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뜸인 것. 또는 으뜸이 될 만한 것.
당신은 '최고'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언제 들었는지 기억이 나는가.
나는 최근 우리 아들에게 최고라는 말을 듣는 것을 제외하면, 언제 마지막으로 최고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는 뭐든 잘한다. 최고다. 소리를 하곤 하니 아마 그때가 마지막이 아닐까?
나는 그 뒤로 최고였던 적이 없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분야에서 최고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하는 것이 없었다. 그냥 다 고만고만하게 했다.
그러니 '최고'라는 단어는 나와는 아주 먼 단어였다.
"엄마 잘하네. 엄마 최고!"
블록 쌓기 놀이를 하고 있다가 아들이 잘 안 되는 부분에서 도와달라고 하길래 도와주고 난 직후였다.
아들은 엄지손가락으로 따봉을 하며 연신 나를 칭찬해주고 있었다.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최고? 내가 최고라고?'
우리는 최고라고 인정받기 어려운 사회에 살고 있다. 작은 성취는 성취라 취급되지 않고(어쩌면 스스로 인정해주지 않고) 큰 성취만을 좇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많다.
나 또한 그랬고.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일까.
별 것도 아닌 일에 '잘하네. 최고야.'라고 얘기해 주는 어린 아들의 말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했나 보다.
사실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둘째를 가지며 하고 있던 임상 수련을 끝마치지 못하고 1학기 종료와 동시에 쉬어가야 했고, 첫째 때보다 몸이 점점 힘들어서 가만히 누워서 쉬는 시간이 길어졌었다.
침대에 누워서 소위 킬링타임용 숏츠나 릴스를 보며 시간을 때우면서 자괴감만 커졌었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싫어서 킬링타임용 영상을 선택하고, 그걸 보고 나면 다시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힘들고.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다들 달려 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멈춰있다 보니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절로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엄마가 우주인 나의 아들에게는 최고의 엄마구나. 그리고 꼭 으뜸이 되지 않아도 최고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누워서도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좀 더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조급함은 일을 더 그르치게 만든다.
둘째를 품고 있는, 출산을 4개월 앞둔 이 시기를 조금은 천천히 미래를 준비해 가는 시간으로 삼으려 한다.
블록놀이 이후로도 아들은 최고란 이야기를 아주 여러 번 한다. 나는 그 말이 참 듣기 좋다.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해주기로 했다. 요즘은 작은 성취에도 스스로 '잘했어. 최고야.'라고 이야기해 주곤 한다.
꼭 한 분야에서 1위가 되어야만 최고가 되는 것일까.
큰 성취만 성취일까.
그럼 언제쯤 성취를 하고, 언제쯤 최고란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살면서 한 번 가능하기나 할까?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낸 것도 성취이고, 최고란 소리를 듣기 충분하지 않을까?
해피뉴이어를 외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의 마지막 날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나는 마음을 담아 이야기해 주고 싶다.
1월 한 달도 잘 살아낸 당신은 최고라고.
따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