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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김홍재 Jan 14. 2020

포토 사피엔스의 여행

산토리니, 그리스

다양한 식재료가 요리로 완성된 멋진 플레이트와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은 항상 바라는 좋은 피사체가 된다. 좋은 피사체는 전성기를 맞은 SNS를 만나 호모 사피엔스를 포토 사피엔스로 살게 만들었다. SNS나 포털 서비스로 보는 사진이 하루에 몇 장이나 될까? 매일 몇 십장에서 많은 날은 몇 백장이 넘을 것이다.   

그리스를 여행하기로 결정하고 산토리니를 일정에 넣은 날부터 사진으로 수 없이 보았던 하얀 집과 파란 바다의 풍경을 카메라로 담는 즐거운 순간을 상상했다. 블로그나 SNS에 올리면 몇 명이나 좋아요를 눌러줄지를 궁금해하기도 했다.

'SNS 업로드용으로 건질 수 있는 사진은 몇 장이나 될까?',
'산토리니 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이아 마을에서 인생샷을 건질 수 있을까?',
'붉게 물드는 석양이 산토리니의 하얀 지붕에 비치는 장관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날씨운도 좋아야 할 텐데'

사진 촬영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과 기대를 가득 안고 산토리니로 향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배를 타고 5시간이 넘게 풍랑을 버티어 산토리니 항구에 도착했다. 손쉽게 잡기는 했지만 30분이나 택시를 타고 섬 끝에 있는 이아마을에 왔고 캐리어를 끌고 골목길을 지나 호텔까지 찾아왔으니 돌이켜보면 만만치 않았던 하루였지만, 피곤함보다 얼른 호텔 밖으로 나가 아름다운 마을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높았지만 날씨는 찍어온 사진처럼 완벽했다. 7월 초의 그리스는 더위로 악명이 높은 곳이지만 늦은 오후의 기온이 28도까지만 올라가 주어서 고마운 날이었다. 에게해 수평선 아래로 빨갛게 해가 떨어지는 저녁에는 바다 칼데라가 잘 보이는 포인트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늘이 주황색과 빨간색으로 자연산 그라데이션을 보여주다가 붉은 해가 바닷속으로 몸을 완전히 감추는 순간, 호텔 주인아주머니의 말처럼 페스티벌이 되었다. 커플 여행자에겐 로맨틱한 키스 타이밍이 되고, 키스할 입술이 없는 여행자들은 박수로 즐거움을 표현하다가 대신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휘파람을 불며 산토리니의 아름다운 저녁을 맞았다. 장엄한 일출 장면이 희망과 용기로 가슴을 설레게 한다면 붉은 하늘 아래 일몰은 가슴을 뿌듯함으로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그 날의 일몰 장면이 준 뿌듯함은 여행 전부터 바라던 만족스러운 사진을 메모리에 저장했다는 데에 있었다. 포토 사피엔스에게 만족스러운 산토리니 여행이 되어준 날이다.  

오버 투어리즘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떠나온 산토리니는 평생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사진을 남겨주었지만, 다시 가도 될지, 다시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사실 산토리니 주민들은 수없이 많이 찾아오는 관광객 덕분에 먹고사는 고민을 해결하지만 너무 늘어난 관광객 때문에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육지에서 많이 떨어진 섬이기 때문에 너무 늘어난 관광객으로 인한 식수와 상하수도의 문제, 절벽에 자리한 하얀 작은 집들 사이로 사진을 찍기 위해 남의 집 마당에 발을 들여놓는 불청객이 저지르는 사생활 침해 문제, 환경오염, 물가와 임대료의 상승으로 산토리니의 작은 마을, 이아마을과 피라마을 원주민들의 고충이 심각해지는 상황이라고 한다. 산토리니는 하루 관광객을 8,000명으로 제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오버 투어리즘 문제는 멀리 산토리니, 베네치아, 보라카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와바리라고 할 수 있는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도 빌딩 숲 아래로 아름다운 한옥마을과 좁은 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러 오는 넘치는 관광객 때문에 '관광제한시간'을 두고 있다. 강제력이 없는 시간제한 선언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여전히 소음으로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산토리니와 마찬가지로 열린 대문이나 창문을 배경으로 한옥의 내부까지 촬영당하는 사고도 빈번해져서 사생활 침해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고 한다.  

인간의 욕구와 관련이 되어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처럼 오버 투어리즘도 포토 사피엔스, 우리 인간의 욕구와 관련이 된 문제여서 마찬가지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 산토리니와 같이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여행지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을 시작했다. 예전보다 저렴한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저비용항공 비즈니스를 탓해야 할까? 전성기를 함께 누리고 있는 SNS를 탓해야 할까? 좋은 곳은 널리 알려지기 전에 빨랑 빨랑 찾아내서 남들보다 먼저 다녀와야 하는 것일까? 모든 지구인을 줄 세우고 번호표를 뽑아주면 될까? 아니면 남들은 가지 않기를 바라며 네거티브 언론플레이를 해야 하는 것일까? 포토 사피엔스의 욕구가 만들어낸 고민거리이지만, 포토 사피엔스는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경리단길을 망가뜨렸지만, 멈출 수가 없는 오버 투어리즘은 아름다운 자연 속의 작은 마을과 역사 유적을 망가뜨릴 것이다. 상상하기 싫은 일이지만 오버 투어리즘의 폐해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망가뜨리거나 잃고 나서야 후회하고 답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욕구와 관련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모른 척 내버려 둘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망하고 나야 돌이켜 볼 수 있었던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처럼 망하게 둘 수가 없는 문제이다.

며칠을 생각하고 국내와 해외의 사례를 검색해 보았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역시 인간의 욕구와 관련된 문제는 어려운 것인가 보다. 좋은 곳에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당연한 것처럼, 그저 당연한 매너를 갖추고 원주민에 대한 작지만 당연한 배려를 잊지 않는 것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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