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요? 맘 카페에 저에 대한 글이 올라왔다고요??
도서관을 언제까지 닫아 둘 건가요?
팬데믹이 쉬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던 2021년 초, 갑갑한 일상을 사느라 힘들었던 이들이 코로나 이전의 삶을 되찾으려 목소리를 높였고 1년 동안 임시 휴관한 서울의 도서관들이 하나 둘 재개관을 시작했다. 동시에 사전 예약을 통해 도서관 앞에서 책을 받아가는 비대면 대출 서비스도 막을 내렸다. K-방역과 높은 시민의식 수준으로 다른 나라에 비하면 코로나 감염 확진세가 강하진 않았지만 1년 만에 문을 연 도서관은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사서를 포함한 전 직원들은 시민 안전을 우선시해야 하는 공공기관 종사자로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도서관은 방역 지침에 맞춰 이용수칙을 새롭게 정비해 마스크 착용은 물론 한 칸씩 거리 두고 앉기, 관내 식음료 섭취 불가, 식당 및 휴게공간 이용금지, 자료실 내 수용 인원 축소 등 도서관의 많은 기능을 제한했다. 당시 내가 담당한 유아자료실에도 여러 제한사항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소리 내어 책 읽어주기 금지'였다. (코로나 이전에는 유아실에서 글자를 못 읽는 영유아에게 보호자가 책을 읽어줄 수 있었다)
만약 내 아이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다면...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실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조심하려니 두려웠다. 더군다나 유아자료실을 담당하니 걱정이 더 많았다. 이제 한창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도서관에 방문했다가 혹시라도 확진자와 접촉하게 될까 조마조마했다. 만에 하나 전염이라도 된다면 폐 기능 일부를 평생 상실한 체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끔찍했다. 유아자료실만큼은 방역 수칙이 잘 지켜지도록 철저히 관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1년 넘게 코로나에 시달린 탓인지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심은 저마다 달랐다. 아이와 함께 최대한 빨리 책만 빌려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와 함께 반나절을 머무르며 책을 읽어주는 보호자들도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줄 수 없다'는 직원들 안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몰래 책을 읽어주는 보호자들을 보며 의아하던 때, 그날도 아장아장 걷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분이 계셔 다가갔다.
"이용자님, 코로나 때문에 아직은 자료실 내에서 책 읽어주기가 불가합니다. 눈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안내를 들은 이용자는 서운해하는 눈치였다.
"마스크 쓰고 읽어도 안 되나요?"
"네.. 비말이 세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은 지침 상 어렵습니다."
"ㅁㅁ도서관은 읽어줘도 되는데 왜 여기는 안되죠?"
"아.... 그래요? 일단 저희 도서관은 코로나 때문에 읽어주기를 제한하고 있어서요..."
"그럼 책만 빌려서 나가라는 거네요?"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일단 여기서 읽어주시는 건 현재로서 어렵습니다."
"아들~!! 여기서 책 읽으면 안 된대, 치~ 나가자, 나가!!"
기분 상한 보호자의 목소리는 조용한 자료실에 꽤나 크게 울려 퍼졌고 아이는 놀랐는지 울기 시작했다. 아이의 큰 울음소리와 난데없이 불쾌감을 드러낸 보호자 때문에 나 역시 당황스러웠다. 보호자는 우는 아이를 달랬고 멋쩍었던 나는 자료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갔다. '얼마 전에도 유아실에 확진자가 다녀갔다고 말해 줄걸 그랬나. 그러면 덜 화냈을까? 도리어 불안감 조장한다고 더 기분 나빴으려나...' 확진자가 방문했다는 말은커녕 불편하더라도 모두의 안전을 위해 감내해야 된다는 당연한 말도 불친절로 꼬투리 잡힐까 봐 못했더니 속이 답답했다. 답답함은 곧 원망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또 '아이랑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는 게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겠나' 싶어 더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평소에도 이런 안내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마스크 쓰더라도 책 읽어주는 거 안된다고 그만 나가라는 식으로..
