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기는 저의 소울 취미에요!
저는 자전거 타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초등학생 3학년 땐가 4학년 때, 부모님께서 처음 두 발 자전거를 사주셨어요. 첫날은 아버지께서 자전거 타는 법을 알려주셨고, 그다음 날부터는 혼자 맹연습에 들어갔어요. 운동 신경이 나쁘지 않았는지 일직선으로 타는 건 이틀 만에 적응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핸들을 돌려야 하는 코너에서 자꾸만 넘어졌지요. 꼭 해내고 말겠다는 오기 하나로 같은 구간을 수십 번 돌았고, 양 무릎의 피를 본 후에야 코너링에서도 균형을 잡을 수 있었어요.
해질녘이 돼서야 집으로 향했어요. 현관문을 잡는 순간, '앗! 엄마한테 혼나면 어쩌지?' 걱정이 됐어요. 피나도록(?) 연습한 저를 보시고 잘했다기보다 꾸짖으실 것 같았거든요. (어린 나이에도 눈치가 있었나 봐요) 입고 있던 반바지를 살짝 내려 무릎을 최대한 가리고 두어줄 흐른 핏줄기는 손바닥으로 잘 닦았어요. 긴장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가 아무렇지 않은 척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했어요. 저녁을 준비하시던 엄마는 저를 보고 귀신같이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셨어요.
결국 엄마에게 이실직고하고 '이렇게까지 미련하게 연습하면 어떡하니!!' 꾸지람을 듣게 됐지요. (얼마나 속상하셨을지 이제는 알지만 당시는 엄마가 제 마음도 몰라주고 혼만 낸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성공의 맛을 봐서 그런지 혼이 나도 괜찮았어요. 넘어질 때마다 무섭고 아팠지만, '자전거 타기'는 살면서 처음 이루고 싶은 목표였고 그걸 스스로 해낸 날이었거든요. 거기서 비롯된 만족감과 희열은 아픔도 잊게 만들고 '혼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주었어요. 그래서 초등학생 내내 자전거 타기를 아주 좋아했어요.
중학생이 되고 교복 치마를 입으면서 자연스레 자전거와 멀어졌어요. 꽤 오랫동안 잊고 살다가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된 건 대학생 때였어요. 방학이라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가게 사장님께서 군대 제대 후 다녀온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그날,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어릴 적 자전거 타던 제 모습이 떠올랐어요. 갑자기 자전거가 너무 타고 싶더라고요. 그리고 사장님처럼 제주도에서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날 밤 제 머릿속에는 온통 자전거와 제주도뿐이었고 다음 날에도 같은 생각만 했어요.
'안 되겠어! 제주도 하이킹 다녀와야겠다!!'
"사장님, 죄송한데.. 저 이번 주까지만 할게요."
"엇? 갑자기 무슨 일인데??"
"아... 어제 사장님 이야기 듣고 제주도 하이킹이 가고 싶어졌어요."
"하하하하ㅏ하ㅏㅏㅏ!! 진짜??? 와! 대단하네. 언제가는데?"
"아직 몰라요. 말씀드리고 정하는 게 좋을거 같아서.."
"친구들이랑 같이 가는 거야?"
"아뇨. 시간 맞추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혼자 가려고요."
"위험하지 않겠어?"
"네!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럼 일주일이든 이주일이든 다녀와. 그리고 다시 일하는 거 어때?"
"아 정말 그래도 돼요? 저야 너무 감사하죠!"
그렇게 갑자기 가게 된 제주도 하이킹은 생애 최초 나 홀로 여행이었어요. 너무 설레었어요! 자상하신 가게 사장님은 '무슨 일 생기면 꼭 전화해!'라는 말과 함께 여름 휴가비로 10만 원을 주셨어요. 드디어 제주도로 떠나는 일요일 아침, 김포공항에서 한성항공 비행기를 타고 출발했어요. 처음 타는 비행기라 긴장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리와 기체의 흔들림은 저를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어요. (다행히 제주도는 무사히 도착했어요) 미리 검색해 둔 자전거 대여소에서 5일 치 비용을 지불하고 MTB 자전거 한 대를 빌렸어요. 오랜만에 자전거를 탔는데 마치 어제도 탄 것처럼 몸이 잘 기억하고 있었어요. (기특한 몸뚱아리!) 이 모든 게 신기했고 '여기까지 무사히 해냈다'는 안도감에 정말 행복했어요.
