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 김홍재 Nov 01. 2020

세계일주 보너스 항공권

Round the World

비행기로 해외 출장을 다니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다. 내가 탄 비행기의 항공사 임원이 옆자리에 앉았다.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는 승객과는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날은 항공사 직원이라고 하면서 여행과 출장을 이야깃거리로 먼저 말을 걸어오시니, 대화로 긴 비행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비행기로 출장이 잦은 편이어서 혹시라도 비행기 여행과 관련한 흥미로운 이야기나 해외 출장과 관련된 ‘꿀팁’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진짜 ‘꿀팁’을 얻었다. 출장을 다니며 적립한 마일리지가 얼마나 되냐고 물으시더니,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앞으로 한 군데 항공사만 계속 이용하면 적립된 마일리지로 공짜 항공권으로 교환하고, 공짜로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고 하셨다. 나름 잘 알고 있는 마일리지 항공권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낸 이유가 자기 항공사만 이용해줬으면 하는 항공사 임원의 이야기로 들려서 처음에는 별로 집중하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아서 항공사 홍보 이야기만 쭈욱 들으며 비행을 마치는 게 아닐까라는 불길함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렇게 불안하게 이어가던 이야기가 진짜 ‘꿀팁’이 된 이유는 ‘R.T.W.’라고 부르는 항공권 때문이었다. R.T.W. 는 ‘Round The World’, 지구 한 바퀴를 말한다. 옆자리에 앉은 항공사 직원은 근무하고 있는 그 항공사의 마일리지만 14만 마일리지를 적립했을 때, 22만 마일리지를 적립했을 때, 44만 마일리지를 적립했을 때, ‘세계일주 보너스 항공권’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7만 마일리지를 적립하면 보너스 마일리지 항공권으로 유럽이나 북미로 비행할 수 있는 항공권으로 교환할 수 있다는 점은 익숙하다. 그런데 불안한 마음을 놀라움으로 바꾸어준 RTW 프로그램은 14만 마일리지를 적립하면 이코노미 좌석으로 '세계일주 보너스 항공권’ 한 장으로 교환이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22만 마일리지가 되면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드가 되고, 44만 마일리지가 되면 두 명이 ’지구 한 바퀴 세계일주’ 여행을 비즈니스 클래스로 다녀올 수 있다.


마일리지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보통 10년이다. 10년이 지나면 매월 차감되면서 사라지는 마일리지가 있으니, 10년 안에 44만 마일리지를 모아야 했다. 44만 마일리지라고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숫자라고 생각되지만, 1년에 4만 4천 마일리지를 10년 동안 모으면 가능한 숫자였다. 매년 여러 번의 해외 출장이 있었고, 신용카드를 마일리지 적립률이 높은 카드사로 바꾸었다.


1년, 2년이 지나고 계획대로 마일리지가 쌓여가는 것을 확인했지만, 휴가 때마다 적립한 마일리지를 사용하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야 하는 고비가 매년 찾아왔다. 그렇게 3년, 4년, 5년을 지나 10년을 잘 참아내었고, 팬데믹이 오기 전, 2019년에 45만 마일리지를 돌파하는 순간을 맞았다.


이제 ‘R.T.W.’라고 부르는 ‘세계일주 보너스 항공권’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 일은 다 때가 있다는 듯이 마일리지가 꽉 찼을 때, 때마침 ‘두둥~’ 등장한 여친님과 허니문으로 지구 한 바퀴 세계일주 계획을 세웠다. 와이프가 된 여친님은 외국 여행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모아둔 마일리지의 절반을 가져가는 행운아가 되었다. 프로 출장러 남친과 여행 초보 여친은 함께 지구 한 바퀴 허니문을 준비했다.     


1. 얼라이언스 프로그램, Alliance Program    


RTW 여행을 할 수 있는 항공 얼라이언스는 세 군데를 꼽을 수 있다. 대한항공은 ‘스카이팀’이라는 얼라이언스에 포함되어 있고, ‘스카이팀’에는 에어프랑스, 미국 델타항공, 아르헨티나 항공, 케냐 항공 등 19개의 항공사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19개 항공사의 운항 도시를 잘 찾아 이으면 지구 한 바퀴 비행 일정을 만들 수 있다. ‘스카이팀’은 1,036 곳의 공항으로 비행기를 운항하기 때문에, 세계지도를 펴고, 가고 싶은 도시들을 이어서 지구 한 바퀴 비행 스케줄을 만들어야 했다.


천 곳이 넘는 공항 중에서 가고 싶은 도시를 골라 여행할 수 있는 항공권이다. 동시에 갈 데가 너무 많으니 룰에 따라 기항지를 넣고 빼면서 우리가 갈 곳을 정하는 일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매일 구글 맵을 열고 가고 싶었던 도시들을 이으며 밤을 새워도, 태블릿 피씨 화면 위에서 이리저리 동선이 춤을 추고 꼬여도 행복했던 여행 준비였다.


아시아나항공은 ‘스타 얼라이언스’의 회원사이고, 마일리지 차감 방식이나 RTW 규정은 대한항공이 속한 스카이팀과 다른 점이 있다. ‘스카이 팀’과 ‘스타 얼라이언스’ 외에 ‘원 월드’라는 항공 얼라이언스가 있다. 마일리지를 모을 때, 한 군데 항공사를 콕 찍어서 적립해야 하고, 해당 항공사가 속해 있는 얼라이언스의 비행편만 예약할 수 있다.     


2. 방향 정하기 - 출발은 인천공항에서 왼쪽으로? 아니면 오른쪽으로?    


