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삼각형 막대 초콜릿, '토블런(Tobleron)'의 실제 모델인 마테호른 산을 보러 가는 스위스 체르마트에는 전기 자동차만 다닐 수 있다. 유럽을 렌터카로 여행한다면 체르마트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Tasch'역의 주차장에 휘발유나 디젤 자동차를 두고 기차로 갈아타고 체르마트에 가야 한다. 택시는 물론 버스까지 오로지 전기 자동차만 다닐 수 있는 곳이다. 체르마트에는 전기 자동차가 있고, 초콜릿과 퐁듀, 빙하가 녹은 물로 만드는 체르마트 맥주와 'Chairman Kim'이 좋아한다고 해서 한때 알려진 '뢰스터'라는 감자전 요리가 있다. 막걸리에 파전처럼 체르마트 맥주에 감자전 '뢰스터'도 훌륭한 마리아쥬가 된다. 맛있는 음식이 있고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체르마트는 있어야 좋은 것들을 여럿 가지고 있지만, 없어서 더 좋은 것도 있었다. 바로 '자동차 매연'이 '1'도 없다는 점이다.
노후 디젤 자동차의 도심 진입을 제한하고, 내연기관 자동차 제조사들의 배출가스 조작 소식에 한숨을 내쉬며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전기 자동차는 소음도 거의 없으니 체르마트의 아침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알람으로 맞춰둔 노래보다 더 듣기 좋은 음악이었고, 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계곡 물소리는 다리가 아파와도 산책을 멈출 수 없게 했다.
아름다운 체르마트의 환경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체르마트의 시민들은 주민 투표를 통해 내연기관 자동차를 버리고 전기 자동차를 선택했다. 투표로 결정했다는 의미는 반대파의 저항이 존재했었다는 뜻이다. 체르마트가 토론을 거쳐 투표로 내연기관 자동차를 포기하고 전기 자동차를 선택한 것은 1966년의 일이다. 결정은 했지만 추가로 발생하는 충전소 인프라를 갖추기 위한 비용, 값비싼 전기차 구입비용은 여전히 부담이었다. 반대 여론, 비용 부담이라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얻은 것은 자동차 매연 '제로'의 도시 체르마트였다.
스위스는 부자 나라이고 비록 체르마트는 작은 도시이기는 하지만 전기 자동차만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은 1966년에 확인되었다. 그런데 요즘처럼 기술혁신이 빠르고 최신 기술의 제품들이 널리 유행하는 세상에서 전기 자동차의 발전만 유독 더디었던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너무 비싼 전기자동차의 가격, 아직 부족한 충전소, 점차 축소되는 보조금 등등. 보이지 않는 곳에 전기자동차의 발전을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는 의문과 음모에 대한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전기자동차의 등장이 반갑지 않은 중동의 기름 부자들, 'New Seven Sisters' 또는 'Supermajors'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석유자원을 선점하고 독점했던 오일 메이저 자본, 광고로 언론에 힘을 미치는 자동차 회사,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정치인들이 의심받는 대상이다. 혁신을 만들어가고 있는 미국의 전기 자동차 회사 테슬라는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으니 곧 망할 것이고, CEO 엘론 머스크는 사기꾼일 뿐이라며 근거 없는 억측을 만드는 미국 언론의 비난을 자주 볼 수 있다. 변화를 방해하려는 세력이 있고 그들의 힘이 막강한 분야에서 변화는 더딜 수밖에 없다.
2021년이면 싱가포르에는 드론 택시가 날고, 우리도 2023년에는 인천공항과 도심을 오가는 드론 택시, 2024년에는 드론 엠뷸런스를 운용할 것이라고 하는데 2024년에도 전기 자동차가 편리한 세상이 되어 있지 못할 것 같다. 기름을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약 20,000개의 부품이 필요한 반면, 배터리와 모터만 있으면 되는 전기 자동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훨씬 적은 7,000개 정도의 부품을 조립하면 생산할 수 있다. 하늘을 나는 무인 드론 택시의 프로그래밍도 가능한 세상이다. 아직 기술 역량이 부족하다는 말로 너무 더디게 보급되고 있는 전기 자동차를 설명하는데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렵다.
소비자로서 생각할 부분도 있다. 최신 전자기기를 리뷰하는 구독자 125만의 유투버 '잇섭'님의 말처럼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다. 최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처럼 빨리빨리 질러서 누려야 하는 최신 전자기기에 전기 자동차를 포함시켜도 될 것 같다. 테슬라 전기 자동차는 배터리에 충전된 전기로 작동한다. 그리고 반도체 칩에 입력된 데이터에 따라 자율 주행하는 모습은 의자가 달린 최신 전자기기를 보는 것 같다. 부산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남동생은 전기 자동차를 질러서 연료비가 거의 들지 않아 영업활동에 연료비 절감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혁신'을 고민하면 비용절감만 늦출 뿐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내일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잘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서 보조금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감시하고, 충전소를 더 달라고 시끄럽게 요구를 해야 할 것이고, 도전하는 혁신가들을 응원할 것이다. 빠르면 다음번, 늦어도 그 다음번에는 전기자동차를 구입해도 불편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려고 한다. 그러면 체르마트와 교류를 통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제주도의 전기자동차 프로젝트도 속력을 낼 것이고, 가까운 미래에 자동차 매연이 사라진 제주도의 맑은 공기로 숨 쉴 수 있을 것이다. 주유소가 사라진 체르마트처럼 우리도 '좋~은 기름' 주유소와 이별하는 시점을 앞당길 수 있다.
(사족,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미래(의) 자동차' 사장님은 이제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미련을 버리시길. 몹쓸 언론인, 정치인 친구들도 버리고 나서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잔'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