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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김홍재 Apr 13. 2020

어느 것이 더 좋은 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를, 남프랑스

침대에서 눈을 먼저 떴는지, 빵 굽는 냄새를 먼저 맡았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 곳은 빈센트 반 고흐가 여러 명작을 남긴 남프랑스의 아를에 있는 작은 호텔이다. 500년 된 건물을 개조한 호텔의 2층 작은 방이다. 눈을 먼저 뜨고 일어나는 보통의 아침과 달리 빵 굽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시켜 일어나게 하는 아침은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처음 하는 경험이었다. 분명한 차이는 빵 굽는 냄새로, 후각에 자극으로 일어나는 아침은 훨씬 기분 좋은 일이었다는 점이다. 세상 누구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부팅하기가 어려운 내가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려 빛의 속도로 이불속을 빠져나올 수 있었으니. 창 밖에 작은 정원에는 테이블이 몇 개 놓여 있었고 조식을 먹으려고 투숙객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500년 된 작은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2층의 방으로 캐리어를 들고 옮기는 일은 불편했다. 500년 전 사람들이 살던 작은 방을 호텔 객실로 꾸몄으니 방은 초미니 사이즈다. 창 밖으로 보이는 호텔의 정원도 미니 사이즈였지만, 아침을 먹을 수 있게 몇 개의 테이블을 두고 있었다. 오래되고 작아서 불편함이 있는 호텔임에도 작고 불편하다는 느낌보다 500년 된 건물에서 자고 일어났다는 신비로움과 아늑함이 더 기억에 남는 곳이다. 무엇보다 이 호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른 아침에, 문틈으로 몰래 들어와 나를 깨워준 빵 굽는 냄새였다. 500년 전의 아침에도 작은 정원과 좁은 골목에는 빵 굽는 냄새가 가득했을 것이고, 사람들은 빵 굽는 냄새에 기분 좋은 아침을 맞았을 것이다.  
 



8층, 28층, 6층을 거쳐 지금은 아파트 19층에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어진지 15년 된 곳이다. 아파트 공원에 가려면 버튼을 누르고 기다린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서울에서 흔한 아파트의 모습이다.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서 살아도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 한다. 담배를 피우며 피곤을 잊고, 마음속에 작은 안정을 찾으려 흡연구역으로 걷는다.  
 
주택 보급률이 100프로를 넘는데 여전히 새 아파트 높이 더 높이 짓는다. 새 아파트가 계속 필요한 이유는 여럿 있을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15년 된 아파트는 10년이 더 지나면 인기 없는 아파트가 될 것이고 낡고 노후된 건물이 될 것이다. 물이 새기 시작하고 페인트 칠이 벗겨지면 10년 후에도 이 집에 살고 싶어 할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근처의 새 아파트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아를의 500년 된 건물은 10년 후에 510년 된 건물이 되겠지만 지금보다 달라진 모습은 없을 것이다. 여전히 작은 방에서 잠을 자고 아침이면 건물 구석구석 빵 굽는 냄새가 퍼져나갈 곳이다. 500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변화하지 않아도 방이 작아도 불편해도 좋을 것이다.  
 
서울역이 가까운 도심의 19층 아파트에서 강아지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흡연구역을 찾아 산책을 한다. 연기 한 모금에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다. 콘크리트 속에 둘러 싸인 야경도 예쁘다. 500년 된 건물에서의 하룻밤을 기억하면서 10년 후에도 편리한 아파트에서 계속 살게 되겠지만, 어느 것이 더 좋은 곳인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도 기회를 틈타 더 편리한 새 아파트를 찾고 있을 것이며, 친구를 만나도 어디 동네, 무슨 무슨 새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할 것이다. 고흐의 그림처럼 별이 빛나던 시골 마을 아를의 작은 호텔이 생각나는 서울의 밤이다.  
 
하늘 높이 솟은 새 아파트에도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고, 남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 아를의 500살 호텔 건물도 그래야 했던 존재의 이유가 있다. 기분 좋은 빵 냄새에도 이유가 있고, 담배를 피우는 연기와 냄새에도 이유가 있다. 현실은 편리미엄 아파트인데, 동경하고 꿈꾸는 곳은 항상 다른 데 있다.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lete blue and gr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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