먼저, 인천공항에서 어느 방향으로 여행을 시작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RTW 룰에 따라서 출발할 때 정한 방향, 왼쪽 또는 오른쪽, 둘 중 한쪽 방향으로만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다. 선택은 둘 중 하나이어야 했지만, 또 다른 행복한 고민이다. 인천공항에서 왼쪽인 유럽 방향으로 출발하고 대서양을 건너 미주 대륙으로 갈지, 오른쪽인 미국 방향으로 먼저 출발하면서 태평양을 먼저 건너야 할지.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의 나라도 여행할 예정이었고 왼쪽과 오른쪽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여행지의 계절과 기온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다녀온 경험을 통해 요약해서 팁을 남긴다면, 보통 여행으로 가는 남반구의 국가 중에는 겨울(6월에서 8월)의 추위가 여행하면서 두꺼운 옷을 챙겨야 할 만큼 기온이 낮게 떨어지는 곳이 없다.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남태평양의 국가들이다. 그래서 북반구에서 여행할 나라의 날씨만 고려하면 날씨에 대한 걱정은 덜어도 된다.     


3. 비행 횟수와 비행 가능한 거리


R.T.W. 세계일주 보너스 항공권으로 지구 한 바퀴를 여행할 때, 규정에 따라 총 6~9번 까지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전 세계를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유럽과 아프리카’, ‘북중미와 남미’ 이렇게 세 그룹으로 구분 지어, 꼭 세 군데를 거쳐야 한다. 세 군데 그룹 중에서 한 군데를 빼고 다른 두 그룹의 지역에서 여행을 더 많이 하고 싶어도, 다른 두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체류 횟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방문하지 않는 지역의 그룹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체류 횟수가 사라지기만 한다. 그리고 R.T.W. 세계일주 보너스 항공권에 이동 거리에 대한 제한은 없다. RTW 룰 안에서 비행 거리는 ‘무제한’이다.  

   

4. 중간 '인-아웃' 비행의 연결    


인천에서 파리로 가서 유럽을 여행하고 로마 공항에서 다른 대륙으로 가는 일정이라면, 차감되는 비행 횟수는 어떻게 될까. 그런 경우라도 체류 횟수는 한 번만 계산된다. 유럽을 여행하게 되면 여러 도시를 여행하게 되는데, 유럽 도착이 파리여도 유럽을 떠날 때 꼭 파리에서 비행을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로마공항이나 아테네 공항에서 출발해도 된다.


마찬가지로, 인천에서 캐나다로 비행하고, 캐나다에서 육로로 미국을 여행한 다음 뉴욕에서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비행 편을 이용하는 경우도 체류 횟수는 한 번만 차감된다.   

  

5. 세금과 유류할증료    


정해둔 루트에 따라 항공권을 예약하고, ‘확약’ 컨펌을 받기 위해서, 두 시간 정도 R.T.W. 전담 직원과 통화를 하고 결제해야 한다. 검색해보면 R.T.W.를 준비한 다른 여행자들도 두세 시간의 전화 통화가 필요했다고 한다. 그리고 비행기표는 공짜 마일리지 찬스를 썼지만, 100만 원이 넘는 세금과 유류할증료를 결제해야 예약을 마칠 수 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오른쪽 방향, 뉴욕으로 떠났고, 멕시코와 남미를 여행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파리에 도착했고, 유럽을 여행한 뒤, 그리스에서 시드니로 30시간 동안 비행했다. 마지막 비행으로 시드니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지구 한 바퀴' 세계일주 여행이다.     


팬데믹의 시간,

지금은 즐거운 다음 여행을 상상하는 기분 좋은 시간!    


평소에 비호감의 영역에 두었던 수다쟁이 옆좌석 승객 덕분에 처음 알게 된 RTW 항공권은 첫눈에 반하는 순간과 같았다. 귀로 듣자마자 고막과 뇌를 강타했고, 이건 내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라며 욕심이 폭발했다. 이후로 10년간 투지를 다지며 비행기를 탈 때마다 탑승권 아래에 작은 글씨로 적혀있는 마일리지를 확인했지만 숫자의 변화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여행을 바라고 준비하던 10년이 지났다. 10년 후에, 계획한 일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투지를 불태웠으며, 불확실성이 있는 일임에도 확신을 계속 불어넣으며 버티는 시간이었다.


백신 접종이 시작한다는 소식에 빠른 팬데믹의 끝을 바라는 마음이지만, 마스크를 벗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향할 수 있는 시간이 정확히 언제일지 알 수 없는 팬데믹의 한가운데에 있다. 아직 언제, 어떻게 이 상황이 끝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언제 끝날 지를 장담할 수는 없어도 시작이 있는 일에는 반드시 끝도 있는 법이다.    


‘지금은 즐거운 다음 여행을 상상하는 기분 좋은 시간’이라 써 두고, 다음번 좋은 여행을 위해 오랜 준비를 하는 시간으로 삼기로 한다. 지구 한 바퀴 세계 여행이라 좋았던 여행이었지만, 오래 준비하고 기다린 끝에 다녀온 여행이 더 좋았던 데에는 오래 바라고 떠나기를 기다리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여행을 상상하며, 다시 구글 맵을 열었다.




PS) R.T.W. 여행을 검색하고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께 ^^, 그리고 마일리지를 모으고 있거나, 팬데믹 이후에 깜짝 놀랄 만한 '지구 한 바퀴' 여행을 계획하고 있으시다면, calllas@naver.com 으로 이메일 문의 주셔도 좋아요. R.T.W.를 준비할 때, 처음에 규정이 복잡하다고 느낄 수 있는데, 준비하는 과정에 잘 해결이 안 되는 루트나 질문을 이메일로 주세요.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이전 09화 친절한 기내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