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학생인 독자님이나 회사 생활을 경험해보지 않은 독자님이라면 '아삽으로'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빨리빨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말로 오래전부터 쓰이곤 했다. '빨리빨리'는 성실하게 빠릿빠릿하게 일하는 모습을 말하는 바람직한 어감을 내포하기도, 굳이 '빨리빨리'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도 성급함을 보이며 사는 모습을 빗대는 데에도 쓰였다. '빨리빨리' 대신, 요즘은 비즈니스를 할 때, '아삽으로'라는 말도 많이 사용한다. 대기업, 중소기업, 그리고 있어 보이는 그래서 안 그럴 것 같은 외국계 기업 서울 사무실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서울의 오피스 라이프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단어들 중에서 하나가 되었다.
'As Soon As Possible'을 줄여서 'A.S.A.P', 빨리 일처리를 하자거나 해달라는 의미로 'A.S.A.P'라고 이메일에 쓰곤 하는데, 이것도 더 빨리 말할 수 있게 '아삽으로'라고 부른다. 어감상으로, 실제 의미에 있어서도 '빨리빨리'보다 더 빠르게 일을 해야 한다는 표현이다. 예문을 들자면,
'아삽으로 확인 부탁드립니다.' '회신은 아삽으로요.'
'언제까지 해야 될까요?' '당근, 아삽이지요.'
'이거 아삽 건이야' '어떤 게 더 아삽인가요?'
'빨리빨리'는 회사에서 점심을 먹을 때에도 적용된다. 광화문 뒷골목 무교동에서 점심으로 북어국을 주문하면 5분 이내에 북어국이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 20분 안에 점심식사를 마치고 붐비기 전에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자리를 잡고 커피를 사야 한다. 1시간이 되기 전에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야 하는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어야 정상적으로 '빨리빨리' 먹는 점심식사가 된다. 그러니 '빨리빨리' 주문한 음식이 나와야 되는 식당에서 늦게 온 옆 테이블보다 주문한 음식이 늦게 나오면 말 못 할 고통이 내적으로 찾아온다. 주문을 받아간 아주머니가 헷갈리고 있는지 레이저를 보내기도 한다. 진짜 드물게 발생하는 내 음식만 주문이 안 들어간 사고는 아닌지 물어보고 확인하고 싶은데 여유로운 척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삽으로' 일하다가 점심을 먹으러 나온 서울 사람에게 음식은 '빨리빨리'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불안과 짜증이 슬슬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코스요리를 먹을 때 바퀴가 달린 수레를 테이블 옆으로 가지고 와서 간단한 요리를 만들어 주는 경우가 있는데 '게리동 서비스(Gueridon)'라고 한다. 프랑스어로 '게리동, Gueridon'은 바퀴가 달린 작은 수레를 말한다. 몇 년 전부터 미슐랭이 서울을 찾아오면서, 미슐랭 별을 따려면 거의 필수라는 인식 때문에 서울에서도 점점 더 자주 볼 수 있다. 미슐랭 때문인지 요즘엔 비싼 한식당의 한식 코스요리에도 종종 볼 수 있는 서비스가 되었다.
양식이든 한식이든 음식은 '빨리빨리' 나오는 게 좋지만, 게리동 서비스를 만난 날은 셰프나 웨이터가 '빨리빨리'를 잊고 조리해 주기를 바란다. 투명한 유리 케이스 속에 음식을 넣고 훈연을 해주기도 하고, 좋은 치즈나 트러플을 갈아주기도, 파스타 소스를 게리동 서비스로 만들어 주기도 한다. 주방에서 완성되어서 나오는 음식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데도 지켜보는 재미와 함께 맛있고 즐거운 식사가 되기 때문에, 천천히 느리게 먹는다고 해서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게리동 서비스가 끝나면 아쉬워하거나, 사진이나 영상으로 SNS 스토리나 피드로 남겨 자랑하는 일이 된다.
멕시코 '플라야 델 카르멘, Playa Del Carmen'이라는 휴양도시의 타코 레스토랑에서 게리동 서비스를 만났다. 타코와 스테이크, 해산물을 먹었던 레스토랑인데, 먼저 나오는 시저 샐러드를 게리동으로 조리해 주었다. 단순해 보이는 샐러드를 먹기 전에 10가지 정도 되는 소스의 재료를 게리동에 올려서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달걀과 레몬으로 마요네즈를 직접 만들고 조리기구를 사용해서 앤초비를 으깬 다음에 몇 가지 오일과 향신료를 섞어서 맛있는 시저 샐러드 소스를 만들어 주었다. 10분이 넘었던 게리동 서비스에서 여러 가지 재료들이 소스로 조리되는 과정을 보면서 재료의 색깔과 향이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다. 비릿한 앤초비가 오일과 만나 맛있게 조리되는 과정 하나하나가 새롭고 재미있었다.
덕분에 리얼 멕시코 타코를 맛보고 점심식사를 마무리 하기까지 2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빨리빨리' 먹고 싶은 생각은 '1'도 없었다. 멕시코에서 현지식으로 먹는 타코는 서울에서 먹었던 패스트푸드 스타일의 타코보다 다채로웠고 소스와 재료의 향을 하나하나 즐길 수 있었다. 다음 날에도 두 시간짜리 느릿느릿한 멕시칸 점심을 먹기 위해 같은 레스토랑, 같은 자리를 찾았다.
멕시코의 음식점에서 만났던 게리동 서비스의 느리지만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지만, 종종 문제라고 지적하고 '고쳐보자'의 타겟이 되었던 우리의 '빨리빨리' 습성을 비판하며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빨리빨리'는 빠르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이메일과 IT 기술혁신의 세상에 와서 '아삽으로'라는 말로 진화해 왔다고 보인다. '빨리빨리'와 '아삽으로' 일을 하면 조금 빨리 피곤해진다는 단 한 가지의 단점밖에 없는 반면, '빨리빨리'와 '아삽으로' 일하는 습관 덕분에 비즈니스, 기술개발, 스포츠 등의 많은 분야에서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수준에 이를 수 있었다. 따라잡아야 하는 기술은 '아삽으로' 따라잡으며 일하고, 초격차를 벌이며 달아나야 하는 분야에서는 '빨리빨리' 달려가면 될 일이다. 지금까지 잘 해온 것처럼.
대신 운이 좋은 날 '게리동 서비스'를 만났을 때처럼 느리게 가야 할 때 느리게 갈 줄 알면 된다. 느리게 하나하나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끼고 배워야 할 때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맛있게 완성된 시저 샐러드만 바라며 살아도 좋지만, 어떤 결과물을 완성하기 위해 거쳐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빠른 것도 좋고 느린 것도 좋고, 둘 다 필요하다.
외국에서 전화를 걸어 한국사람과 비즈니스를 할 때, 가장 먼저 우리의 국가코드 '빨리', '+82'를 눌러야 한다. 이쯤 되면 '빨리빨리'와 '아삽으로' 일하는 습성은 우리에게 태생적이고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외국인들이 영어를 쓰다가도 '빨리빨리'라는 부사를 섞어서 쓰는 경우가 꽤 있었다. 웃으면서 넘기곤 했지만, 국가코드 '+82'처럼 운명적인 장점이라고 받아들이고 함께 잘 살면 될 것 같다. 느리게 천천히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널리 깨닫기 시작하면 '느리게', '과정도 눈여겨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로움도 '아삽으로' 우리 것으로 만들어 낼 우리를 우리는 너무 잘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