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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김홍재 Nov 01. 2020

친절한 기내식

양이 너무 작아요 ㅠㅜ

프랑스 국적의 비행기를 타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파리에 도착했다. 대서양을 건너면서 동시에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이동하는 비행이라 14시간의 긴 비행 거리였다. 적립해둔 마일리지를 사용해서 비즈니스 클래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00년 전 전성기 시절 남미의 파리라고 불렸던 도시였고, 부에노스아이레스 다음 목적지가 파리라니 설레고 셀레는 비행이었다. 파리는 여러 번 가본 적이 있었지만, 프랑스 국적의 비행기로 파리에 도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파리 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기내식으로 프랑스를 느낄 수 있었다. ‘라뒤레(Laduree)’라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브랜드의 디저트를 비즈니스 클래스의 디저트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항공사는 비행기에서 작은 디저트 하나 만으로 ‘Welcome to France’를 말해주었다. 프랑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기분 좋은 워밍업의 신호라고 느낄 수 있어서 지금까지 특별히 기억에 남는 기내식과 디저트가 되었다.



어떤 나라로 떠나면서 그 여행의 시작은 출발지의 공항과 비행기에서 먼저 느낄 수 있다. 기내식으로 여행을 떠나는 나라의 느낌을 잘 살리는 음식이 작은 테이블에 올라오면, 도착지 공항에 내려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도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여행의 시간이 앞으로 당겨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팜파스(Pampas)’라는 넓고 깨끗한 초원에서 생산되는 맛있는 쇠고기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에서 비행기를 타면, 유난히 크고 맛있는 스테이크 요리를 먹을 수 있다. 일본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면 기내식 도시락에 새우와 생선으로 만든 스시를 먹을 수 있고, 영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면 애프터눈 티와 잘 어울리는 영국식 스콘을 클로티드 크림과 먹을 수 있다.


미국 델타 항공사의 뉴욕공항 라운지에서는 언젠가부터 밥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커피를 스타벅스 머신으로 만들어 초록색 세이렌 마크가 있는 스타벅스 컵에 준다. ‘미쿡’적인 느낌이 가득했다. 알 이탈리아 항공의 라운지에는 피자와 파스타를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이탈리아의 술 스프리츠와 스푸만테(=이탈리아의 스파클링 와인, 프랑스는 삼페인)를 마실 수 있다.


기내식을 잘 만나거나, 공항 라운지의 개성 넘치는 서비스를 만나면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여행이 시작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해주는 기분 좋은 서비스가 된다.     


기내식 음식 맛에 대한 호불호


기내식은 사실, 공항 근처의 공장에서 만드는 패스트푸드이다. 그런데 기내식이 나올 시간이 되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꼭 챙겨 먹는다. 알고 보면 흔한 패스트푸드가 기내식이 되면, 어미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승무원의 급식 카트를 기다리게 한다.


기내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컨디션 저하 등의 이유로 조금만 먹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기내에서는 불을 사용하는 조리는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반조리 상태 또는 데우기만 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상태로 기내에 반입된다. 그리고, 높은 고도에서는 미각의 성능(?)이 조금 떨어지기 때문에, 평소보다 강한 자극을 주는 조미료를 쓴다.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조리방식과 강한 양념과 튀김이나 볶음요리가 되다 보니 양에 비해서는 열량이 높고 나트륨의 사용도 높은 편이다. 건강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음식이다. 그러니 재료에서 나오는 맛에 대한 호불호보다는 내 배의 공복 상태가 기내식의 맛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기내식이 맛있다고 느낀다면 극강의 단짠과 강한 맛의 소스 때문이다.  


