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를 맞아 바닥을 치고 있는 아르헨티나 페소 환율 덕분에 티본 스테이크와 안심 스테이크, 합해서 1킬로그램의 쇠고기를 먹어도 가격은 딱 5만원이었다. 음료 두 잔도 주문했고 세금과 팁 모두 포함된 가격이다. '푸에르토 마데로'라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핫한 동네에서 꽤 괜찮은 레스토랑이었다. 친절한 웨이터가 어디서 왔는지 물어서 'South Korea'에서 왔다고 대답해주었다.
갑자기 주방에서 쉐프가 나와서 인사를 했다. 쉐프의 아들이 BTS를 좋아하는데 한국사람이 왔다길래 보러 나왔다고 한다. 참~나, 우리가 BTS도 아니고, BTS와 친한 사람도 아닌데... 한국 여권을 쓴다는 것과 남자라는 것 말고는 BTS와 나는 아무런 공통분모가 없다. 아마 그는 저녁에 아들을 만나 오늘 우리 레스토랑에 한국 사람들이 왔었다고 이야기하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2. 파리 - 프라고나드 향수, 비누 가게.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옆에 있는 '프라고나드' 가게에서 향수와 비누를 구경하고 쇼핑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파리지엔느 여자 판매사원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채고 귀찮을 만큼 계속해서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한국 사람을 만나 공부하고 있는 한국어를 마구 마구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까르르 웃으면서 즐거워하는데 잘한다는 칭찬과 한국어 발음이 너무 좋다는 칭찬에 우리식으로 손으로 입을 가리는 (손 냄새를 맡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린 나이에 배우는 외국어라 발음이 정확했고, 손 냄새를 맡는 우리식 제스처도 드라마를 통해 체득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계산대까지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이번엔 파리지엥 남자 직원이 한국인 친구들과 마시는 소주가 너무 맛있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 사람이 싸구려 소주가 너무 좋다며 우리를 붙잡고 계속 말을 걸어왔다. 참나~ 비누 몇 개 샀을 뿐이고, 비누를 많이 팔아야 하는 사장도 아닌 젊은 프랑스 직원들이 한국어를 구사하는 '네이티브 스피커'를 만나 그렇게 반가웠던 모양이다. 오래전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 네이티브 외국인을 만나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말을 써도 네이티브 스피커가 되어 즐거운 여행이 된다.
3. 뉴욕 to 칸쿤행 비행기
입국신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미국인 승무원 아저씨한테 볼펜을 빌렸다. 빌리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바쁘게 일하는 승무원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볼펜을 잘 챙기는 편인데, 그날은 어쩔 수 없이 빌려서 썼다. 그리고 승무원 아저씨에게 볼펜을 돌려주었더니 또박또박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볼펜을 빌려서 내가 고마운 상황인데..., 서울에서 영어를 쓰는 서양 사람에게 길을 알려주고 자동으로 'Thank you'를 날리는 우리식 친절 사대주의를 우리가 당했다. 미국 금발 아저씨가 자신의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미국 국적의 비행기에서, 참나~
물론 나는 승객이고, 서비스 현장이었으니 승무원의 친절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말고 한국사람은 보이지 않았던 미국 항공사의 멕시코행 비행기에서 이렇게 맞춤형 서비스를 만나는 날도 있다.
4. 시드니 - QVB 백화점
시드니의 상징 같은 QVB 백화점이었다. 천장에 매달린 시계가 예쁘기로 유명한 곳이라 그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옆에 있던 호주 여자분께 사진을 부탁했다. in English.
그런데 카메라를 받아 들고 "하나~ 둘~ 셋~" 하면서 찍어준다. 우리가 한국말로 대화하는 것을 듣고 알았다고 한다. 참나~ 한국어 발음이 좋다고 칭찬해 주었더니, "아니에요~" 라면서 한국식 겸손까지 탑재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네 번의 유쾌한 '참나~'를 적었지만, 비슷한 경험은 더 많이 있었다. 스위스 체르마트의 펍에서 축구를 보며 맥주를 마시던 남자들 사이에 끼었더니 손흥민 스타일의 윙어는 이런저런 명문 구단에 지금 필요한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토론을 걸어왔다.
70억이 넘는 지구인 중에 한국인은 5,200만 명 정도 된다. 우리말을 쓰는 해외 동포를 포함해도 6,000만 명을 넘지 못한다. 비율로 치면 전 세계 인구의 1%도 못 된다. 그런 작은 존재인 우리는 20세기의 초기 절반을 외세의 압력에 짓밟히며 살았다. 후기 절반은 전쟁으로 시작해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는 신세였다. 1%도 되지 않는 미미하고 불쌍했던 존재감이었지만 부단한 '노오오~력'으로 21세기의 우리는 존재감이 꽤 괜찮은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어깨에 조금 힘을 주고 살 만큼은 된다. 더 이상 작고, 못 살고, 못난 나라가 아니다.
대신, 이제는 조금 더 세심한 매너와 배려를 보여주며 살아야 할 때가 되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 어디 구석에 가도 우리말은 프랑스 사람이 듣고 호주 사람이 듣고 한국말로 인사해오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것은 이전보다 더 주목을 받는다는 의미가 된다. 지금 우리의 수준은 돈 좀 벌었다고 주목받고 싶어 하지만 아직 매너와 교양이 부족한 '졸부'가 되지는 않겠지만, 조금 더 세련되고 세심해야 할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싶으면 조금 더 차려입어야 하고, 복잡한 거리에서 어깨를 부딪치지 않도록 주위를 살피고, 문 앞에서는 'after you'를 말하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매너와 배려는 조금 더 몸에 배어 있으면 좋겠다. 해외에서도. 서울에서도.
사족) 오래전 20세기 초의 일이라 강제징용 배상에 대한 우리 법원의 판결이 억울하다고 경제적으로 말도 안 되는 보복을 가하는 이웃 섬나라에게 다시는 지지 않을 것이다. 덩치 크고 쪽수 많다고 깡패처럼 덤벼도 예전처럼 당하고만 있을 우리의 체력이 아니다. 우리는 예전처럼 만만한 존재가 아니다. 행패 부리고 까불다가 지금보다 더 크게 다칠 수도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