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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굿 오피스

혹시 우리 회사의 평가는 ‘루저’를 색출하는 방식?

by 김홍재

한때 '경영의 신'으로 불리던 잭 웰치의 살벌한 상대평가 방식(상위 20%와 하위 10%를 선별)은 오랫동안 회사의 '국룰'처럼 여겨졌습니다. 매년 꼴찌를 골라내는 서바이벌 게임이 조직에 팽팽한 긴장감을 준다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낡은 방식은 지금 우리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멀쩡한 동료를 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1. 잔인한 룰, '의자 뺏기 게임'


조금만 마음이 삐딱해지면 이 '상대평가' 시스템은 마치 음악이 멈추면 무조건 한 명은 탈락해야 하는 '의자 뺏기 게임'과 똑같습니다.


우리 팀원 모두가 올해 역대급 성과를 냈다고 칩시다. 그래도 상대평가 룰에 따르면, 누군가는 반드시 눈물을 머금고 C등급이나 D등급을 받아야 합니다. 정해진 의자는 9개뿐인데, 10명이 앉으려고 하는 꼴이죠. 음악이 끝나는 순간 의자에 내가 앉으려면(=좋은 고과를 받으려면), 내 옆의 동료를 밀어내야만 하는 구조입니다.


2. "꿀팁? 절대 안 알려주죠" (노하우 공유의 실종)


이런 살벌한 게임 판에서, 과연 누가 자신의 필살기를 공유할까요?

어제까지 등을 맞대고 일하던 동료가 내 연봉을 깎아먹을 잠재적 경쟁자가 되는 순간, 팀워크는 박살 납니다. "김 대리한테 내 영업 비밀을 알려줬다가, 그 친구가 나보다 실적이 잘 나오면 어떡하지? 내 자리가 위험한데?"


결국 모두가 입을 닫습니다. 서로 돕고 정보를 나누면 조직 전체가 성장할 수 있는데, '내가 살기 위해' 노하우를 숨기는 각자도생의 정치가 시작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한때 혁신을 멈추고 암흑기를 겪었던 것도, 바로 이 시스템이 만든 '침묵' 때문이었습니다.


3. 공포는 '벼락치기'만 낳는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못하면 자른다"는 식의 공포 마케팅은 사람을 딱 '혼나지 않을 만큼'만 일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 시험 전날에만 미친 듯이 공부했던 것 기억나시나요? 처벌을 피하고 싶은 마음은 마감 직전에야 허겁지겁 목표를 채우는 '벼락치기(J커브)' 습관을 만듭니다. 반면, "잘한다 잘한다" 해주는 칭찬과 확실한 보상은 사람을 춤추게 하고, 시키지 않아도 더 달리게 만듭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상사의 눈치를 보는 '복종'이 아니라, 일이 재밌어서 파고드는 '몰입' 아닐까요?


4. '잘라내기' 전에 '대화'부터


그렇다면 성과가 안 좋은 동료(저성과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작정 방치하자는 게 아닙니다. 기계적으로 "당신은 하위 10%니까 아웃"이라고 통보하는 대신, 조금 더 세련된 '관리'가 필요합니다.

요즘 잘 나가는 기업들은 이렇게 합니다.

비교 금지: 옆 사람보다 잘했냐가 아니라, "약속한 목표를 달성했나?" 만 봅니다. (절대평가)

일단 코칭: 부족하다면 "무엇을 도와주면 될까?" 하고 구체적인 코칭(PIP)을 먼저 제공합니다.

쿨한 이별: 그래도 안 맞으면 미국의 대기업들처럼 제안합니다. "서로의 시간이 아까우니, 두둑한 위로금 받고 서로 맞는 길을 찾아가자"고요. 이건 잔인한 해고가 아니라, 서로를 위한 합리적인 이별입니다.


평가는 '심판'이 아니라 '성장'이다


평가의 진짜 목적은 '누가 범인인가'를 색출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다 같이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죠.


결과만 보고 점수를 매기는 사후약방문식 평가, 동료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상대평가는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줍시다. "우리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절대적인 기준을 세우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성장을 돕는 것. 그것이 AI 시대에 진짜 인재들이 모여드는 '이기고 싶은 조직'을 만드는 비결이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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