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 김홍재 Mar 11. 2020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

한 번도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나의 믿음이다. 변함없이 인생을 관통해온 이런 믿음과 반대로 살아가는 아침형 인간의 나라 호주와 시드니에 관한 이야기이다.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스 아테네 공항을 출발하고 30시간 만에 호주 시드니에 도착했다. 지구 한 바퀴 여행에서 가장 긴 비행이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해서 피곤한 우리 부부를 위해 와이프의 삼촌과 숙모 부부는 안방을 내어주셨다. 너무 긴 비행이었기 때문에 시차 적응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음 날 새벽도 밤도 아닌 시간에 일어났다. 자느라 하루를 버렸지만 컨디션은 시드니에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잠을 잘 수도 누워있을 수도 없어서 이른 아침의 시드니 동네 풍경을 보러 집을 나섰다. 아직 깊은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삼촌 가족들 몰래, 살금살금.

새벽 5시에 본 시드니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모습이었다. 서울과 달리 시드니의 동네에는 나무가 많았고 생각보다 운동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새들이 지저귀는 길을 따라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산책했다. 통근 기차가 다니는 기차역까지 산책하다 보니 아침 커피가 생각났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문을 연 곳이 있을지 의심이 생겼지만, 기차역 근처 카페들은 문을 열고 커피를 팔고 있었다. 시드니의 카페들은 대부분 첫 기차가 다니기 시작하는 새벽 5시에 문을 연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동네를 배회하던 시차 적응 실패자에게도 커피를 제공해주어서 고마웠다. 일찍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밤늦은 시간까지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핸드폰을 만지며 밤을 즐길 줄 모르는 재미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조금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서울의 가로수길 같은 '써리 힐즈, Surry Hills'라는 동네를 찾았다. 2시 30분에 브런치 카페에 도착한 우리의 주문을 받고 웨이트리스는 바로 퇴근했다. 4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카페는 다음 날 아침 5시에 다시 문을 연다. 음식은 예쁘고 맛있었지만 오후 2시 30분에 겨우 도착해서 겨우 밥을 얻어먹고 온 기분이다. 커피를 마시고 조금 더 걸어 시드니 중심가로 왔다. 저녁 6시가 되면 퇴근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저녁을 먹고 서점도 가고 시드니를 구경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6시가 되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이 퇴근하고 있었고 6시가 되자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거리의 명품샵도, 서점도, 카페도 6시면 모두 '영업 종료'. 호주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 시드니의 모습이 맞는지 의아했다. 시골도 아니고 시드니 변두리도 아닌데.

이른 아침 5시부터 운동을 하고 카페를 찾는 시드니 사람들은 일찍 퇴근하고 저녁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편이라고 한다. 주말에도 이런 생활 방식은 유지되었다. 그러니 시드니 중심가의 카페나 식당은 저녁에는 영업을 하지 않거나 문을 여는 곳이라도 이른 저녁이면 '영업 종료'되었다.  저녁 시간에 시드니 사람들은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이른 아침에 운동을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서울도 예전 같지는 않지만 시드니 보다는 훨씬 늦은 밤까지 친구들을 만나고 야간 버스나 심야 할증 택시로 귀가하곤 한다. 홍대와 이태원 밤거리의 에너지, 광화문 뒷골목에서의 치맥, 강남역에서 밤에 택시잡기와 같은 일은 시드니에 없다. 같은 남반구에 있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밤 9시부터 시작하고 거리도 밤 2시까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며칠을 지내면서 시드니의 너무 이른 '영업 종료'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참 재미없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저녁이면 친구를 만나 맛집을 찾기도 어렵고, 퇴근 후에 서점에 가거나, 쇼핑도 불가능한 도시가 시드니이다. 서울 사람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생활 방식이 너무 다른 시드니 사람들처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당연히 서울에도 있다. 서로 살아온 시대가 달라서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회사의 꼰대들'과 반대로 '개인주의적인 요즘 것들', 싸울 때 부모와 자식, 우리 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를 두고 견제하는 상대방. 특히 정치색이 반대인 사람들을 향한 댓글은 무서울 때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색이 다르다는 것은 심각하게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 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 누나와 동생, 베프끼리 대화 단절로 이어지기도, 의절 직전까지 싸우기도 하는 절대로 이해가 안 되는 존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예 종교나 정치 이야기는 명절에 안 하는 것이 상책인 가족도 있다.

생활 방식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서울 사람과 시드니 사람은 서로를 흥미롭게 생각하고 여행을 하며 그 차이를 느껴 보고 싶어 한다. 너무 다르지만 각각의 생활 방식이라며 인정한다. 다르기 때문에 어색하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여행을 통해서 만나는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시드니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우리의 모습은 비좁은 도시에 모여사는 시끄러운 사람, 항상 바쁜 사람, 너무 열정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면서 새롭거나 다른 것들을 발견할 때 'Strange is interesting'이라는 말을 종종 쓰곤 했다. 우리의 야행성 라이프 스타일은 아침형 인간 호주 사람들에게 꽤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라는 티비 프로그램에서 여행을 통해 다른 우리의 방식을 경험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의 모습이 흥미롭고, 흥미로워하는 그들의 모습을 우리는 흥미로워한다. 여행 속에서 만난 다른 라이프 스타일은 'Strange'하다고 말하지만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interesting' 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여행 중에는 나와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거나 다른 생각을 한다고 해서 비난하며 싸우려 하지 않는다. 싸우고 불편하게 생각해 봤자 여행만 망치거나, 친구만 줄어들 뿐이다.

한 번도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더 피곤하다'는 말에 대한 오래된 나의 믿음과 밤에 친구를 만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나치게 이른 '영업 종료'로 시드니의 밤은 생각보다 덜 아름다웠지만, 이해할 수 없는 라이프 스타일을 보면서 비난하는 태도는 발견할 수 없었다. 나와 우리와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시드니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인정할 수 있었다.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서 완전히 다른 편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주장도 (제발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들어보면 내가 간과했던 반대편의 모습을 짚어볼 수 있다.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좋은 기능도 있다.

나와 다르게 살거나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도 하는 날은 나는 이렇게 착한 사람이었다며 기분 좋아서 뿌듯해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처음 보는 나와 10년 만에 보는 와이프에게 안방을 내어준 따뜻한 삼촌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호주 사람, 시드니 사람이다.

파란 하늘에는 일찍 일어나서 피곤한 새, 늦게 일어나서 피곤한 새, 둘 다 잘 날아다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