제주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거셌지만 이에 질세라 페달을 힘껏 밟았어요. 바닷물이 탁한 서해바다만 보다가 맑은 제주바다를 보니 너무 아름다웠어요. (고향이 서해랑 가까워요) 하지만 해안도로를 따라 2시간쯤 타다 사고가 났어요.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달리는데 모자가 바람에 날아갔고 반사신경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한 손은 날아가는 모자에 뻗고, 한 손은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그대로 고꾸라졌어요. 아스팔트에 얼굴을 박고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어요. 놀란 와중에도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들이 있는지 살폈어요.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휴~ 다행이다' 하는 순간, 입안으로 알 수 없는 바람이 세어 들어왔어요. '이 생소한 느낌은 뭐지?' 혀로 입안을 살폈는 데 있어야 할 자리에 앞니 하나가 없었어요. '설마.....?!!' 하며 바닥을 둘러봤는데 앞니 하나가 덩그러니 있더군요.
'누구한테 연락해야 되지?'
지금 여기로 와줄 수 있는 사람은 자전거 대여소 사장님뿐이었어요. 곧바로 전화해서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했어요. 자전거 타다가 앞니 하나가 부러졌다고요. 놀란 사장님은 다른 곳은 안 다쳤냐고 물으셨어요. 나머지는 멀쩡한 것 같다고 혹시 지금 이쪽으로 와주실 수 있냐고 여쭤보았어요. 친절한 사장님은 곧 갈 테니 흰 우유에 부러진 치아를 담가 놓고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전화를 끊고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바다와 도로뿐이었어요.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서 사장님을 기다렸어요. 부러진 치아를 한 손에 움켜쥐고요.
사장님이 도착하시고 곧바로 제주대 병원 응급실로 갔어요.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데 머리에서 피 흘리는 사람, 입에 거품 물고 쓰러진 사람, 악을 쓰며 아프다고 소리치는 사람, 저보다 위급해 보이는 환자들이 계속 들락날락했어요. 병원 안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한 시간쯤 기다리니 의사가 다가와 제 상태를 보고, 거주지(서울) 가서 치료 시작해야 되니 빨리 돌아가라고 했어요. 처방해준 진통제를 받아들고 항공사에 전화했더니 내일 아침이나 변경이 가능하다고 했어요. 어쩔 수 없이 하룻밤 숙박을 해야 했고 대여소 사장님이 안내해 준 숙소로 갔어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방 문을 닫고 나니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어요. 살아생전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린 적은 처음이었어요. 저장된 모든 눈물은 쏟아내고 지쳐 쓰러지듯 잠이 들었어요. 몇 시간 후, 전화벨이 울렸어요. 자전거 대여소 사장님이었어요.
"몸은 어때요? 괜찮아요?"
"아... 괜찮아요..."
"하루 종일 못 먹었을 텐데, 저녁에 뭐 좀 먹었어요?"
"아.. 아니요..."
"아고... 배고파서 어째요.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나올래요?"
"아.. 괜찮아요. 배 안고파요.."
"그래도 뭐라도 좀 먹어야 되는데.."
"아.. 진짜 괜찮아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제주 바다라도 좀 보여줄 테니까 잠깐 나와요."
"아.....괜차ㄴ.."
"앞에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끊어요!"
"아.. 네.."
사장님 트럭을 타고 자주 가신다는 바다로 갔어요. 깜깜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바닷바람도 맞고 파도소리도 들으니 마음이 한결 나아지더라고요. 제 걸음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던 사장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자기 신경 쓰지 말고 바다 구경 편히 하라는 말씀만 하셨어요. 캄캄한 바다를 30분 정도 구경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저를 진심으로 대해주셨고, 따뜻한 침묵으로 위로해 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른다운 어른이셔요!) 다음 날, 체크아웃을 하고 배가 너무 고파 근처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 먹었어요.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죠. (깨진 치아는 결국 쓰지 못하고 새로운 앞니를 입양했어요)
이듬해 여름, 다시 제주도로 향했고 이번에는 무사히 자전거 하이킹을 완주했어요. 뙤약볕에 자전거를 타느라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후회도 했지만 '완주증'을 받고 나니 다시 또 성공의 맛을 느낄 수 있었어요. (중독의 맛!)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기도 하고 출퇴근도 하고 있어요. (자전거는 정말 최고에요!) 걷는 것도 좋아하지만, 자전거 타는 걸 더 좋아하는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성공의 맛을 처음 느끼게 해준 대상이라 그런건지, 어릴적 자전거를 타며 쌓은 추억이 많아서 인지, 아니면 아버지가 처음 알려주신거라 그런 건지. 좋아하는데 이유가 딱히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봐요.
한 동안 제 방 벽면에 붙여뒀던 완주증!