기내식은 안전제일     


기내식을 먹고 배탈이 나거나 식중독에 걸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내식을 만들고 기내로 반입할 때, 최우선 전제조건이다. 비행기는 이륙하고 길면 16시간 동안 하늘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응급처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문제 상황이 생겨도 제대로 된 처치를 할 수 있는 상황과 격리된다. 그래서 안전을 최우선으로 음식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데, 항공사에서는 위생에 최대 역점을 두고 기내식을 생산한다고 한다. 비행에서는 승객의 안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파일럿의 안전인데, 식중독을 방지하기 위해서 파일럿들은 각각 다른 음식으로 식사를 한다. 하나의 음식이 잘못되어도 다른 음식을 먹은 파일럿은 끝까지 건강해야 안전하게 착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파일럿의 음식을 각각 다르게 하고, 위생을 최우선으로 기내식을 제공하는 노력 덕분에 기내식으로 인한 식중독 등의 사고는 아주 예외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안심하고 기내식을 먹어도 좋다.


특별한 배려


우리나라 비행기를 타면 나오는 맛있는 비빔밥이 오래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음식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퇴색하고 있는 것 같다. 비빔밥이 인기를 끌면서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외국 비행기를 타도 비빔밥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대신 생일날 혹은 허니문으로 비행기를 타면, 우리나라 항공사들은 케익을 선물해준다. 단, 상위 클래스이어야 하고, 미리 예약해 두어야 한다. 다른 항공사처럼 좀 더 독특한 음식이 기내식이었으면 좋겠다. 뭐가 있을까? 요즘 편의점만 봐도 생각보다 다양한 음식이 반조리 상태로 판매되고 있는데, 항공사에서 편의점 반조리 음식만 벤치마킹해서 만들어도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오지 않을까.



종교적인 이유나 질병, 알레르기 때문에 보통의 식사와 다른 기내식이 필요할 때, 24시간 전에 예약해 두면 특별 기내식을 먹을 수 있다. 비건(채식주의자)이라면 비건식을 기내에서도 먹을 수 있고, 특정한 고기 요리를 금하는 종교인을 위한 종교식, 다이어트 식단을 위한 저칼로리식, 아이들을 위한 유아식을 주문할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는 아이들을 위해 짜장면을 사전 주문해 둘 수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특별 기내식을 주문하면, 식사 시간에 가장 먼저 기내식 트레이를 받을 수 있다. 아무래도 바쁜 식사 시간에 승무원들이 특별 기내식을 별도로 보관해두고 가장 먼저 주는 것 같다.    


비행기 라면이 맛있는 이유


비행기에서 먹는 라면은 승무원의 정성이 가득 담겨있다. 라면을 먹을 때는 승무원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생각한다. 이코노미 좌석에서는 컵라면을 그대로 제공해 주지만, 상위 클래스에서 라면은 하얀 도기 그릇에 예쁘게 담아 준다. 갤리라고 부르는 기내의 주방에서는 불을 사용할 수 없고, 안전을 위해 아주 고온을 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전기포트에 물을 끓여, 작은 컵라면으로 라면을 두 개 만든 후에, 예쁜 도기 그릇에 컵라면 두 개를 합쳐서 담아주는데, 승무원의 노력과 정성이 있어야 하는 지점이다. 높은 하늘에서는 20% 정도 낮은 기압 때문에 전기포트로 물을 끓여도 지상에서 끓이는 것만큼 뜨거운 물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낮은 온도로 컵라면을 만들면 승무원들이 잘 불지 않는 라면을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풀어서 예쁜 그릇에 담아 준다. 라면 면발 하나하나에 꽤 정성이 필요한 일이 된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먹는 라면이 유난히 맛있다고 느낀 적이 있다. 뭔가 과학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검색하고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에어버스에서 만든 가장 큰 비행기, A380 기종을 타면 비행기 앞이나 뒤에 있는 바에서 칵테일이나 여러 가지 술을 여러 잔 마실 수 있다. 항공료에 모두 포함된 서비스이기 때문에 적게 마시든 많이 마시든 모두 공짜이다. 맥주와 와인을 계속 마실 수 있는 무제한 주류 뷔페 스타일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 같다. 과하게 취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승무원은 달라는 데로 와인을 준다. 그리고 출장으로 밤 비행기를 타는 날은 피곤하기 때문에 안대를 하고 숙면에 들기 전에 충분히 마셔두어야 잠을 잘 자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 경우에, 라면은 해장을 위한 국물로 거의 유일한 음식이다 보니 특별히 맛있게 느껴졌다. 비행기에서 먹는 라면이 더 맛있는 이유, 바로 거의 유일한 숙취 해소 국물이기 때문이다.    



