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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유 Mar 09. 2022

[후기]어제의 다수가 오늘의 소수가 될 수 있음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며칠 전 책방 모임에서 각자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 네 명 중 첫 번째로 책방 점장님이 방송인 타일러가 쓴 ‘두 번째 지구는 없다’라는 책을 읽고 소개해주셨다. 이 책은 기후 ‘변화’가 아닌 ‘위기’라는 경각심을 주는 내용으로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저자는 고기를 조금 덜 먹기, 채식 식단을 늘리기, 음식을 남기지 않기 등의 실천을 제안한다고 했다. 점장님도 대량의 육우 사육이 지구온난화를 촉진시키고 지구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옆자리에서 ‘동물 안의 사람’이라는 동물복지 관련 책을 읽으신 분이 화제를 이었다. 그분은 몇 년 전부터 채식을 시작하였고, 가족이나 지인뿐 아니라 최근에는 직장 동료들에게까지 이 사실을 알리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고 말을 받았다. 자신이 채식주의를 하게 된 이유는 대량 축산과 동물 학대 등의 문제의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두 사람도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며 크게 공감했다. 나는 동물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동물 권리 보호를 주장하는 입장도 아니기에 가만히 듣기만 했다. 사실 나는 평소 그런 문제를 고민해보지 않았었고, 무엇보다 고기를 즐겨 먹는다. 따라서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오른편에 앉은 여자분은 본인도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서 채식을 고려해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어제 집에서 맛있게 구워 먹은 삼겹살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의 냉장고 속의 우유, 달걀, 치즈 같은 유제품과 고깃덩어리도 생각났다. 가끔 주변에 채식하는 이들을 보긴 했지만 극소수였고, 그들의 불편 또한 그들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치부했었다. 때론 단체생활에 피해를 준다고 여기기도 했던 것 같다. 책 모임에 참석했던 네 명 중 세 명은 동물 보호와 권리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표출하며 채식주의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나는 모임 안에서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다. 갑자기 외롭고 불편해졌다. 마치 내가 생각 없이 육식을 즐기고 환경 문제에도 무심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평소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챙기고, 텀블러를 이용하려고 애써왔기에 나름 선량하고 지각 있는 시민이라고 자신을 여겨왔었다. 그리고 비교적 평범한 생각을 하고 보편적인 생활을 해왔기에 다수의 입장에 서는데 익숙했던 것 같다. 그런데 소수의 신념이라고 여겼던 생각을 가진 무리 속에 있으니 반대로 내가 소수가 되어 침묵하게 되었다. 다수와 소수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상대적인 것인가.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문제에서는 다수 입장에 서다가 어떤 문제에서는 소수 입장에 서기도 한다. 그리고 나이, 학력, 종교, 출신 지역,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가족 상황, 건강상태 등 어떤 이유에서든, 언제든 소수자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여러 측면에서 소수자일 수도 있다. 개개인의 선택이나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다수의 입장에 서 있을 때 소수가 겪을 곤란과 불편을 깨닫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해야 한다. 우리는 한 곳에만 서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소수자인 동시에 다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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