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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김홍재 Feb 28. 2020

여행의 이유

파리, 프랑스

나를 포함하여 꽤 많은 서울 사람들이 겨울에 '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를 즐겨 마신다. 추운 날씨에도 당당하게 '얼죽아'를 외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얼죽아' 의 이유로 유난히 따뜻한 이번 겨울을 말하기도 하고, '열'받는 일이 많은 복잡한 일상 때문이라는 쓸데없는 분석도 있지만 아무래도 그냥 우리의 취향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외국에서 정말 찾기 어려운 음료이다. 유럽이나 남미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려면 물게 있는 스타벅스를 찾아야 한다. 외국의 작고 예쁜 카페에서는 '아이스커피'를 아예 팔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고, 서울만큼 인기가 높지 않기 때문에 스타벅스 매장을 찾기도 어렵다. 시드니의 카페에서 '롱 블랙(=아메리카노)'을 주문했을 때, 바리스타가 왜 한국사람들은 아이스를 따로 달라고 하는지 물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얼죽아' 취향을 가진 서울 사람이 파리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부름을 받으면 스타벅스 말고는 대안이 거의 없다. 여유로운 거리의 브라세리나 노천카페에서 '따아'를 마실 수 있어도 '아아'는 주문할 수가 없다. 구글맵을 열고 스타벅스를 찾았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스타벅스 오페라점'이 검색되었다. '아아'를 팔지 않을 것이 뻔한 작은 카페들을 여럿 외면하고 드디어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사진과 같이 스타벅스 오페라점에 들어섰을 때 잘 못 찾아온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지만, 군데군데 초록색 세이렌 마크를 발견하고 잘 찾아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얼죽아' 취향을 가진 서울 사람이 포기하지 않고 찾아온 스타벅스의 모습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스타벅스 오페라점 인테리어는 에펠탑만큼 기억에 남을 만한 여행지가 되었다. 유럽에서 인기가 없는 스타벅스의 생존 전략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어느 유명한 관광지나 마레지구 쇼핑보다 기억에 남는 파리의 명소로 기억될 것이다. 세 번째 만난 파리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스타벅스는 예상하지 못한 깜짝 선물이었다.  





처음 파리에 간 것은 20년 전이었다. 파리대학 기숙사 '덴마크관(Fondation Danoise)' 건물에 살았다. '파리대학 기숙사'는 학교 안에 기숙사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광역 지하철 RER B 노선에 '파리대학 기숙사역'이 있을 만큼 큰 동네를 말한다. 공원 같은 기숙사촌에는 건물마다 나라의 이름이 붙어 있는데 그때는 '한국관'이 없어서 '덴마크관'에 1인실을 배정받았다. 아시아 국가 중에는 일본관(Maison du Japon), 인도관(Maison de l'inde)이 있어 부럽기도 했다. 다행히 2018년에 '한국관(Maison de la Coree)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20년이 흘렀고 그동안 토익을 공부하고 영어만 쓰면서 일하다 보니, 프랑스어 많이 잊어버렸다. 함께 생활했던 덴마크 출신 파리 유학생 친구들과 연락도 끊어졌지만 20대 초반에 듣는 노래는 평생 부를 수 있는 것처럼, 20대 초반 파리대학 기숙사 시절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기숙사를 떠나던 날, 방에 걸어 두었던 작은 액자는 경비 아저씨 책상에 올려두고, 사감 여선생님이 탐내던 하회탈 열쇠고리는 작별의 선물로 드리고 나왔다.  

그 후로 15년이 지나 파리를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일정에 여유가 생겨 지하철을 타고 기숙사 덴마크관을 찾았다. 그동안 끔찍한 테러를 겪은 파리를 생각하면 예약하지 않은 방문자에게 기숙사 현관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기숙사 내부를 보지 못하더라도 공원 같은 기숙사촌을 다시 거닐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덴마크관 문 앞에 서니 벨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15년 전 대학생이던 내 모습이 떠올라 온몸이 떨려왔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기적같이 15년 전 사감 여선생님이었다. 그동안 서울에서 일하며 보낸 15년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덴마크 사람들만 사는 건물이라 유일했던 아시아 사람 '킴'을 아직 기억해 주었다. 그리고 사무실로 따라갔더니 경비아저씨는 이제 세상에 안 계시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다. 15년이 지났으니... 사감 선생님은 책상 서랍을 여시고 내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하셨다. 서랍에서 나온 것은 15년 전 떠날 때 드렸던 '하회탈 열쇠고리'였다. 지금까지 기숙사 현관 열쇠고리로 사용하고 계셨다.





여행을 통해서 발견하는 즐거움과 감동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찾아왔다. 그리고 깜짝 선물과 같은 여행의 즐거움과 감동은 항상 작고 사적인 것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세 번의 파리 여행이 특별해진 이유는 에펠탑도 아니고 마레지구와 쇼핑도 아니었다. 고집스러운 취향 덕분에 찾아서 마셨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회사원으로 바쁘게 사느라 잊고 있었던 학생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 준 '하회탈 열쇠고리' 때문이었다.

언젠가 떠날 다음 여행에도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여행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심하고 여행을 시작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깜짝 선물과 같은 순간일 것이다. 깜짝 선물은 또다시 작고 사적인 나만의 어떤 것이겠지만, 무엇일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여행이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이유이다.   



2층 제일 왼쪽 방 :)
왼쪽은 20년전 필카로 찍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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