하지만 그 후로 상상도 못 한 일이 일어났다. 그날 저녁, 보호자는 자신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일방적인 느낌만 담아 나에 대한 저격글을 올렸다. 그 글은 해당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하는 관리자에 의해 즉시 발견됐고 다음 날 오전, 직원들 사이로 빠르게 퍼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오후 출근한 나는 옆 동료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 관리자에게 불려 갔다.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한 체 어제의 일을 기억에서 더듬거리며 설명하느라 내 멘탈은 완전히 무너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안내였고 이를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그 일이 이토록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몰랐다. 머리가 하얘지니 누군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관리자는 얼떨떨해하는 내게 '더 친절하게 이용자를 대해라'는 말로 일단락 지었다. 하지만 곧이어 또 다른 상관에게 불려 갔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보라고 했지만 그때까지도 자세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책을 읽어주고 있어 코로나 방역 지침대로 안된다고 안내한 게 전부였는데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정신없이 불려 다니고 나서야 자리로 돌아와 해당 커뮤니티에 가입한 동료의 도움을 받아 게시글을 읽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00도서관에 갔는데 유아실 직원이 온갖 짜증 난 얼굴로 책 읽지 말고 나가라는 식으로 말했어요. 도서관에서 쫓겨나다니 어이없네요. 유아실 담당자가 너무 불친절하다'는 내용이었다. 읽는 동안 손이 덜덜 떨렸다.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 '온갖 짜증'과 '쫓겨났다'는 표현이 가장 황당하고 충격이었다. 미간을 좁히지도 않았고 얼굴의 절반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서 온갖 짜증이 묻은 내 얼굴을 보았을까? 조용한 자료실이라 목소리도 작고 담담하게 말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루머에 시달리는 연예인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설마 공공도서관 사서가 이용자에게 '여기서 나가세요'라는 말을 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지만 비정상 시대를 살고 있는 탓에 믿는 이들이 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직원 너무 하네요', '당장 도서관에 민원 넣으세요'라는 댓글을 줄줄이 달았다. 반면 '코로나니까 직원 안내가 정당했다', '지금은 책을 읽어주면 안 된다'라는 댓글도 많았지만 내가 받은 충격과 상처는 그대로였다.
그날부터 억울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하지도 않은 말에 대해 동료들과 관리자에게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자존심 상했고 그들이 내 말을 믿어 줄지도 미지수다. '커뮤니티에 가입해 글쓴이에게 게시글을 정정해달라고 댓글을 달까?', '관리자들에게 도서관 CCTV를 돌려보자고 할까?', '게시글을 읽은 다른 이용자들이 나를 알아보고 손가락질하면 어쩌지?', '나 때문에 동료들까지 불친절하다고 오해를 받으면 어떡하지?', '그깟 일 하나로 이렇게 고통받는 게 말이 되나?' 등 별의별 생각들이 밤이고 낮이고 쉴 새 없이 떠올랐다. 그 커뮤니티에 가입해 댓글을 달든 작성자에게 쪽지를 보내든 뭐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구경거리만 될 게 뻔했다. 억울하고 답답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나를 더 미치게 했다.
혼자 괴로워하는 동안 그 커뮤니티의 게시글은 폭발적인 조회 수와 댓글이 달렸다. 몇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경 쓰지 말라는 동료의 위로에도 온갖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 중 몇 명이나 이 글을 읽었을까? 당연히 나라고 생각하겠지? 그 후로 이용자에게 안내하는 일이 두렵게 느껴졌다. 만약 그 보호자가 이런 걸 노린 거라면 대성공이다! 악성 댓글과 악성루머로 법정싸움까지 가는 연예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당사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당신의 글이 나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줬는지 말이다.
나는 관리자 지시에 따라 눈에 잘 띄도록 '코로나에 따른 자료실 운영지침'을 더 크게 제작해 자료실에 붙였다. 그 외에도 '코로나로 인해 책 읽어 주기가 불가하니 많은 양해와 협조를 부탁드린다'는 A4 사이즈 안내문을 여기저기 붙였다. 시선을 조금만 옮겨도 안내문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이들에게 그 안내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들에겐 의미 없는 안내 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크게, 그렇게 많이 붙였는데도 여전히 책을 읽어주고, 여전히 왜 안되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