회피'만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나의 소리를 내며, 경계선을 설정하는 연습은 꼭 필요하다. 안다. 처음엔 어렵다. 나도 못했었다. 하지만 해보면 는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걱정되어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하고만 있었다면, 이번 에는 나의 소리를 내보길 권유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눕는다고, 무례하게 굴어도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만 무례하게 구는 것이 사람의 특징이다. 우리가 그들이 '누울 자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