맥주 안주로 예전에는 유명한 꿀땅콩을 주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제공하지 않는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땅콩 회항 사건 때문은 아니고, 땅콩 알레르기가 심각한 상황을 만드는 사고가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험한 따아


술을 즐기지 않더라도 비행기에서는 제공되는 차와 커피는 무한 리필이다. 짧은 비행, 3시간 거리의 홍콩이나 6시간 거리의 싱가포르로 가는 출국 비행은 주로 아침에 타는데, 비행기에서 즐기는 모닝커피를 특별히 좋아했다. 그런데, 비행기에서 뜨거운 커피나 차를 마시는 도중에 난기류를 만나서 많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었다. 난감하다. 비행기가 흔들리니 커피 잔을 제대로 들고 있을 수가 없다. 좌석 앞이나 옆에 달린 컵 홀더에 올려두어도 커피는 쉽게 쏟아질 것만 같다. 그렇다고 뜨거운 커피를 내 식도에 쏟아 마셔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승무원을 불러서 커피를 돌려주고 싶지만, 이미 자리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매라는 기내 표시등에 불이 들어왔다. 승무원들도 비상구 앞에 안전벨트를 매고 앉았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위험하고 난감한 상황이 되었지만, 승무원이 스피커를 통해 남은 뜨거운 음료는 모두 바닥 카페트에 쏟으라고 했다. 급박한 상황에 잘 대처하도록 교육받은 승무원 덕분에 뜨거운 커피는 내 식도에 아무런 화상을 입히지 않고 바닥에 부을 수 있었다. 바닥에 부어버린다. 그게 정답인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항상 양이 너무 작다고 생각되는 기내식이다. 승객의 입장에서 원가 절감을 위해 갈수록 음식의 질이 떨어지는 것 같이 느끼고 양도 줄어드는 것 같은데, 항공사 입장에서는 과학적인 이유를 들어 안전을 위해 음식을 선택하고 양을 조절한다고 설명한다. 애플이  아이폰 12를 출시하고, 충전기를 빼면서 환경을 생각한다는 변명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 씁쓸한 의심을 항상 가지고 있는 지점이다. 원가 절감 맞는 거 같은데, 아닐까요?


많이 먹고 싶어도 피자나 다른 간식을 줄 뿐 기내식 트레이는 항상 너무 작다. 그러면 양이 부족해서 배가 고플 때, 기내식을 더 달라고 해도 될까?


오래전 20대 시절 홍콩에서 비행기를 탔을 때, 친절한 승무원이 혹시 부족하면 말해 달라고 했다. 당연히 먹성 좋은 20대 남자는 배가 고프다고 했고, 기내식을 하나 더 먹을 수 있었다. 의문에 대한 답은, 기내식이 부족하지 않은 경우라면 기내식을 한 번 더 먹을 수 있다. 단, 비행기가 만석이 아니어서 승무원들이 바쁘지 않을 때에만. 그리고 정말 배가 고플 때만 눈치껏  먹어야 한다. 비행 중에는 단체 식사 시간이 있으니까. 남들 잘 때 혼자 하는 식사는 눈칫밥을 덤으로 먹거나 주변 승객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2021년 봄, 지금은 팬데믹으로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상황이다. 사람들의 그런 마음을 알아차린 편의점 브랜드들은 기내식 도시락을 만들어 팔고 있다. 조만간 편의점 기내식을 사 먹어볼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진짜 기내식이 너무 먹고 싶다. 비행기를 못 타서 병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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