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cious Unbossing
“그냥 제 일만 잘하고 싶어요.”
“팀장은 싫어요.”
“승진을 굳이 해야 하나요?”
요즘 교육, 강의 현장에서 종종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기업의 교육 담당자나 인사 담당자들도 이런 사례를 언급한 적이 있었구요. 특히 3040세대라면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라며 뜨끔하는 분도 있으신가요?. *1)
이러한 경향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미국 등 서구권에서도 '중간 관리자의 스트레스는 늘어나는데 보상은 따라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승진을 회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의도적 언보싱(Conscious Unbossing)’이라고 말하고요. *2) 단순히 승진을 회피하는 것을 넘어, 의도적으로 보스가 되는 역할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커리어 패스 선택으로 봐야 합니다.
‘의도적 언보싱’은 과거 세대의 '가늘고 길게'와는 명확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전의 '가늘고 길게'가 현상 유지를 위한 수동적인 '성장 회피' + 편하게 + 귀찮게 살지말자,,,,,, 였다면, 요즘 세대의 'Conscious Unbossing'에는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목적이 숨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지적하는 이 현상 속에는 관리자가 되어 조직 내에서 성공을 추구하기보다, ‘스페셜리스트’로서 자신만의 기술과 전문성을 깊이 파고들어 언젠가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려는 바램이 녹아 있습니다. 나중에 ‘한방’있는 능력자가 되고 싶다라는, 숨었던 'wanna be 전문가' 본능이 꿈틀거리는, 미세한 변화라고, 저는 읽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현상을 그저 '워라밸'만 쫓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이는 피상적인 해석 같습니다. 해외에서는 모두가 똑같이 오르려는 '승진의 사다리' 대신, 깊은 심해를 탐사하는 전문가처럼 '스페셜리스트 트랙'을 선택하는 이들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요즘 읽히는 느낌으로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선장만이 유일한 성공의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공감을 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똑똑한 회사들은 이미 '선장'과 '심해 탐사 전문가' 모두를 소중한 인재로 대우하며, 각자의 커리어 개발을 동등하게 지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과거 미국 보험회사에서 일할 때도 두 가지 커리어 트랙이 공존했습니다. 승진을 목표로 여러 부서를 거치며 리더의 길을 걷는 제너럴리스트 트랙과, 한 가지 분야에 모든 것을 거는 스페셜리스트 트랙이 그것이었습니다.
당시 자신의 특성과 강점을 잘 알고 있던 동료 중에는 모두가 가던 길이 아닌, 자신만의 전문성을 파고든 이들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중후반, 당시에는 생소하고 시장이 없었던 ‘ICT 분야 보험 상품 개발’에 뛰어들던 미국인 주니어 동료 A, 신재생에너지가 막 나오던 시절 풍력 발전기 꼭대기에 올라 연구했던 동료 B가 바로 그들입니다.
지금은 'Renewable Energy'라는 단어가 정립되었지만, 그때는 초기라 그냥 'Green Energy'라고 불리던 시절이었죠. A와 B, 이들은 당장의 승진보다는 미래의 전문성을 택했고, 그 결과 30대 초반부터 동료 A는 온라인 IP보험(지적재산권 침해) 전문가가 되었고, 동료 B는 해상풍력 금융에서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물론 관리자 트랙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만, 리더는 이제 주니어들이 어떤 커리어를 꿈꾸는지 함께 고민하고 설계하는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기업 문화는 여전히 문과 출신이 중간 관리자나 임원이 되지 못하면 '승진 누락'이나 '낙오자'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승진한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업무 능력으로 50%를 인정받고, 네트워킹과 소셜라이징 능력으로 50% 비중으로 뛰어나다는 의미가 될 수 있지요.
하지만 네트워킹/소셜라이징 보다는 전문성을 깊이 파고드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인재들은 100%의 에너지를 스페셜리스트 트랙에 쏟아붓고 싶어합니다. 이런 인재들에게 획일적인 관리자 승진 트랙만 제시한다면, 길고 긴 커리어에서 동기부여란 없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 좀 성장하면 다른 회사로, 학계로, 연구소로,,,, 기웃거리겠지요. 조직에 대한 몰입도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거구요. 이런 싱글 트랙으로 된 커리어 플래닝은 앞으로 더 통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요즘의 '의도적 언보싱'에는 성장 욕구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조직은 성공과 성장을 획일적인 '오래된 승진 트랙'이나 '제너럴리스트 양성'에만 둘 필요가 없습니다.
'Conscious Unbossing'과 같은 미세한 변화를 잘 읽어내고, 낡은 성공 공식을 과감히 버리는 조직. 그런 조직에 리더와 대표들이 원하는 진짜 인재들이 모여들 수 밖에 없습니다.
<Reference>
1)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10300911000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